[양문석의 세상시비]
통신주권도 없이 방통융합이라니…



매국노들의 합창에 국민들은 당장 속을지언정, 나중에 모든 것이 밝혀질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요 그 댓가가 ‘역사의 심판’이다. 기필코 노무현정권은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되리라. 아니 지금부터 이들의 대국민사기행각을 속속들이 찾아내 밝힘으로써 ‘현실의 심판’을 받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지키겠다고 온갖 사탕발림을 토해 냈던 한국협상단이 기어이 방송뿐만 아니라 ‘통신주권’마저 미국에 넘겨버렸다.

연합뉴스 박창욱 기자가 지난 2일 보도한 <통신시장 방어 ‘절반 성공’>이라는 기사를 보면서 한국의 통신주권이 미국에 넘어갔음을 확인할 수 있다. 쪼개서 짚어보자.

연합뉴스는 기사 머리문장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IT 분야 협상은 국내 통신 산업에 대한 투자활성화는 촉진하면서 KT, SK텔레콤 등 지배적 통신산업자에 대한 인수합병(M&A) 안전장치의 큰 틀은 유지하는 방향으로 타결됐다.”로 시작한다.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안정장치가 마련되었다는 것’이 핵심이다. 과연 그럴까? 계속 연합뉴스의 기사를 읽어보자. “2일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한미 양국은 IT 부문 협상에서 최대 쟁점인 국내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지분투자 한도는 현행 49%를 유지하기로 최종 합의했다. 미국측은 그동안 외국인 지분 한도를 51%로 높이거나 전면 폐지할 것을 요구해왔다. 양측은 그러나 KT와 SK텔레콤을 제외한 다른 국내 기간통신업체에 대한 외국인 지분 소유의 경우 외국인이 별도의 또 다른 법인을 통해 간접투자 할 경우 공익성 심사를 전제로 100%까지 허용하기로 했다.” 외국인 지분투자 한도를 현행 49%로 막아냈기 때문에 연합뉴스는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한데 방송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전기통신사업법이 가진 허점을 간과하기 쉽다.

방송법상 외국법인으로 간주하는 조항은 외국인 지분의 합이 50% 이상인 경우지만, 전기통신사업법에서는 외국법인으로 간주하는 지분율이 15%다. 한국 사람이 특정법인의 지분을  75% 가지고 있어도 외국인이 나머지 15%의 지분을 갖고 있으면 이것은 한국법인이 아니라 외국법인으로 간주한다는 의미다. 슬쩍 보기에는 방송법이 아주 느슨하고 전기통신사업법은 아주 엄격하게 외국인 지분을 제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데 문제는 전기통신사업법에서 15%의 계산방법이 특이하다는 점이다. 즉 1%미만의 지분을 소유한 법인은 15%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무슨 뜻이냐면 0.9%를 갖고 있는 외국법인이 10개면 9%, 20개면 18%임에도 이들 외국법인이 갖고 있는 지분율은 계산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KT나 SKT 주식을 갖고 있는 외국인의 총 지분을 계산하면 51%가 넘어서지만, 1% 이상을 갖고 있는 외국법인 지분의 합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여전히 외국법인이 49%를 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현행 49%의 외국인 지분투자 한도를 유지하기로 최종합의 했다는 것을 부각시킴으로써 절반의 성공이라고 말하기는 뭔가 심각한 어폐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KT나 SK텔레콤을 제외한 다른 국내 기간통신업체에 대한 외국인 지분 소유의 경우 공익성 심사를 전제로 100%까지 허용했다’는 점이다. 하나로텔레콤이나 LG텔레콤의 경우 외국인이 100%의 지분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이다. KT와 SK텔레콤이 시장지배적 사업자이기 때문에 외국인 지분 100%를 허용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여기에 묘한 함정이 그 몸을 숨기고 있다.

만약에 하나로텔레콤이나 LG텔레콤의 지분이 외국의 유수 통신업체에게 100% 넘어가고, 이들이 대규모 자본을 국내 시장에서 살포하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통해서 KT와 SK텔레콤을 제치고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면 어떻게 될까? 그 순간 KT와 SKT는 ‘보호할 가치’도 없어질 뿐더러 ‘KT나 SK텔레콤을 제외한 다른 국내 업체에 대한 외국인 지분 소유 100% 허용’이라는 ‘제외대상’의 의미마저 사라진다. 즉 현재도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통신주권이 외국인이 100% 소유한 ‘KT나 SKT를 제외한’ 통신업체가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는 그 순간 우리 ‘통신주권’은 완전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혹자는 ‘공익성심사’를 전제로 한 100% 허용이지 않는가라고 반론할 수 있다. 이마저 착각이요 눈속임이다. 공익성심사 제도라는 것은 경영권의 변화가 있을 때마다 공공의 이익에 반하는지 여부를 정부가 심사하는 제도로 간접투자 한도가 늘어나더라도 국가이익에 반하는 적대적 M&A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하다는 것이 정보통신부의 설명인데, 이는 애초 WTO DDA에서 ‘외국인 차별을 근본적으로 금지’하도록 합의한 내용에 위반하는 제도다. 전혀 의미 없는 제도라는 의미다. 그리고 적대적 M&A를 어떤 근거로 판단할 것이며, 공공의 이익을 어느 나라 기준으로 삼을 것인가? 미비된 제도에 기대 ‘조건부’라고 우기는 것이나, ‘미비된 제도’마저 무용지물인 것조차 모르고 합의하는 것이 한국정부였다. 미국이 속으로 얼마나 비웃었겠는가! 바보들!

누구 말대로 정보사회다. 통신주권이 사라진 국가가 더 이상 독립국가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방송통신융합이니 통신방송융합이니 하면서 치열한 내부 주도권 다툼에 빠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한미FTA협상을 통해 그 나마 약간이라도 보전한 방송영역마저 외국인의 손아귀, 아니 미국인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 언론노보 제434호 2007년 4월 4일 수요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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