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남북장관급회담을 전후로 主敵논쟁과 對北전력지원문제가 불거졌다. 북한측의 꼬투리잡기式 주적 문제제기는 우리 언론의 극우심리를 자극하는 빌미가 됐다. 또 대북전력지원문제는 경제가 어려워진 틈을 타 남북화해의 발목을 잡으려는 일부 언론에게 시빗거리를 제공했다. 6.15정상회담 직후 언론은 사설을 통해 주적개념의 혼란이 '안보와 직결되며 장병들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국민갈등을 초래할 수 있다(조선 6월24일,동아 6월21일,문화 6월23일)'며 정부의 안보의식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러한 인식은 이번에도 그대로 이어져 국민일보(12월12일)와 문화일보(12월18일)등은 '북한이 먼저 변해야 한다'면서 북한의 주적개념 폐지요구를 일축했다. 심지어 주적개념의 혼란을 '정체성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는 중대사태(10월 2일)'로 규정하고 있는 조선일보는 선동적인 주장도 서슴지 않았다. 조선은 12일자 사설에서 '북한이 6.15선언으로 남한이 북한에 종속되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러한 몰상식한 주장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극우심리의 확산을 꾀하기도 했던 것이다. 이렇듯 주적개념이 곧 안보이며 우리의 정체성이 되어버린 상황에서 이 개념의 수정을 거론하는 것조차도 안보관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거나 '남한을 하급기관 취급하는 (북한의) 태도'(조선 12일)에 동조하는 꼴이 된다.대관절 주적개념이 무엇이관데 이렇듯 금과옥조로 여기는 걸까. 지난 10월에 발표한 국방백서에는 국방목표를 '주적인 북한의 현실적 군사위협 뿐 아니라... 모든 외부의 군사적 위협으로부터 국가를 보위하는 것'으로 명시하고 있다. 알고 보면 주적논쟁은 용어상의 문제랄 수도 없는 수식어의 문제가 아닌가. 남북의 군사대치 현실을 외면하자는 것도 아니고 대북 경계심을 늦추자는 것은 더더구나 아닌 것이다. 설령 이 문장에서 '주적'이라는 단어를 뺀다한들 군의 안보의식이 흔들리고 국론분열이 일어난다고 말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그렇다고 말하는 일부 신문이야말로 냉전의 껍질이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닐까.우리 언론은 북한의 노동당 규약 중 '전국적 범위에서 민족해방...'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조항이 적화통일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마땅히 폐지를 요구해야 한다. 하지만 북한을 상대로 "네가 먼저"식의 줄다리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대북포용정책은 시차를 두고 북한을 변화시키자는 정책이다. 6.15정상회담을 비롯한 한반도의 평화기류를 이끌어 낸 것이 포용정책의 성과임을 인정한다면 북한의 주적개념 삭제요구에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일 필요가 없다. "우리가 먼저 주적개념을 바꿀 테니 너희도 노동당 규약을 바꿔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남북이 함께 고치자"는 말은 해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너희는 변하지 않으면서 왜 간섭이냐"는 태도는 남북화해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네가 먼저'식의 주장은 대북전력지원문제에도 그대로 옮아갔다. 장관급회담 결과 남북이 전력협력을 협의하기로 합의하자 언론은 경제현실을 이유로 난색을 표명했다. 중앙(18일)세계(16일)국민(18일)등은 '(먼저) 북측의 성의 있는 자세로 남측의 신뢰를 심어줄 것'을 요구하며 정부가 저자세 협상을 했다고 질책하고 나섰다. 전력지원여부를 협의하기도 전에 정부를 압박하고 있는 셈이다.대북지원을 무조건 국부유출이나 '퍼주기'로 몰아 부친다면 남북의 공동번영이나 북한의 개방화유도는 헛말에 그치고 만다. 전력문제는 우리 경제의 부담을 고려하고 또 북한으로부터 받아낼 것은 받아내 가며 지원여부를 결정하면 될 일이다. 이를 두고 '우리의 명운을 거는 도박...엄청나게 잘못된 거래(조선18일)라고 흥분할 일은 아닌 것이다.정권의 권력누수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통일정책 역시 내부로부터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는 듯 싶다. 소모적인 논쟁이나 어려워진 경제상황에 편승해 남북화해를 가로막는 주장을 경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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