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문석의 세상시비]
최시중 취임 저지 투쟁의 알파와 오메가



1987년부터 방송민주화의 깃발을 올렸던 방송현업인 및 시민사회의 결실, 권력으로부터 방송독립의 염원이 2000년 통합방송법으로 나타났다. 핵심성과는 ‘무소속독립기구로서 위원회 구조’인 방송위원회를 출범시킨 것이다.

하지만 방송위원회는 스스로 붕괴했다. 3기 방송위원회로 시작하여 마지막 방송위원회로 전락당한 방송규제기관. 그들은 자신들을 방송위원으로 추천해 준 정치권력으로부터 철저히 종속적이었다. 그 결과 지난 2월26일 방송위원회는 3기 방송위원회를 마지막 방송위원회로 전락시킴으로써 최악의 방송위원회라는 오명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렸다.

2006년 여름, 노무현 정부의 방송통신융합위원회 활동에서부터 2008년2월26일 오후 국회 전체회의 상정직전까지 시민사회단체는 방송은 결코 권력의 품 안에 흡수되어서는 안되는 일념으로 치열하게 싸웠다. 하지만 이는 현실적인 힘의 관계 앞에서 시민사회의 무력함만 드러낸 채 실패한 투쟁으로서 오점을 남기게 된다.여러 가지 원인이 있을 수밖에 없다.

첫째, 방송위원회 위원들의 헌상과 사무처의 투항.
그들은 자신들의 밥그릇을 지키는 전술에도 실패했고, 명분도 상실했다. 그들은 아주 쉽게 이명박 정부 인수위원회에 대통령 직속기구로의 전락을 자진해서 헌상했다. 방송위원회 사무처 또한 자신들의 신분과 연금 문제에 혈안이 되어 스스로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명분을 자신들의 자리보전을 위해서 악용하며 명분마저 상실하는 역사적 과오를 저지른다. 애초부터 그들이 문화부나 정통부와 논쟁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왔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이라는 명분은 아전인수식 명분이었을 뿐이었다.

둘째, 방송사의 투항
방송의 독립을 위해서 헌신했던 선배세대들의 치열한 노력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린 오늘의 방송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유료방송은 논외로 하더라도 지상파 방송의 보도 태도는 결코 그들이 방송의 독립을 열망하지 않는다는 점을 쉽게 확인하는 과정이었다. 강력한 여론형성 능력을 장착하고 있는 지상파가 기구통합과정에서 한나라당 문광위 소속 몇 몇 의원들의 주장마저도 제대로 반박하지 못하며 끌려 다녔다.
그리고 방송위가 이명박 정부 인수위에 투항한 사실을 알면서도 이에 대해서마저 비판적 시각이 담긴 뉴스나 프로그램을 보도하거나 제작하지 않았다. 2월말 방송통신특위에서 방송통신위원회 법이 통과, 법사위 전체회의 등의 절차를 남겨 둔 상황에서조차 그들은 침묵하거나 단신처리하며 외면했다. 전체회의에서 방송통신위원회가 대통령 직속기구로 통과될 시점에서조차 종합적인 검토와 비판을 다룬 프로그램 하나 제작하지 않았다는 것은 지상파 구성원들이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에 대한 최소한의 의지마저 없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터이다.

셋째, 시민사회단체의 정세분석과 대응방향 혼선
이명박 정부의 인수위에서 초기 강력하게 부상했던 안이 ‘정보미디어부’였다. 즉 합의제기구로서의 위원회 구조보다 독임제기구로 방송통신관련 부처 설립을 인수위가 초반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언론노조 언론연대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들은 심각한 수세에 몰린다. 적어도 그 상황까지 갔을 때 우리는 선택지를 준비하고 결단을 했어야 했다. 물 밑에서 설득하고 청원할 것인가? 아니면 물 위에서 투쟁할 것인가? 시민사회는 그 지점에서 판단의 혼란이 있었고 투쟁보다 설득과 청원 쪽으로 방향을 잡음으로써 ‘정보미디어부’에서 최소한의 합의제 기구인 방송통신위원회를 살리는 쪽에 온 힘을 집중했다. 결국 무소속행정기구로서 위원회 구조가 아니고 비록 대통령 직속기구라고할지라도 ‘정보미디어부’보다 낫다는 판단이 앞섰고, 결과적으로 ‘합의제인 위원회 구조’를 일정하게 설득해 냄으로써 시민사회의 일관된 입장이었던 ‘무소속독립기구로서의 위원회 구조’까지 밀고 가는데 실패한다. 투쟁으로 돌파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독임제로서 정보미디어부’를 막았다는 일정한 성취로 인한 안도감이 일을 그르치게 한 것이다. 시민사회단체가 정세를 분석하고 그에 맞는 싸움의 방식을 채택해야 하는데 정세분석에서부터 싸움의 방식 전반에 걸친 미숙함이 드러난 사안이었다.

문제는 지금부터다.
이미 방통위원장 최시중 내정자로 상징되는 노골적인 방송장악 의도가 지금 우리 앞에 투쟁의 과제로 서 있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안상수는 아예 ‘지난 10년 동안 좌파 방송정책을 바로 잡을 추진력 있는 인물’로 최시중을 평가하고 있다.
분명한 시나리오다. 최시중을 축으로 이들은 일단 신문과 방송의 교차소유를 허용하는 방안을 국회에 제출하여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다수당이 유력시되는 한나라당은 지체 없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사실상 조중동 등 이명박계 신문들이 본격적으로 방송시장에 뛰어 들 것이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종합편성채널에 군침을 흘리고 있다. 동아일보는 기존의 보도전문채널을 인수하거나 새로운 보도전문채널을 허가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이 시중의 분석이다.

이는 곧 KBS2와 MBC의 민영화를 겨냥한 일련의 수순으로 볼 수 있으며 결국 집권 5년 중 최시중의 임기인 3년 안에 KBS2와 MBC의 민영화를 밀어붙일 태세다.
그래서 언론노조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는 지금 최시중의 방통위원장 취임 자체를 막아내는 싸움이 이후 진행될 일련의 시나리오를 차단하는 1차 싸움이자 사실상 마지막 싸움인 것이다. 만약 최시중을 막아내지 못하면 이는 곧 교차소유 반대 싸움으로 전환될 것이나, 한나라당이 국회의 다수 의석을 장악하는 그 순간 그들은 밀어붙이지 않을 이유가 없게 됨으로써 줄줄이 미디어공공성의 핵심영역인 공영방송의 민영화 도미노현상이 가시화될 것이다.
지금 싸움이 그래서 마지막 싸움일 수도 있다는 의미다. 언론노조! 그 깃발이 하늘을 향해 곧추 설 것이냐 아니면 진흙탕에 처박힐 것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양문석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



// 언론노보 제450호 2008년 3월 5일 수요일자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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