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론직필]
새 정부는 민주주의를 원하지 않는가?



방송통신위원장 문제로 언론계와 시민사회단체가 들끓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이후 솔솔 흘러나온 하마평에 올랐던 최시중씨는 급기야 방통위원장 내정자로 둔갑하고 말았다. 방통위원회를 독립기구로 설치해야 한다는 논의를 뭉개버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최시중씨 카드가 당연한 듯 보인다. 방통위원회를 손아귀에 넣은 이상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가장 믿음직한 인사에게 방송을 장악하는 시나리오를 구체화할 책무를 부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방통위를 대통령 직속에 둔 한나라당의 변명은 궁색하기 그지없다. 독립기구 시절 방송위원회가 제대로 방송 정책을 수행하지 못했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고 단정 지은 뒤 이제는 권력의 품안에 둬야 일사 분란한 업무 수행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방송과 통신 융합 시대에서 거대 미디어 그룹 탄생이 가능하도록 도우미 역할을 충실히 해야 한다는 예의 시장주의적 입장도 빠뜨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의 정책에는 정치, 자본 권력과 언론이 현재 어떤 거리감과 관계를 설정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한 흔적이 묻어 있지 않았다. 다만 서운하게 했던 방송에 대한 손봐주기와 장기집권을 위한 포석, 덧붙여 정치계급의 협력자인 자본에게 순종하는 방송으로 전향시키겠다는 경악스런 음모로 점철돼 있을 뿐이다.

지금 방송 노동자를 포함한 전체 언론인은 언론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결의를 다질 필요가 있다. 비판적인 기사를 내보냈다는 이유로 경향신문과 한겨레에 광고를 중단하고 경영에 압박을 가해 굴복시키겠다는 오만함이 백주대낮에 자행되는 한국의 현실에 눈감지 말아야 한다. 자본의 이런 오만함은 정치권력에게 적절히 통제받지 못함으로서 벌어진 만행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언론의 자유에 대해 손톱만큼이라도 생각이 있었다면 삼성의 태도를 비난했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침묵했다. 아니 동조했다는 표현이 옳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에게 물어야 한다. 과연 당신들은 이 나라 민주주의의 5년 후 모습을 어떻게 그리고 있는가?

권력은 철저히 쪼개져야 비로소 민주주의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신설 방통위원회는 공영방송의 경영진 선정에 직간접으로 개입하는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 이는 방통위를 넘어 정권의 입김이 그대로 방송에 투영되는 것을 의미한다. 권력 감시를 사명으로 하는 언론을 향해 권력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 위력적인 장치를 보장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언론 자유, 방송 독립과는 동떨어져 있다. 결국 이렇게 집중된 힘은 사회적 약자와 건전한 사회발전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채 사회 기득권층을 위해 통제될 수밖에 없다. 민주적 선거제도에 따라 선출됐다고 사회 각 분야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도 좋다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는 민주주의를 만들어가기 위해 더 많은 시민 참여를 필요로 하고 있다. 언론 역시 참여의 한 주체이며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정치제도가 더 나은 분권을 허용하고 직접 민주제적 요소를 포함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방송은 독립해야 한다. 한국의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식견을 갖춘 인물만이 방통위원장을 맡을 자격이 있다.

고차원
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



// 언론노보 제450호 2008년 3월 5일 수요일자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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