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를 비롯해 언론연대, 문화연대, 방송인연합회 등등.... 언론 시민사회단체들은 지난 20여 일간 최시중 씨의 방통위원장 임명을 막기 위해 치열한 싸움을 펼쳤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지역에서는 조합원들과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반대 성명과 기자회견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음모를 막기 위해 발을 동동 구르며 싸우고 있던 바로 그 시간, 우리의 등에 야멸차게 칼을 꽂는 이가 있었다. 바로 방송을 여당에 상납해 스스로 집권을 포기한 불임정당, 한나라당 2중대 민주당 손학규 대표다.

한국 방송역사에 영원히 얼룩으로 남을 지난 한달을 되돌아본다. 2월 14일(금),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두고 여야의 줄다리기가 한참 진행될 때, 언론 시민단체 대표들은 민주당 김효석 원내대표와 마주 앉았다. ‘<방송통신융합기구설치법>은 졸속 통과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조직법의 흥정 대상이 되어서는 절대 안 된다.’ 는 것이 시민단체의 요구였다. 김효석 원내대표는 자신들도 방송 독립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다며 무려 4번에 걸쳐 ‘절대 정부조직법과 흥정하지 않겠다, 이 문제는 방통특위에 위임되어 있으니 특위 결과에 따라 별도로 진행하겠다.’고 약속했다. 무려 4번에 걸쳐….

그러나 주말이 지나자마자 정부조직법 여야 원내대표 합의가 발표되었다. 다른 조항들이 짧은 단문인 반면, 방통위원회 관련 <제7항>은 무려 3배 정도의 분량이었다. 양 보다는 그 내용이 눈을 씻게 만들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대통령 직속기구로 한다. 대통령이 위원 2명, 그 중 1명을 위원장에 임명한다...’ 한나라당은 이렇게 변명했다. ‘노무현 정부 때 위원 5인 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한 법안보다 진일보했다’고. 민주당은 변명조차 없었다. ‘여야 4:1 구도를 3:2로 만들었으니 성공한 것 아니냐’고 자화자찬이었다. 야합이었다. 손학규와 김효석은 정통부 살리기, 해수부 살리기에 눈이 멀어 정권의 향배를 가름할 수 있는 방송을 송두리째 한나라당에 상납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최시중씨 방송위원장 내정이 발표되었다. 방통법 통과로 방송정책, 심의, 광고의 3요소, 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손아귀에 쥔 이명박 대통령이 그것도 모자라 최측근을 위원장에 앉혀 완벽하게 방송을 장악하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부실 장관 후보들의 낙마가 방송 때문이라고 판단해서 그랬건, 한나라당 내부 권력투쟁의 결과로 최시중 씨의 전면배치를 선택했건, 대통령의 의중을 그대로 관철시킬 최 씨의 방통위원장 임명 시도는 지난 20년, 방송독립을 위해 흘려온 우리의 피땀을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 사안이었다.

언론노동자, 현업인은 물론이고 시민단체와 언론학자들, 일반국민들도 반대 목소리를 분명히 했다. 민주당에 청문을 거부하고 절대 수용불가를 선언하라는 요구가 빗발쳤다. 그러나 우리가 싸움의 결의를 다지고 있는 그 시각, 민주당은 정파 간 나눠먹기로 야당 몫 방통위원 2명을 결정하려고 모의하고 있었다. 2차례의 점거 농성에 가까운 항의 방문이 있었다. ‘1) 시민사회 단체의 의견을 수렴하라, 2) 공정하고 투명하게 위원을 선임하라, 3) 대통령 직속기구라는 한계에도 방송 독립을 위해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인사들을 선임하라.’ 이 세 가지가 핵심적인 요구였다. 손학규 대표는 ‘한나라당의 최시중 씨 임명을 반대하는 입장에서 민주당이라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방통위원을 선임하겠다’ 고 공언했다.

그로부터 며칠간, 학계와 시민단체에 추천위원 천거를 받는다며 민주당이 분주했다. 방통특위 소속 민주당 의원 4명과 외부 추천 인사 5명, 총 9명으로 추천위원회가 구성되었고 추천위원 명단이 발표되었다. 상황을 낙관한 시민단체 인사들 사이에서 ‘한나라당에도 밀실임명 중단과 사회 각계의 다양한 의견 수렴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나왔다. 그러나... 단 꿈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산산조각 나버리고 말았다.

역시 일요일 아침, 손학규 대표와 추천위원장으로 임명된 건국대 김학천 교수가 만나 외부 추천위원들을 갑자기 물갈이 했다는 얘기가 흘러 나왔다. 여성민우회 권미혁 대표와 문화연대 전규찬 소장이 배제되고 그 자리에 손 대표와 가까운 인사들이 채워졌다. 두 인사와 소속 단체의 명예가 무참하게 짓밟힌 것은 차치하고 ‘왜, 무엇을 위해 위원들을 교체했는지’에 대해 단 한마디의 설명도 없었다.

다음날(17일. 월) 아침 7시 30분, 최시중 씨 국회 인사청문회가 열리는 바로 그날 아침. 언론노조와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회 앞에서 최시중 씨 절대불가의 마지막 절규를 토하던 바로 그 시간에…. 급조된 9명의 추천위원들은 심사기준을 날림으로 정하더니 단 9시간 동안만 공모를 한다고 발표했다. ‘그렇게 급하게 하겠습니까?’ 라는 일부 추천위원들의 부인도 있었지만, 다음날(18일. 화) 아침 9시 회의에서 이틀 만에 야당 몫 방통위원을 결정하겠다는 손-김의 시나리오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착착 진행되었다.              

마침내 화요일 아침 8시 30분, 시민단체 회원들은 다시 국회로 모였다. 김학천 심사위원장과 적지 않은 위원들이 그동안 방송독립, 언론자유를 외치던 분들이라 차마 문을 박차지 못했다.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 전날 최시중 씨의 인사청문회에서 그의 자질과 과거 행적, 재산, 가족들까지 가혹하게 검증하던 야당이 불과 9시간의 공모를 통해 등록한 후보들이 스스로 작성한 서류만 놓고, 과거 행적이 어떠했는지, 방송독립의 의지는 있는지, 재산 등의 문제는 없는지, 검증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하고, 제대로 된 인터뷰 한 번 하지 않고, 초등학생 시험지 채점 하듯이 이렇게 하시면 안 된다고...’ 간곡하고 절절하게 호소했다.  

그러나 야당 몫의 방통위원 2명을 추천하는 과정은 한나라당 뺨치는 방식으로 그렇게 끝났다. 한나라당 못지않게, 아니 그보다 더, 방송은 산업일 뿐이라 여기는 손 대표, 방송독립에는 관심 없고 오로지 재벌 통신사의 콩고물에나 관심 있는 사이비 야당. 그들이 원하던 결론대로 재벌 통신 사업자를 위무할 통신학자 1명과 탄핵방송을 탄핵했던, 한나라당에서나 추천함직한, 강부자급, 학내비리는 눈 감고 방송위원회를 기웃거리던 교수 1명이 선정되었다. 손 대표를 포함한 몇몇 위원들의 명백한 사전담합으로 진행된 민주당 방통위원 선정은 그렇게 끝났다. 이로써 민주당은 공영방송 장악, MBC 민영화, 신문방송 교차소유를 통한 이명박 정권의 방송장악 시나리오를 저지할 의사가 전혀 없다는 것을 스스로 폭로했다.  

방통위법 통과를 막기 위해 마지막 순간까지 죽기 살기로 여의도를 뛰어 다니던, 언론노조 정책실 국장이 있다. 피눈물 나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거지발싸개 같은 방통법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 그는 만취해서 대성통곡 했다. ‘내가 잘못해서, 힘이 약해서 막지를 못했다...’고.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사람들의 낯빛이 하루아침에 뒤바뀌는 세상에서 어찌 힘없는 한사람의 잘못이냐고, 여야의 탈만 바뀌었을 뿐이지 ‘그 놈이 그 놈인 국회가 어찌 가난하고 약한 백성을 위한 방송을 살려 주겠냐’고 위로했지만... 그는 밤새도록 울었다.

전선은 명확해졌다. 오히려 다행이다. 보수 정치권이, 자리를 탐하는 노욕의 학자들이, 한나라당의 트로이 목마 손학규가 방송 독립 투쟁의 앞줄은 아니라도 옆에라도 서 줄 것이라는 허망한 기대를 빨리 접을 수 있게 되어서... 싸움은 이제부터다.  

언론노동자! 그대가 힘이고 희망이다.  


최상재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



// 언론노보 제451호 2008년 3월 19일 수요일자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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