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프로그램 무시하는 여야, 또 다시 표류하는 선거 문화


이번 선거가 종래와 다른 점은 정치개혁을 향한 시민들의 열기가 대단히 높다는 점과 대중적 기반을 갖춘 진보정당이 등장함으로서 한국 정당사에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이번 선거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도 활발한 토론을 통해 유권자들이 새로운 주장들을 접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할 기회를 많이 접해야 한다. 다시 말해서 활성화된 토론을 중심으로 선거문화가 보다 발전적인 방향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야의 발빼기와 방송사 경영진의 소극적 태도가 우리의 선거문화를 여전히 과거의 모습에 머무르게 하고 있다.
먼저 여야가 각 방송사의 토론프로그램에 갖가지 이유를 대며 불참하는 것이 문제다. 이미 다른 매체에서 지적된 대로 민주당은 상대정당에서 지역구 의원이 나온다는 이유로 MBC 정운영의 100분 토론을 무산시켰다. 또한 각 방송사의 간판 토론 프로그램에 참석을 거부함으로서 이 프로그램들의 주제가 바뀌기도 했다. 부산에서는 한나라당의 전횡이 심각했다. 지난 달 24일 한나라당 부산시 지부는 지구당 위원장회의를 열어서 각 방송사들의 TV토론회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이 결정은 방송사들의 강경입장과 시민단체의 반발로 번복되고 한나라당은 결국 몇 차례 토론에 참석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토론불참 입장을 고수하던 시기에 본사와 편성제작회의를 거쳐야 했던 KBS는 결국 토론 방송 계획을 잡지 못해 방송을 하지 못하게 됐다.
이렇게 여야가 TV토론을 경시하거나 순 정략적 관점에서 참가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이들이 기본적으로 선거를 정책대결의 장으로 이끌 의지가 없음을 보여준다. 상대방 토론자가 누구인가를 보면서 격이 맞네 안 맞네를 따지는 것은 여전히 정치인들이 쓸데없는 권위의식에 빠져있다는 증거이고, 여당 혼자서 여러 야당을 상대해야 하기 때문에 곤란하다는 것은 토론에 불참하기 위해 짜낸 핑계에 불과하다. 또한 공천 받은 것으로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지역의 정치인들에게 토론은 귀찮은 일일 뿐이다.
이런 사고 속에서 지역감정은 활개를 치고 돈 적게 드는 선거, 정책 선거는 설 자리를 잃는다. 정치인들의 후안무치 때문에 유권자들은 선거 때라고 해서 딱히 어느 당이 어떤 정책을 주장하는 지 알 도리가 없게 되며 완전히 표찍는 기계로 전락한다.
방송사 경영진의 소극성도 문제의 한 원인을 제공한다. MBC는 지난 1월 노사가 합동으로 토론 프로그램 운영준칙을 만들면서 "출연자가 일방적으로 불참할 경우 사회자는 토론 서두에 불참 이유를 분명하게 밝힌다" "출연자의 일방적 불참이 주제 선정이나 다른 토론자 구성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 고 약속했었다. 그러나 경영진은 막상 민주당이 불참의사를 전달하자 노조와의 약속을 저버리고 외화를 방영했다. 부산 KBS가 만약 한나라당의 불참에도 불구하고 토론방송에 대한 의지가 확고했다면 후보간 토론 방송 계획 자체가 백지화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방송사 경영진들은 여야의 무책임한 토론 프로그램 불참에 대해 국민의 눈과 귀로서의 사명을 다한다는 자세로 맞서지 않고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였다.
자신의 정치적 견해와 정책을 완전히 투명하게 공개하고 심판받기 보다는 어떻게든 당선만 되면 된다는 정치권과 그리고 이들의 눈치를 보느라 소극적 자세를 보이는 방송사 경영진의 근본적인 태도 변화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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