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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은’과 ‘영구집권’ 그리고 민주주의
[조합원과 함께]
[465호] 2009년 05월 22일 (금) 20:20:56 언론노조   media@media.nodong.org

   

▲ 김보협 (전국언론노동조합 부위원장, 전국신문통신노조협의회 의장, 한겨레신문지부장)

여럿이 모여 앉으면 그 사람 숫자만큼의 교육관이 나옵니다. 얼마 전 술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한 사람은 타협하면서 살았다면 ‘귀족’이 될 수도 있었지만 십수 년 동안 불의에 맞서 싸워온 진보적 인사입니다. 논쟁의 다른 축은 경제 관료 출신으로 제 기준으로 보자면 ‘건강한’ 보수에 가깝습니다. 이름을 대면 알 만한 두 사람이 교육 문제를 두고 인상적인 논쟁을 벌였습니다. 편의상 진보와 보수라 부르겠습니다.

‘진보’는 지향해야 할 가치관과 실재가 다르다고 했습니다. 학원 보낼 필요가 없도록 공교육을 강화해야 하지만, 내 아이를 공교육에만 맡겨두고 있을 수 없다는 거지요.

진보 : 전교조 선생님들도 밤에는 이 학원, 저 학원으로 실어 나르느라 바쁘다던데요.
보수 : 일부겠지요. 세상을 바꾸겠다는 사람들이 그러면 됩니까.
진보 : 큰 애는 공교육만 믿다가 실패했어요. 아이들이 자라서 부모를 원망하면 어떡합니까.
보수 : 무슨 근거로 벌써 아이가 실패했다고 단정하십니까. 학업 성적으로 아이들을 한 줄로 세우는 교육이 정상입니까. 몇몇을 뺀 나머지는 모두 낙오자입니까.
진보 : 누가 그걸 모릅니까. 요새는 아이들이 먼저 알고 끼리끼리 모여요. 국제중 갈 애들, 외고, 과학고 갈 애들... 지들이 먼저 알고 이 학원 보내 달라, 저 학원 보내 달라 합니다.
보수 : 그게 정말 아이들이 원하는 걸까요? 아이들이 행복해 합니까? 터놓고 얘기해 보셨어요? 혹시 어른들의 욕망이 투영된 것 아닌가요?

논쟁은 그 뒤로도 한창 이어졌습니다. 대부분의 조합원들도 이미 겪고 있거나 조만간 닥칠 문제지요. 초등 4학년과 2학년 아이와 살고 있는 제 경우는 이렇습니다.

교과 관련 학원은 보내지 않습니다. 자신의 몸을 지킬 수 있는 무술 하나, 마음 내킬 때 다룰 수 있는 악기 하나, 의사소통에 불편 없는 외국어 하나는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정규 교과 과정에서든,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서든 이 세 가지만 해결된다면 참 좋겠는데 그렇지 못해 사교육비가 듭니다. 셋 중 하나만 한 학기 혹은 1년씩 보내자는 게 제 생각인데, 아내는 세 가지 모두 꾸준히 하지 않으면 소용없으니 다 보내야 한다고 합니다. 제가 번번이 집니다만, 생계곤란 탓으로 조만간 제가 이길 것 같습니다.

구구절절이 말씀드린 이유는, 최근 서울시 교육청이 사교육을 없애겠다면서 사교육비를 많이 쓰는 동네(강남ㆍ서초ㆍ송파구)에 관련 예산을 퍼붓겠다는 보도 때문입니다. 이른바 ‘보은정책’입니다.

확실하게 계급투표를 한 이들에게 은혜를 갚는 것이지요. 나름 일관성이 있지 않습니까.
조만간 한판 전쟁을 치를 언론악법도 마찬가지입니다. 1등 공신에 큰 상을 내리고 그 결과로 또 집권을 보장받고... 경제살리기, 일자리 창출, 여론 다양성 온갖 거짓말을 둘러대도 ‘보은’과 ‘영구집권’이라는 추악한 거래를 숨길 수는 없습니다. 요새는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해 머리가 핑핑 돕니다. 곧 6월입니다. 어떻게 하시렵니까.


// 언론노보 제465호 2009년 5월 22일 금요일자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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