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20일 민실위 보고서>
지난해 국회에서 날치기 통과된 미디어법의 위법성이 확인했는데도 오류를 바로잡기는 커녕 오히려 위법적인 시행령까지 나오게 됐다. 그동안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의원의 심의 표결권이 침해됐다고 판단한 만큼 먼저 국회가 방송법을 수정해야 한다'며 70일 가까이 시행령의 국무회의 상정을 거부해온 이석연 법제처장이 갑자기 입장을 바꿨기 때문이다. 이 처장은 "국회가 방송법을 수정해야 한다는 판단에는 변함이 없지만 국회 논의가 진전이 없는 상황에서 더이상 국무회의 상정을 미룰 수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의 고뇌와 별개로, 그의 선택은 앞뒤가 맞지 않는 모순이다. 헌재의 결정 취지대로라면, 국회 재논의를 통해 위법성이 해소될 때까지 절차를 중단하는 것이 순리이기 때문이다. 이 처장 스스로 헌법 정신에 입각한 법리와 현실 사이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고 말했지만 어떤 이유에서도 위법적인 현실을 택한 것이 정당화될 수는 없는 일이다.
이 처장의 말대로 국회에서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천정배, 최문순, 장세환 의원이 국회의원직을 집어던지고 한겨울에 농성을 했고, 재논의를 거부하는 국회의장을 상대로 부작위 권한쟁의심판 청구소송이 지금 헌재에 계류중이다. 자신의 논리대로라면, 정부와 여당의 뜻대로 시행령을 국무회의에 상정할 게 아니라 국회의장에게 재논의를 촉구하든지, 아니면 헌재를 향해 계류중인 소송을 신속히 처리하라고 촉구했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언론도 이와 관련된 보도를 하면서 시행령의 국무회의 상정이 위법하다는 점을 크게 지적하지 못했다. 연합뉴스가 "방송법과 신문법 시행령의 국무회의 상정으로 가상.간접광고가 허용되는 등 미디어시장 재편 움직임이 가시화된다"며 시행령 개정안의 내용 전달에만 치중했고, 조선도 "더이상 국회 못 기다린다"는 발언만 전했을 뿐 헌재가 강조한 재논의 요구의 의미는 언급이 없었다. 동아는 세종시 특별법 문제를 주로 다룬 이석연 처장의 기자간담회 내용을 전하면서 마지막 문장에 간략하게 방송법 시행령 상정 계획만 언급했다.
한겨레가 그나마 '날치기 방송법 다음주 시행'이라는 제목으로 "헌재가 방송법의 국회처리 과정에서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는 판단을 내린바 있다"고 지적했을 뿐이다. 물론 방송도 큰 관심을 갖지 않았다. 미디어법이 날치기 통과되고, 헌재 결정 당시 그토록 큰 파장을 겪은 것에 비하면 정작 헌재 결정의 취지가 퇴색하고 위법이 현실화되고 있는 지금은 너무나도 슬그머니 넘어가고 있다.
일반 시민들의 백마디 말보다 고위 관리나 정치인의 한마디 말이 더 중요한 것은 그만큼 그 말에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세종시를 원안대로 추진하겠다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이후에 약속을 뒤집어도 약속 위반에 대한 비판은 없이 현상만 중계보도하는 것이 지금 우리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흔히들 우리 국민의 건망증을 얘기하면서 비판을 했다가도 금세 잊는다고 하지만, 국민이 잊지 않도록 상기시켜 주는 것도 언론의 중요한 임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