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는 정치인들의 홍보매체가 아니다!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최근 몇 개월간 KBS의 예능·교양 프로그램에 겹치기 출연한 데 이어 여권 인사들의 대거 출연한 <명사스페셜> 방송 후 KBS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제작현장의 목소리를 집중적으로 들어봤다.

■ 좌절(?)된 정두언 의원의 ‘KBS 출연 6관왕’


지난 2월 15일 설연휴에 방송된 <설 특집 명사 2010 스페셜>에는 김문수 경기도지사, 정진석 한나라당 의원, 주호영 특임장관, 이참 관광공사 사장 등 여권 인사 4명이 무더기로 출연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이 야권 인사로 출연하기는 했지만 누가 보더라도 편향적인 출연자 선정과 ‘행동하는 도지사’ 운운하는 찬사는 사내외의 비판을 사기에 충분했다. 방송후 시청자 일일상담 보고서에 올라온 의견에서 한 시청자는 ‘명사들의 스페셜이란 미명하에 사전 선거운동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특히 김문수 지사의 경우는 지자체장에 재출마를 하려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공영방송에 출연했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데 <명사스페셜>에는 한나라당 정두언 의원이 출연할 예정이었다가 취소가 됐다. 만약 출연이 이뤄졌다면 정치인이 교양·오락프로그램에 4개월 여 동안 6번이나 출연하는 기록을 세울 뻔 했다. 정의원은 녹화일(2월 6일) 직전까지 출연이 예정돼 있었으나 2월 4일 편성제작회의에서 ‘타프로그램 출연빈도 등 검토하여 출연자 변경할 것’이라고 지적하는 등 사내에서 문제제기가 있자 출연이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가 어떤 경로로 출연을 하게 되었는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사랑의 리퀘스트>, <열린음악회> 등에서는 데스크로부터 정두언 의원을 출연시키라는 지시가 직접 떨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정 정치인이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 교양·오락프로그램에 집중적으로 출연한 것은 아마도 전무후무한 일일 것이다. 이는 예능국장을 비롯한 간부진이 시청자들에게 사과를 하고 응분의 책임을 질 사안이다. 개별 제작진들과는 달리 간부진들은 사전에 이 문제를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알고도 출연을 강행했다면 그것은 직무유기에 가깝기 때문이다. 아울러 사측은 이에 대한 진상조사를 회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 정두언 의원 출연 2주 후.. 이번엔 윤상현 의원


<사랑의 리퀘스트>에 정두언 의원이 출연한 것은 지난 11월 21일. 그런데 2주 후인 12월 5일에는 이 프로그램에 같은 한나라당의 윤상현 의원이 출연을 했다. 특정 정당의 정치인들이 2주 간격으로 연달아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이 방송에서는 윤상현 의원이 황영조, 장윤창, 임오경 씨 등 과거의 스포츠스타들과 함께 인천 남구 숭의동 재개발 지역에서 노인들에게 연탄을 배달해주고 자장면을 대접하는 모습이 방송됐다. 그런데 인천의 숭의동은 윤상현 의원의 지역구인 남구 을에 속해 있는 곳이다. 결국 자신의 지역구에서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 방송으로 소개가 된 것. 본인으로서는 1석 2조의 홍보 효과를 봤겠지만 과연 이것을 순수한 봉사활동으로 볼 수 있는지, 공영방송 KBS가 이를 훈훈한 미담으로 소개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 부당한 지시, 간섭은 단호히 거부해야

정치인들에게 대체로 정치와 관련 없는 교양·예능 프로그램 출연을 선호하는 편이다. 서민들과 어울려 일을 하고, 소탈하게 마이크를 잡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백마디의 연설보다 유권자들에게 훨씬 더 친숙하게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치인들은 기회가 있으면 이런 프로그램에 출연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는 제작진들에게 그리 달가운 일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출연이 프로그램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뿐더러 자칫 형평성 시비에 휩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정치인들을 출연시키는 문제에 대해서는 최대한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벌어지고 있는 상황들을 보면 금도의 선을 넘고 있다는 느낌이다. 예능 PD들은 이에 대해 분명히 전보다 아이템이나 출연자 선정에 위로부터의 ‘오더’가 많아졌다고 말한다. 더 큰 문제는 ‘뻔뻔스럽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방송에 적합하지 않은 아이템이나 출연자 선정 요구가 많아지고 있다는 것. 더군다나 일선 제작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일방통행식으로 결정을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2008년 8월 이병순 사장 취임 이후 제작에 대한 불합리한 간섭이 많아지고, 사측과의 계속된 싸움으로 피로감이 누적돼 패배주의적 정서가 확산돼 있는 것도 이러한 일이 발생한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논란이 되는 예능 프로그램의 경우 실무 PD들 사이에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제작 과정에서부터 느낀 경우가 많았지만 이런 분위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 관철시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예능제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일선 제작진들이 공통으로 직면해 있는 상황이다. 지금 제작현장에서는 출처를 알 수 없이 어디선가 떨어진 ‘오더’가 전에 없이 난무를 하고 있다. 경영진과 간부들이 후배들과 시청자들에 대해 최소한의 책임을 느낀다면 제작자율성을 무시하는 이러한 행위들은 즉각 중단을 해야 한다.

아울러 제작진들 역시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지시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거부를 해야 한다. KBS 방송강령에는 ‘방송편성권의 자율성은 보장되어야 한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보도나 프로그램을 제작, 방송함에 있어 외부의 압력은 물론 내부의 부당한 간섭을 배제한다.’라고 되어 있다. 부당한 간섭을 거부하지 못하고 수용한다면 결국 그 책임은 제작자 자신에게도 있다는 의미이다.


세종시 논란.. 그리고 <KBS 스페셜- 도시의 탄생>  

 지난 2월 7일 <KBS 스페셜>에서는 세계의 과학도시들을 소개한 ‘도시의 탄생’편이 방송됐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스위스 제네바, 일본 츠쿠바, 독일 드레스덴 등 세계 과학의 중심도시들을 소개하며 도시가 생존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학계, 정부가 협력해 ‘과학으로 여는 르네상스’를 이룩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런데 방송이 나간 후 사내외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최근 세종시 논란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를 뒷받침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제기됐다. 시청자 게시판에는 이러한 게시글이 10여건 가량 올라왔고 다음날 사내 심의모니터 의견에서는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국민투표 논란으로 격화되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이는 방송물을 제작해 정책홍보에 적극 동참할 필요가 있었는지 의문이었음’ 이라고 지적했다.

이 프로그램은 <과학카페>팀에서 지난 12월경 기획해 제작한 것으로 방송의 내용이나 방송 시점상 논란이 될 소지가 있다는 점은 내부에서도 논의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방송은 세종시 논란이 여전히 뜨거운 2월 7일 예정대로 방송이 됐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21세기에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기업과 학계 등이 중심이 된 과학도시 전략을 택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과학도시의 성공사례로 소개된 도시들이 있는 유럽이나 미국, 일본은 한국처럼 수도권 집중화가 심한 곳이 아니라는 점은 언급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순수하게 과학도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기획의도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세종시 원안을 폐기하며 급조한 ‘교육과학중심 경제도시’의 논리와 차별이 없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 프로그램이 애초에 의도했던 바가 무엇이었든 간에 정부의 세종시 수정안을 연상시킨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세종시 문제는 여권 내에서조차 합의점을 찾지 못할 정도로 국론분열이 극심한 사안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의 탄생’이 진정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숙고해 볼 필요가 있다. 
 

MB 말씀은 곧 진리이시니

예능,교양 프로그램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놀이터가 됐다면 뉴스에서 MB는 그야말로 ‘위대한 영도자’가 되고 있다. 2월 들어 청와대발 뉴스 목록을 보자.


MB는 2월3일 녹색성장위에서 지방청사에 대해 일갈하고, 다음날 비상경제대책회의에서 소프트웨어를 살려야한다고 말했다. 그 다음날 경기도 업무보고에서는 뜬금없이 “정치에도 이념에도 얽매이지 않고 국익을 위해 일하겠다”는 상당히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 물론 세종시를 염두해 둔 말이다. 2월9일 충북 업무보고에서도 “세종시의 최대 수혜지역은 충북”이라는 역시 고도의 정치적인 발언을 한다. 군부대를 방문하고 전통시장에 장애인 회사도 들른다.

이 모든 발언과 일정은 KBS뉴스를 통해 중후하게 다뤄졌다. MB는 KBS 뉴스에서 모르는 것도 없고 못하는 것도 없고 정치나 이념도 초월했으며 국군장병과 서민과 장애인을 사랑하는 나라의 어르신이다. 특보 사장이 5공 시절 만들었던 굴종과 오욕의 땡전 뉴스가 21세기 다시 부활하고 있다. 왜 KBS를 그렇게 먹고 싶어했는지 그리고 그것도 만족 못하고 MBC를 먹으려하는지 이해가 된다.


매카시즘의 부활 ‘우리법연구회를 사냥하라’  

법원이 최근 잇따라 내놓은 ‘개념 판결’ 덕분에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개발에 땀이 나고 있다. 이번 기회에 법원까지도 국정 철학을 구현하도록 만들고야 말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다. 학술 모임에 불과한 ‘우리법연구회’도 차제에 씨를 말리겠다는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보 사장도 이런 중차대한 과업에 숟가락을 하나 얹으려고 눈이 뻘겋다.

이른바 사법개혁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한나라당은 지난 10일 법원 수뇌부를 겨냥해 전관예우 관행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엉뚱하게 튄다. 전관예우로 고액의 수임료 수입을 올렸다는 박시환 대법관 앞에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라는 레떼르가 붙어있다. 한나라당 의원의 말을 인용한 것도 아니다. KBS 기자의 멘트다. 그러면서 갑자기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해야한다는 한나라당 의원의 말을 인용한다.

도대체 논리도 없고 개념도 없고 그래서 어이도 없다. 전관예우는 반드시 근절해야할 악습이다. 하지만 우리법연구회라는 단체가 전관예우라는 악습에 어떻게 개입돼있는지 아무런 설명도 없다. 그냥 박시환 대법관이 우리법연구회 출신이고 전관예우를 받았이니까 우리법연구회를 해체해야 한다는 막무가내 발언을 중요한 팩트처럼 대접해준 셈이다. KBS 정치팀이 아니라 한나라당 사내방송팀이라고 해도 큰 욕이 되지 않을 성 싶다.


 라디오 본부 편성위원회 한 달째 거부... 법률 대응 검토

대통령 주례연설 등 방송의 공영성을 둘러싼 현업 PD들과 사측간에 갈등의 골은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라디오본부내 공식 대화 창구인 라디오위원회가 열릴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라디오위원회는 편성 규약에 따라 만들어진 본부별 편성위원회의 하나로써 방송 프로그램의 제작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해 만든 기구이다. 라디오위원회의 실무자측인 현업 라디오PD들은 지난 1월 25일 책임자측에 임시 라디오 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하지만 책임자측인 라디오본부의 사측 간사는 “라디오위원회는 공정방송위원회의 하위기구이며, 공정방송위원회는 노사대표로 구성되고, 노측 대표는 현재 KBS 구노조”라는 점에서, “새노조원이 대부분인 라디오PD들이 요구하는 라디오위원회는 개최가 불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편성규약에 규정된 편성위원회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전체 편성위원회’와 ‘본부별 편성위원회’두 가지이다. 그리고 위원회의 구성은 ‘제작책임자’(사측)와 ‘제작실무자’의 협의체로 규정돼 있다. 편성위원회의 근거가 되는 편성규약 제2조 2항에 따르면 “취재 및 제작 실무자”라 함은 KBS와 정규적인 고용관계를 맺고, 취재 및 제작을 담당하는 해당 분야의 ‘실무 종사자’를 말한다. 즉, 실무 종사하는 노조원이 아닌 것이다.

물론 현재 전체 편성위원회는 노조의 공방위가 대체하도록 단협을 통해 규정돼 있다. 하지만 이는 노조를 통해 전체편성위원회의 규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조치였을 뿐 본래의 편성위원회의 취지와는 다름은 주지의 사실이다. 또한 본부별 편성위원회가 공방위의 하부조직이라거나, 노사간의 협의 테이블이라는 규정은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오히려 KBS 편성 규약과 각 본부별 운영세칙을 보면, 노사 공방위로 대체해 역할을 하고 있는 전체 편성위원회와는 달리, 본부별 편성위원회는 노조와 상관없이 실무자들이 개최를 요구할 수 있도록 돼 있다. 또한 위원회 실무자측 구성(KBS편성규약 8조 3항)은 본부별 총회를 거쳐 민주적 방법으로 선출하게 돼 있지 노조원인지 아닌 지 자격 검증을 하라는 말은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편성규약에 따라 기존 노조가 관여하는 전체 편성위원회와 관계없이 실무자들이 독자적으로 위원들을 구성해 개최할 수 있도록 돼 있는 것이다.

이 내용은 관련 법률 전문가는 물론 KBS노사 협력팀까지 확인해 준 내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측 간사는 “노사협력주간의 유권해석을 받았다”는 등 사실과 무관한 자의적 해석만을 내 놓으며 라디오 위원회 개최를 거부했다. 라디오 주례 연설과 조직 개편에 대한 대책, 지역 순환 근무 등 세가지 안건으로 요구한 임시 라디오 위원회는 결국 묵살 당했다.

그럼에도 라디오PD들은 본부 편성위원회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지난 2월 1일 라디오PD 총회를 열어 5명의 라디오위원회 실무자측 위원을 선출했다. 그 후 사측은 12일 보도본부의 편성위원회인 보도위원회를 새노조원들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하기에 이르렀고, 라디오PD 실무자측은 이에 근거해 19일 다시 사측에 임시 라디오 위원회 개최를 요구했다. 하지만 사측 간사인 서기철 라디오편성팀장은 여전히 앵무새처럼 새노조와는 교섭대상이 아니라서 라디오위원회를 개최할 수 없으며 이는 공식 회사의 입장이라는 답변만을 반복하고 있다. 또한 지난 12일 개최된 보도본부의 경우는 기자 실무자측의 공식 확인에도 불구하고 보도위원회가 아닌 간담회라고 거짓 증언을 하며 한 달 째 라디오본부 편성위원회가 거부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라디오본부 간부들은 라디오위원회에서 논의되어야 할 라디오PD 지역 순환 규정을 밀실에서 만들어 구노조에 통보하기까지 했다. 사측의 라디오위원회 거부는 단순한 태만이나 오류의 문제가 아니라 명백한 편성 규약 위반이다. 만일 지속적으로 이런 사태가 자행될 경우 법률적 대응까지 검토할 수 있다.

라디오PD들의 거의 대부분이 구노조에서 탈퇴한 가운데, 구노조 신분 운운하며 라디오 위원회를 거부하는 것은 방송의 공정성과 제작 자율성을 확보하고, 제작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분쟁을 줄이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마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며 선배들이 힘겹게 쌓아온 민주주의와 정의를 향한 활력과 의지마저 부정하겠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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