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있는 언론, 최소한의 장치를 위해
동지적 연대와 사회적 관심 절실


SBS에서는 지난 2008년부터 줄곧 노사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 SBS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된 것과 동시이고, 누구나 알겠지만 정권이 바뀐 것과도 동시이다. 2008년 벽두부터 노사 합의가 사측에 의해 파기되기 시작했고 그로부터 지금까지 3년째 SBS는 노사 분쟁 중이다.

2004년에 SBS는 한 차례 큰 홍역을 치렀다. 이른바 SBS 재허가 사태다.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정당 정권 시절에 태어난 방송으로서는 어쩌면 한 번은 거칠 수밖에 없는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을 수도 있다. 당시에는 정권은 물론 많은 시민사회단체들이 ‘방송의 문제=SBS 문제’ 혹은 ‘방송 개혁=SBS 개혁’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SBS 문제를 들여다보았다. 당시 노조는 “방송은 권력과 자본 모두로부터의 독립을 확보해야 한다”는 매우 원칙론적인 입장에서 대응했다. 과거 보수정권 하에서의 SBS의 문제가 결국은 자본과 권력의 유착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결국 진보든 보수든 권력으로부터의 개입은 어떤 경우에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 당시 노조의 결론이었다. 또한 방송이 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저지해야 한다는 것도 노조로서는 핵심적인 목표였다.

SBS 노조는 외부적으로는 SBS 내부 개혁을 구성원들의 손에 맡겨줄 것을 요청했고, 많은 분들이 SBS 노조의 활동을 지켜보겠다며 원군이 되어 주었다. 내부적으로는 치열한 싸움을 통해 대주주의 전횡을 고발하고 반성하고 이런 일의 재발을 막는 장치를 도입하는 데 부분적이나마 성과를 냈다. 이렇게 당시의 싸움은 겉으로 보기에는 상당한 성과를 내고 일단락됐다. SBS 노조는 산하 아트텍, 뉴스텍 노조와 함께 본부를 구성해 언론노조에 가입했고, 대외적 활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라고 할 수 있다. SBS는 소유경영 분리를 추구한다며 노조의 동의 하에 지주회사로 전환했다.

그로부터 SBS는 사실상 망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방송의 문제는 공영방송의 문제로 등치되었고 특히 정권이 바뀌면서 방송 장악의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민영방송에 대한 관심은 수면 아래로 사라졌다. KBS, YTN을 거쳐 MBC까지. 구호는 항상 ‘공영방송 사수’였다. 그런 와중에 민영방송 SBS에서는 자본에 의한 방송 장악이 노골적으로 진행되었다.

사실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한 것은 노조로서는 엄청난 모험이었다. 내부적으로 반대 의견도 만만찮았다. 소유 경영 분리라는 명분도 좋지만, 지주회사 체제가 되면 지상파방송 SBS로서는 변화하는 방송 환경에 적응할 수단을 잃게 되고 대주주는 SBS를 이익을 창출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한 번 물길을 트고 나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당시 노조는 ‘언론인으로 거듭나겠다’는 윤세영 회장의 말을 믿었다. 사측은 독립 경영, 책임 경영을 보장하겠다고 서면 약속까지 했다. 재허가 탈락의 위기로부터 SBS를 구한 것이 노조였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자본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사측은 지주회사로 전환하면서 SBS의 독립 경영을 보장하기 위해 사외이사를 노조가 추천하게 하고 그 사외이사가 감사위원이 되도록 한다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2007년 12월에 한 노사간 합의는 바로 다음달에 대주주에 의해 파기되었다. SBS의 안정적 경영과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SBS가 생산한 콘텐츠를 다른 계열사에 제값을 받고 팔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역시 지켜지지 않았다. 지주회사의 자회사가 된 계열 케이블 PP나 인터넷 사업자에게 여전히 경쟁사에 비해 싼 값에 콘텐츠를 넘기고 있다. 이런 엉터리 계약을 통해 SBS에 손해를 입히는 임원이나 간부는 대주주의 총애를 받는 구조다. 더구나 2009년에는 경제 위기를 이유로 일방적으로 임금을 체불하기도 했고 아예 고정상여를 깎자고 나서기도 했다. 사원들의 처우에 관한 자잘한 노사 합의와 관행들도 파기되거나 무시되기 시작했다. 오로지 대주주 입맛대로 방송이 운영되는 것이다.

지주회사라는 방송법은 물론 아무런 사회적 통제도 닿지 않는 곳에 둥지를 튼 대주주는 SBS라는 방송사에 대해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행사한다. 그러니 알아서 길 수 밖에. 동계올림픽 기간에 윤세영 회장의 동정이 수시로 메인뉴스에 나타난 것도 그 때문이다. 충성 경쟁은 그 속성상 점점 치열해질 것이고 그것은 방송을 통해서도 점점 모습을 드러낼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어서는 희망이 없다. 창사 20주년을 맞아 SBS 노조가 ‘SBS 정상화 투쟁’을 내건 것도 그 때문이다. SBS가 지금과 같은 상황을 타개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언론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아무 곳에서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단체 행동을 각오하고 싸움에 나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내건 구호들이 그렇게 거창한 것들은 아니다. SBS가 그래도 책임 있는 언론사로 기능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들을 마련하자는 것일 뿐이다. 임원들이 더 이상 대주주만 바라보고 SBS에 대한 책임을 배신하지 못하도록 중간평가를 도입하는 것, SBS가 대주주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를 도입하는 것, 더 이상 SBS 대주주가 노조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회사를 끌고 나가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는 것 등이 우리의 목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정도 목표를 내걸고 파업까지 갈 수 있겠느냐고 묻기도 한다. 그래도 감당하지 못할 구호는 내걸 생각은 없다. 뛰기 위해서는 우선 걷기 시작해야 한다. 더구나 멀리 가려면 뚜벅뚜벅 걷는 것이 최선이다.

언론노조의 모든 동지들, 그리고 시민사회에 부탁한다. 민영방송 SBS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 달라고. 공영방송이 중심인 나라에서 민영방송 노조의 싸움에 관심을 집중해 달라는 건 아니다. 당장은 큰 불이 난 공영방송에서의 싸움에 주력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민영방송이든 공영방송이든 지상파방송의 공적 책임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믿는다. 그에 합당한 동지적 연대와 사회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항상 회의 등을 통해 제기했듯이, 우리의 구호는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방송 장악 저지, 언론 장악 저지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민영방송 SBS 노조의 싸움이 외롭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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