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2년이 ‘국민적 자신감’을 회복한 2년이라고? ‘功’만 있고 ‘過’는 없는 ‘MB 2년’ 보도

MB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아 지난 2월27일 밤 KBS는 ‘특별기획 국민대토론 이명박 정부 2년, 성과와 과제는?’을 방송했다. 토론회는 정치·사회 분야와 경제 분야, 외교·안보 분야로 나눠 진행됐다. 토론회에는 2년 전 ‘KBS 사장은 MB정부의 국정철학을 구현해야 한다’는 망발의 장본인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을 비롯해 박근혜 경선 캠프에 경제자문위원으로 참여했던 김광두 교수, 뉴라이트 교수 홍성걸, 노태우 정부 경제수석 김종인 등이 주요 패널로 참석했다. 진보 진영에서는 손혁재, 이필상 교수가 참석했다.

 패널 선정의 치우침도 문제지만 더욱 큰 문제는 중간 중간 보도국 기자가 등장해 설명한 각 분야별 ‘MB정부의 성과와 과제’였다. 말 그대로 ‘성과와 과제’만 있었지 ‘過’ 즉, 허물이나 문제는 전혀 지적하지 않았다. 집권 초기 대한민국을 뒤흔든 촛불 시위 장면 한 컷 내보내지 않았고, 국제금융 흐름과 어긋난 환율정책에 대한 지적도 없었다. YTN을 시작으로 KBS, MBC 등 방송장악 논란과 헌재 판결까지 간 미디어법 파행 등은 등장조차 하지 않았다. 토론회 중간에 등장한 VCR만 보면 지난 2년 MB정권은 정말 평온하고 갈등이 없었던 태평성대로 느껴질 정도다. 그나마 4대강과 세종시 논란(?)을 언급해 준 것을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덧붙여 지난 2월25일, 9시 뉴스에 방송된 MB정부 2주년 관련 보도도 문제가 많았다. 특히 2번째 꼭지 ‘이명박 정부 2년 평가’ 리포트는 어떤 합리적 기준도 근거도 없이 ‘국민적 자신감’을 회복한 2년이라고 단정했다. 보도에서 인용한 근거라곤 보수인사 3명의 인터뷰가 고작이다. ‘아전인수(我田引水)’도 이 정도면 ‘신의 경지’에 올랐다고 할 것이다.

 

동계올림픽으로 ‘국풍81’ 재현

 ‘국풍 2010’

지난 2월 26일, 뱅쿠버 동계올림픽에서 김연아 선수가 피겨스케이팅 종목에서 금메달을 땄다. 당일 9시 뉴스에서는 김연아 선수에 관한 리포트만 무려 12꼭지가 블록 편집됐다. 그 다음날 <국민의 희망 김연아 스페셜>이 앙코르 방송됐고, 이후 동계올림픽 관련 특집 방송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왔다. 선수단이 귀국하던 3월 2일에는 이례적으로 뉴스특보에서 이를 생중계했고, 그날 저녁에는 3건의 올림픽 특집방송이 편성이 됐다. ‘올림픽 올인 방송’은 지난 7일 최고점에 달했다. 방송3사가 공동으로 <밴쿠버올림픽 선수단 환영 국민음악회>를 생중계했다. 공동 중계하라는 올림픽은 하지 못하더니 음악회 공동 중계에는 잘도 합의했다.
주말 황금시간대에 세 방송사가 똑같은 음악회를 생방송으로 내보내는 것을 보며 과거 5공 군사 독재시절 초기 열린 ‘국풍81’을 떠올린 사람들이 많았다. ‘국풍 81’은 전두환 독재정권 이 방송과 언론을 동원해 ‘5.18 민주화운동’의 여진을 희석시키고, 언론통폐합으로 여론 장악을 끝낸 것을 기념해 연 자축 파티였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갑작스런 제작 지시...품질은?...정권 홍보 의도 숨어 있어

‘로우 키’로 시작했던 KBS의 올림픽 방송 태도는 설을 전후로 급변했다. 갑자기 차출된 일선 PD와 기자들은 온몸을 던져 허겁지겁 방송시간을 메워야 했다. 하지만 올림픽 영상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황에서 급작스럽게 떨어진 프로그램들을 제작하는 것은 처음부터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는 문제였다. 지난 2월 28일(일요일) 방송된 <김연아 스페셜-연아의 마법,세계를 홀리다>는 그 대표적인 예다. 김연아가 금메달을 딴 것은 지난 2월 26일 금요일. 그런데 일요일 방송을 목표로 프로그램을 제작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4,5 명의 PD들이 달라붙어 밤을 새워 불과 사흘 만에 60분짜리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했다. 방송은 18%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지만 시청자들의 비난은 거셌다. ‘과거의 화면을 재탕한데 지나지 않았다’, ‘왜 아사다 마오가 그렇게 많이 나오냐, KBS에 실망했다’ 등과 같은 내용들로 시청자 게시판은 도배가 됐다.

 

<김연아 스페셜> 건을 비롯해 이번 올림픽 관련 특집 방송을 문제 삼는 것은 이런 막무가내 식 특집 제작 지시가 그동안 어떤 결과를 불러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김인규 사장 취임 이후 일선 제작진은 시간적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은 채 끊임없이 떨어지는 각종 특집 프로그램에 총동원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이러한 급조된 프로그램들은 사전에 충분한 검토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되기 때문에 정부. 여당의 정치적 목적에 악용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번 올림픽 특집방송도 많은 제작진들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의도가 별로 순수하지 않은 것 같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당장 눈앞에 떨어진 방송을 막느라 이런 문제의식은 묻힐 수밖에 없었다.
특보 사장 취임 이후 연탄 나르기를 시작으로 연말특집, 정부협찬 특집, 헌혈 특집, 창사특집에서 올림픽 특집까지.. 현재의 ‘특집’러시는 분명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 특집 프로그램을 통한 노골적인 정권 홍보로 KBS의 얼굴에 먹칠을 한 것이 이미 한 두 번이 아니지 않는가? 사측은 더 이상 부작용이 커지기 전에 정체불명의 특집 프로그램 제작 지시를 멈춰야 한다.

  

오락가락 올림픽 보도

SBS 독무대가 된 이번 동계올림픽에 대해 KBS 보도본부는 애초 ‘로우 키’로 보도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러한 방침은 SBS의 단독 중계에 대한 국민적 불만을 일으키기 위한 전략적인 대응이었지만 불가피한 측면도 있었다. SBS가 제공해주는 영상은 2분정도에 불과했고 그것도 모두 편집된 상태였기 때문에 정상적인 보도를 하기 어려웠다.

밴쿠버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렸던 지난달 13일, KBS는 9시뉴스에서 개막식 소식을 리포트로 다뤘다. 그러나 화면은 동영상이 아닌 ‘스틸 사진’이었다. 다음날인 14일 이정수 선수가 쇼트트랙 1,500미터에서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도 스틸 사진으로 편집된 단신 기사로 방송됐다. 일부 언론에서 공영방송의 역할을 포기했다는 비판이 일었지만 전략적인 차원에서 감수해 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이런 보도 방침은 설 연휴가 끝나자마자 급변한다. 지난달 16일 보도본부 편집회의는 기존의 보도 방침을 180도 변경해 올림픽 소식을 적극적으로 전해야 한다는 새로운 방침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김인규 사장의 직접적인 지침과 질책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날 9시 뉴스에는 모태범의 금메달 소식이 톱과 세컨드 리포트로 연달아 방송됐다. SBS가 제공한 영상으로 만들어진 리포트였다. 이때부터 동계올림픽 보도의 ‘물량 공세’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단 하루 만에 올림픽 보도 전략이 급변한 것이다.

SBS도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 채 당초 2분 정도만 제공해주던 영상을 8분으로 늘렸다.(이후 다시 2분~5분으로 축소하는 등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이긴 했다.) 이런 가운데 스포츠국장은 갑자기 늘어난 뉴스 분량을 메우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NHK, CCTV의 화면을 사실상 무단으로 사용할 것을 기자들에게 지시했고, 이에 대해 SBS는 IOC에 제소하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이처럼 KBS의 올림픽 보도 지침이 급변한 것에 대해(MBC도 마찬가지) 정권 핵심부와 방송사 수뇌부의 교감설마저 제기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른바 세종시 갈등으로 불러진 여권 내 악재들을 올림픽 흥행을 통해 돌파하려는 정권의 주문이 각 방송사에 강하게 전달됐을 것이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결국 KBS는 동계올림픽과 같은 큰 행사에서 과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국 SBS 단독 중계에 대한 국민적 불만과 정부 차원의 확고한 방침도 제대로 이끌어 내지 못했다. 남은 것이라고는 땅바닥에 내쳐진 기자와 PD, 엔지니어 등 관련 보도진의 자존심뿐이다.  

 

일선 기자의 동계올림픽 보도기

"중계권 전쟁의 진실! 스포츠 아닌 방송사 브랜드 전쟁!"

정재용/스포츠취재팀 기자 (동계올림픽 취재팀 데스크)

아침 편집회의가 열린다. 당연히 국민적 관심사인 밴쿠버 올림픽을 오늘 어떻게 보도할 것인가 질문이 쏟아진다. 그러나 담당기자는 아무런 할 말이 없다. SBS가 그림을 줄 지 안 줄 지, 줘도 1분을 줄 지 5분을 줄지, 인터뷰는 포함시킬 지 빼고 줄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으니 SBS가 하사(?)하는 테잎이 도착하는 오후 6시까지 기다려 봐야 대답이 가능하다.

그런데 아침부터 전화는 불이 난다. “재용씨 오늘 금메달인데 그림 좋은 걸로 잘 만들어 줘. 오케이?” “오늘 금메달인데 뉴스 최대한 벌려야지? 역시 올림픽을 쫙 깔아야 시청률 올라가더라구” “TV본부 PD 000인데요. 혹시 김연아 단독 인터뷰 섭외 가능한가요? 아니면 금메달리스트라도...” 더 이상 그림이 없다고, 인터뷰도 없다고, 현장 취재도 가지 못했다고 설명하는 것조차 포기했다. 속이 꺼멓게 타들어간다.

이런 KBS의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9시 뉴스가 끝나면 어김없이 SBS에서 전화가 온다. 오늘 9시 뉴스에 SBS 비판기사가 들어갔다면서 심기가 불편하단다. 따라서 내일 그림을 줄 지 안 줄 지도 검토해 본 뒤 연락하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SBS 기자의 표현을 그대로 쓰자면 도둑질(?)해 사용한 화면에 대해서도 불벼락이 떨어질 것이란다. 거의 협박 수준이다.

뉴스가 끝나면 자괴감이 밀려온다. 이런 현실을 제대로 아는 KBS 동료들이 얼마나 있을까? 도대체 누구의 잘못인가? 왜 이렇게 됐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소주 한 잔에 쓰린 속을 달래고 나면 내일 또 겪어야 할 수모에 한숨만 나온다.

지난 밴쿠버 올림픽을 치르는 동안 KBS 기자로서 느껴야 했던 참담한 현실이다. 단언하건대 공영방송 KBS의 미래 위상이 흔들릴 수 있는 심각한 위기는 이미 시작됐다. 슬프다. 그러나 더 슬픈 것은 KBS의 전 사원이 하나로 똘똘 뭉쳐 싸워도 이길 수 있을 지 장담할 수 없는 거대한 전쟁을 앞두고 정작 KBS 사원 대부분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상대의 전략은 무엇인지, 우리가 도대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조차 알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는 현실이다.

이 싸움은 스포츠의 문제가 아니라 KBS 전체의 위상이 걸린 문제다. SBS는 스포츠라는 콘텐츠의 위력을 통해 KBS, MBC를 뒤따르는 3인자가 아니라 한국 방송계의 선두 주자가 되겠다는 확고한 전략을 갖고 이 싸움을 펼치고 있다. 스포츠를 통해 미국 방송계의 신흥 거대 네트워크로 성장한 FOX TV가 그랬고, 축구를 통해 유럽 유료 위성 방송 시장을 단번에 장악한 B SKY B가 그랬듯이 용의주도한 방송사 위상 제고 전략(Brand Management Strategy)을 펼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KBS도 이제는 올림픽, 월드컵이라는 킬러 콘텐츠(Killer Contents)를 지켜내지 못하면 스포츠 뿐 아니라 KBS 9시 뉴스도 다큐멘터리도 드라마도 모두 SBS라는 브랜드에 밀려날 수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이 싸움에 나서야 한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스포츠 중계권 전쟁은 공영방송 KBS 전체의 브랜드 파워를 지켜내는 싸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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