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화요일 “KBS 비정규직 문제 최종 해결”이라는 기사들을 오전에 접했다. 사측의 입장을 담은 보도자료가 그대로 기사화된 것이긴 하지만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와 구제 차원에서”라는 표현에서는 헛웃음이 났다. 공영방송 KBS가 진정으로 사회적 약자를 생각했다면 KBS의 비정규직으로 수년에서 십수 년을 일한 KBS계약직지부 조합원 113명은 고단하게 8개월을 투쟁이라는 이름으로 회사와 맞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병순 전 사장은 사장 연임에 눈이 멀어 쥐어짜기식 경영효율화의 첫 희생양으로 KBS 비정규직을 작년 7월부터 해고해 왔다. 자회사 정규직이라는 허울을 씌워 전적할 것을 강요했고, 89명에 대해서는 그 어떤 대책도 없이 해고해 버렸다. KBS 내부의 약자조차도 보호하지 못하고 그들의 표현대로 ‘구제’하지도 못하는 KBS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보호”를 말할 수 있느냐는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KBS 비정규직 부당해고에 맞서 싸운 8개월간의 투쟁은 공영방송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여러 가지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다. 공영방송은 공익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야 하고 우리 사회의 소외계층과 약자를 대변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상식적인 가치로 여겨진 것인데 해고장이 눈앞에 놓였을 때 상식이 무너지는 절망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KBS계약직지부 조합원 113명은 같은 절망감을 느꼈고, 어떤 이들은 크게 실망하여 KBS를 떠나기도 했다.

절망감 속에서도 희망의 빛을 보고 싸운 113명은 이제 한고비를 넘겼다. 3월 16일 오후 2시 사측과 최종 타결 조인식을 하면서 합의문을 보고 있자니 지난 시간들이 스치고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사측은 자신들의 치적으로 애써 만들려 하겠지만 종이 한 장에 담긴 합의 내용은 113명이 생존권을 위해 투쟁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성과이다. 눈물과 땀으로 치열하게 만들어 낸 합의문이기 때문에 보고 있자니 눈물이 흘렀다.

113명이 함께 만들어 낸 성과이지만 기약 없이 싸워야 할 42명이 남아 있다. 더욱 힘든 싸움이 될 수도 있기에 지금까지처럼 KBS계약직지부는 전원 복직을 위해 다음 싸움을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더 단단해졌고 강해졌고 당당해졌다. KBS의 약자라는 이름으로 움츠렸지만 약자라는 수식어는 스스로 털어 버리고 더 큰 도약을 위해 당당하게 나설 것이다.

이제 막 단 하나의 희망의 공을 쏘아 올렸다. 두 번째, 세 번째 희망의 공을 하늘 높이 쏘아 올릴 것이다. “희망 2010 대한민국의 힘 KBS”라는 방송지표가 민망하지 않은 공영방송 KBS가 되는 그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며, KBS계약직지부는 KBS에서 거침없이 희망의 공을 쏘아 올리는 KBS 인으로 자리 매김 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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