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심석태 본부장,
파업찬반투표 돌입 조합원에게 드리는 편지

SBS 본부가 22일부터 29일까지 "대주주 전횡 저지, 자본으로부터 방송독립"을 위해 파업찬반투표에 돌입합니다. 이 글은 파업찬반 투표에 들어가면서 SBS 심석태 본부장이 SBS 조합원들에게 보낸 편지로 3월 22일 자 'SBS노보'에 실렸습니다.

 

조합원 여러분. 이제 정말 선택의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사측을 상대로 ‘노조를 무시하고 대주주의 이해만을 앞세워 지상파방송 SBS를 끌고 가서는 안 된다’며 사측의 태도 변화를 요구해 왔습니다. 하지만 사측은 노사 화합, 노사 상생을 가로막는 벽에 작은 문 하나를 내는 것조차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나서서 그 벽에 직접 문을 낼 것인지, 아니면 계속 이렇게 지낼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선택에 따라, 우리가 정말 사측에 노조를 존중하고 대화의 상대로 인정하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 판가름날 것입니다. 지상파 방송 SBS를 ‘오직 대주주의 뜻’에 따라 마음대로 주무르지 말라고 요구할 자격이 있는지도 드러날 것입니다.
사측은 노동위 조정 기간은 물론이고 조정 결렬 이후로도 지금껏 아무런 태도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파업을 기정사실화하고 ‘할 테면 해보라’는 기세 싸움만 계속하고 있습니다. 조정 결렬 바로 다음날 3사 임원들이 모여 파업에 대비한 비상근무 체제를 논의하더니 간부 조합원들을 상대로 조직적으로 노조 탈퇴 압력을 가하는 부당노동행위까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파업할 사람은 해봐라. 간부들 갖고 버티겠다’는 선전 포고 행위입니다.
사측이 이런 막가파식 행동을 보이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번 기회를 노조를 분열시키고 약화, 와해시키는 기회로 삼겠다는 겁니다. 실제로 이번에 우리가 힘 있게 파업을 결의해 내지 못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노조는 분열되고 약화할 것입니다.
그동안 사측이 끊임없이 노사합의를 파기하거나 묵살하고 일방주의로 치달을 때, 우리는 온 힘을 다해 항의하고 싸웠습니다. 임금체불이라는 황당한 상황에는 법적 대응도 불사했습니다. 하지만 이젠 이런 싸움으로는 더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을 법으로 해결할 수도 없습니다. 사측이 우리의 말 뒤에 행동으로 나설 용기와 힘이 있는지를 확인하겠다고 나서는 이상, 우리 앞에는 주저앉거나 떨쳐 일어서는 것 외의 다른 선택은 없습니다.
사측은 우리가 파업 찬반투표를 결정하자 어떻게든 노사 협상을 해서 파업을 막아보려 나서는 것이 아니라 간부 조합원들에 대한 탈퇴 압력 강화라는 도발로 맞서고 있습니다. 아마 투표가 진행되고 파업이 가결되면 보다 강도 높은 조합 와해 작업이 진행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측이 우리의 합법적인 단체 행동권 행사를 방해하려 한다면 민형사상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응징할 것입니다. 대신 우리는 철저하게 합법적 방법으로 우리의 정당한 권리인 단체 행동권을 사용해 사측의 태도 변화를 요구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사측은 노조의 정당한 요구를 경영권, 인사권을 내세워 무작정 무시하는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노조가 파업 찬반투표를 결정하자 사장은 월드컵 중계를 내세워 맹목적인 애사심에 호소하며 ‘지금은 파업할 때’가 아니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그럼 언제는 파업해도 좋을 때가 있습니까? 정말 파업을 하지 않도록 하려면 진지하게 협상에 응해야 합니다. 사실상 수개월째 아무런 대화 노력도 하지 않으면서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성실히 임하겠다”는 건 무슨 궤변입니까? 정말 파업을 하면 “노사 모두가 패배자가 된다”는 자해 공갈 수준의 협박으로 우리를 무릎 꿇릴 수 있다는 발상이 놀랍습니다.
정말 사측은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협상에 나서야 합니다. “회장께서 강경하니 모든 요구를 철회하라”는 답답한 얘기나 반복해서는 협상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게 책임 경영을 한다는 지상파 방송 임원들이 할 얘기입니까? 사측이 조금이라도 양식이 있다면 이런 말장난으로 본질을 호도하지 말고 문제를 해결할 생각을 먼저 해야 합니다.
시청자들과의 약속, 정말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정말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는 프로그램, 정말 사회에 보탬에 되는 프로그램을 방해받지 않고 만들 수 있을 때 비로소 지켜질 수 있는 약속입니다. 대주주 입맛대로 프로그램이 흔들리고 제작비가 춤을 추는 상황, 말로는 전문성을 강화한다며 전문기자를 다른 곳으로 마음대로 보내버리는 상황, 조합 간부를 했다고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조합 탈퇴를 압박하는 상황이 방치되어서는 시청자들 앞에 당당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없습니다. 지금 카메라를 놓고 마이크를 놓고 스위치를 내리더라도, 제대로 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토대를 쌓는 것, 그것이 시청자들과의 약속을 제대로 지키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정 결렬 이후 1달을 협상을 촉구하며 버텼습니다. 사측은 협상에도 나서지도 않으면서 이젠 월드컵 핑계를 대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무엇입니까? 드릴 말씀은 정말 많습니다만 조합원 동지 여러분을 믿고 여기서 줄입니다. 함께 싸우면 반드시 이깁니다. 파업 찬반투표를 우리 승리의 출발점으로 만듭시다. 고맙습니다.

2010년 3월 22일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본부장 심석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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