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24일 민실위 보고서>

<3월24일 민실위 보고서>

한명숙 전 총리가 5만달러 뇌물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판결이 어떻게 나오든 그건 언론의 몫이 아니다. 재판부의 몫이다. 언론은 재판이 불공정하게 진행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재판 결과가 나오면 이를 보도하면 된다. 그런데도 언론이 침소봉대하면서 특정 판결을 이끌어내려 한다면 더 이상 언론이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의 홍보지에 불과하다.

한 전 총리의 재판 결과가 6월 지방선거 판도에 영향을 미칠 것이 자명하기에 재판 과정에서 나온 진술들이 주요 기사로 처리됐다. 재판에서는 피고인에게 유리하거나 불리한 증언이 나올 수도 있고 간혹 재판의 흐름을 바꾸는 증언이 나오기도 한다. 지난 11일 공판에서 나온 곽영욱 전 대한통운 사장의 증언이 바로 그것이다. “돈을 한 전 총리에게 직접 건넸다”는 기존 진술을 번복하고 “돈 봉투를 의자에 놓고 나왔다”고 말한 것이다.

통신과 신문들은 일제히 이 사실을 비중있게 보도했다. 검찰의 기소내용을 뒤집는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검찰의 강압수사 의혹까지 제기한 경향, 한겨레는 물론 심지어 중앙, 동아마저도 ‘의자에 돈을 놓고 나왔다’는 팩트를 제목에 올렸다.

▲곽영욱 “총리공관에 5만달러 놓고 나왔다”(연합)
▲곽영욱 “돈봉투 의자에 놓고 나왔다”(경향)
▲곽영욱 “앉았던 의자에 놓고 왔다”(한겨레)
▲“5만불 한명숙에 직접 전달 않고 의자에 놓고 나왔다” 곽영욱 ‘진술 번복’ 논란(한국)
▲곽영욱 “5만달러 공관 의자에 놓고 왔다”(국민)
▲“총리공관 오찬 후 식당의자에 5만달러 든 봉투 놓고 나왔다”(세계)
▲“총리공관 의자에 5만달러 놓고 나와”(중앙)
▲“총리공관 오찬 끝난 뒤 의자에 돈봉투 두고 와...”(동아)

유독 한 신문만 완전히 달랐다.
▲“2002년 골프용품점 함께 동행 998만원짜리 일제 골프채 사줘”(조선)
공소사실에도 없는 ‘골프채 선물’ 주장을 제목으로 뽑아 부각시켰다. ‘의자에 놓고 나왔다’는 증언은 맨 끝 문장에 살짝 걸치는 시늉만 했을 뿐이다. 한마디로 속보이는 물타기가 아닐 수 없다.

조선일보가 다른 언론과 제목을 다르게 뽑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잘못이라 할 수 없다. 오히려 장점이다. 독자들이 이미 하루 전에 방송과 통신, 인터넷에서 본 기사를 다음날 아침에 다시 똑같이 보고 싶어 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평상시에 조선이 제목을 다르게 쓰려고 노력하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핵심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면서 제목을 자기 시각대로 뽑았다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제목에서도, 기사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누락시켰다. 핵심은 외면하면서 곁가지를 침소봉대한 것은 특정한 정치적 의도를 갖고 뭉갰다고 밖에는 해석하기 어렵다.

언론사 가운데 가장 먼저 한 전 총리의 실명을 보도해 분위기를 몰아갔던 조선일보가 정작 재판에서 자신들이 몰아온 분위기와 다른 내용이 나오자 이를 외면하고 물타기를 시도한 것은 언론의 정도가 아니라 특정 정치세력 홍보지의 전형이다. 현장을 취재한 기자들에게서 “조선일보만 다른 귀를 가졌다”는 비아냥까지 나오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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