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홍대 앞 이자카야에서 MBC의 ‘물 먹은’ 선배들과 밤늦도록 연거푸 술잔을 비웠다. 90년대 입사한 이들 셋은 권력에 단단히 밉보인 눈치였다. ‘큰 집’의 지시인지 아니면 몇 푼어치의 소신인지는 모르겠으나, 엠비 정권표 낙하산을 타고 내려와 MBC의 주인행세를 하는 김재철은 셋을 한직으로 내몰았다.

 

한 선배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입사한 이후 이런 식으로 권력이 MBC를 완전히 장악하려 한 적은 없었다. 엄혹했던 때도 조직 내 20%의 룸(공간)은 허용됐는데….”

지난 2년 동안 언론을 장악하겠다고 나선 이명박 정권의 뻔뻔함이 곳곳에서 탄식과 좌절, 분노를 불러왔다. 이쯤 하면 뜻대로 되고 있다는 착각과 오만에 빠질 법도 하다. YTN, KBS, MBC 장악, 그리고 늘 그들의 편이었던 조·중·동의 한결같은 충성.

그러나 시간은 엠비 정권의 편이 아니다. 3년도 채 남지 않은 게 정권의 운명이다. 지방선거에서 선방한다 하더라도, 권력으로서 제대로 군림할 수 있는 시간은 2년 미만이다. 날짜로 환산하면 700여 일에 불과하다. 저잣거리에서 벌써 엠비정권에 대한 ‘설거지론’이 나오고, 탄압받는 MBC 선배들과의 술자리가 침울하지 않고 유쾌하게 끝났던 까닭도 이런 시간의 법칙, 아니 역사의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오만한 권력은 빨리 새는 법이다. 권력의 ‘꼭두각시’ 노릇을 하던 김우룡이 ‘내부 고발자’가 되는 희대의 코미디가 벌어졌다. 권력에 취해 MBC를 주무르다가 그만 ‘자뻑’을 하고 말았다. 종편이란 당근을 주면서 계속 붙잡고 있지만, 조·중·동도 때가 되면 ‘말’을 갈아 탈 게 빤하다.

엠비 정권이 몰상식과 억지로 YTN, KBS, MBC를 접수했지만, 온전히 접수하기란 불가능한 노릇이다. 600일을 넘긴 YTN 노조의 투쟁, 새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의 출범, MBC 노조의 김재철 사퇴 촉구 농성…. 결코 저항과 희망의 싹마저 자를 순 없다.

자본권력의 오만함도 시간의 법칙을 거스를 순 없다. 광고를 통해서 언론을 길들이려고 ‘낚시질’을 해온 삼성도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1896년 출범한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를 구성하는 초기 우량기업 중 현재까지 살아남은 곳은 한 곳도 없다. 자본은 영속할 수 없다. 또 자본이 돈으로 언론을 잠시 길들일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지속적으로 언론을 지배할 순 없다. 삼성은 ‘보복성 광고중단’으로 경향과 한겨레를 굴복시키지 못했다. 또 한편으로 1,000여 명의 조합원을 거느린 언론노조 SBS본부가 ‘자본으로부터의 방송 독립’을 선언하고 나섰다.

소설가 조정래 선생은 YTN 노조가 95일째 구본홍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던 지난 2008년 12월17일 ‘YTN 노조 후원의 밤’ 행사에 이런 영상 편지를 보냈다. “한 정권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무한합니다.” 이 말은 한 때 언론권력의 오만을 상징하는 말이었지만, 이제 오만한 정치권력과 자본권력한테 들려주어야 할 말이다. 반민주적 언론장악을 기도하고 이에 부역했던 이들은 역사에 반드시 기록된다. 짧은 운명의 권력들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 요소인 언론을 장악하려는 불순한 기도는 틀림없이 ‘3일 천하’로 끝난다.

그날이 오면, 다시 MBC 선배들과 흥겹게 술잔을 나눠야겠다.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