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7일 민실위 보고서>

<4월7일 민실위 보고서>

천안함 사고를 놓고 추측과 음모론이 횡행하고 있다. 가장 큰 원인은 최소한의 정보마저도 숨기면서 잇따른 말바꾸기로 신뢰를 잃어버린 군 당국이다. 그러나 언론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현재 최대 쟁점은 북한의 개입 여부이다. 진상이 전혀 밝혀지지 않은데다 남북관계가 중대하고 미묘한 만큼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그런데도 사고 직후 방송들이 근거없이 ‘북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가 질타를 당했다.

더 큰 문제는 보수신문들의 지속적이고 의도적인 여론몰이식 보도이다. 조선은 익명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 잠수정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근거는 사고가 날 즈음에 북한 잠수정이 단지 기지 안에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도 “(이런 일은) 종종 있는 일이어서 이번 사고와의 연관성을 단정하기는 힘들다”고 실토했다. 그러면서도 의혹 제기는 멈추지 않는다. 중앙은 전문가 52%가 “고의적이든 우발적이든 북한과 관련 있다”고 본다는 설문조사를 실었다. 그런데 질문을 자세히 보니 ‘어뢰나 기뢰 공격이었을 경우 누가?’이다. 사고 원인을 어뢰나 기뢰로 한정시킨 질문에 ‘(그렇다면) 북한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고 대답한 것까지도 ”북한과 관련 있다“고 단정해 버렸다.

“북한이 원인이라면...” 이런 가정 아래 무책임한 뉴스들이 양산되고 있다. 혹시라도 맞으면 특종이고, 틀리더라도 “아니면 말고”가 끝이다. 맞든 틀리든 보수 세력의 환호를 받을 뿐, 북한으로부터 소송을 당할 염려도 없으니 마음껏 작문이 가능하다. 오죽했으면 이명박 대통령조차 “정황 증거가 없는데 북한이 개입했다고 할 수 없다” “언론에 자꾸 추측성 보도가 나오는데 참 위험한 것 같다”는 말까지 했을까? 그러나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의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기조는 바뀌지 않고 있다. 군이 이른바 ‘북풍설’의 냄새를 계속 풍기고 이를 보수언론이 앞서거니 뒷서거니 하며 부추기고 있다.

이쯤되면 ‘발롱데세’(Ballon d'essai)의 의구심을 떨칠 수가 없다. 원래는 기상상태를 관측하기 위해 띄우는 시험기구를 뜻하지만, 불확실한 주장을 시험적으로 언론에 흘려 여론의 동향을 탐지하는 행위를 가리키기도 한다. 궁지에 몰린 정부가 초점을 희석시키고자 익명의 소식통을 이용해 북한 개입설을 흘린 뒤 여론의 반응이 신통치 않자 공식적으로는 북한 개입설을 부인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심이다. 그런데 민도의 수준이 과거와 달라졌다. 이제는 아무리 발롱데세를 시도해도 납득할 만한 근거가 없으면 여론이 따라오지 않는다.

북한이 관련됐다면 당연히 엄청난 뉴스가 된다. 그러나 근거가 없다면 위험한 뉴스일 뿐이다. 북한이 관련된 근거가 아직은 없음을 지적하면 오히려 ‘북한이 관련 없다는 근거를 대라’고 억지를 부린다. 대표적인 것이 조선일보 김창균 정치부장의 칼럼이다. “국가 안보와 관련된 판단을 ‘당연히 그렇지 않겠느냐’는 식의 감에 의존해선 안된다... 무턱대고 ‘북 소행이 분명하다’는 태도도, 충분한 근거 없이 ‘북 연관 가능성이 없다’는 태도도 안된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증거를 찾아야 한다”

백번 지당한 말씀이다. 그런데 ‘당연히 북한이 개입하지 않았겠느냐’는 감에 의존한 보도를 조선이 앞장서서 하고 있다. 무턱대고 북 소행으로 몰아가고 있는 것은 자신들이다. ‘북한 개입 가능성이 없다’는 근거를 요구하기 전에 ‘북한이 연관돼 있다’는 근거를 먼저 제시하는 것이 상식적인 순서이다. 마치 수사기관이 누구를 잡아다가 범죄혐의를 입증할 생각은 않고 ‘결백하다면 죄가 없다는 증거를 대라’고 요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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