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수첩 최승호 PD 한겨레신문 기고 글

“마지막으로 가족들에게 전화 한 통화만 하게 자리를 비켜주십시오.”

구속집행정지 취소 여부를 결정할 법정을 향해 출발하기 직전 ‘정 선생’이 곁에 있던 취재진에게 요구했다. 나는 무거운 마음으로 취재기자들과 함께 자리에서 물러나왔다. 방송에서 검사들에 대한 향응과 성접대를 폭로했다는 이유로 그는 구속될 상황에 처한 것이다. 1~2분이나 흘렀을까? “이게 무슨 짓이야?” 정 선생의 곁을 지키던 친척 형님의 단말마 외침이 나왔다. <피디(PD)수첩> ‘검사와 스폰서’ 편의 중요 취재원인 정 선생이 음독자살을 기도한 것이다.

방송일이 가까워 올수록 정 선생은 불안과 고통을 호소했다. 그는 방송이 가족들에게 줄지도 모르는 고통을 두려워했고, 그 자신 다시 재수감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우려했다. 부산지검은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구속돼 재판을 받던 중 구속집행정지로 풀려나 치료를 계속해온 그를 재구속하기 위한 조처를 하고 있었다.

이유는 <피디수첩>과의 인터뷰였다. 양쪽 발목과 무릎 질환으로 인공관절 수술을 받는 등 여러 질병으로 하루에도 수십 알의 약을 먹으며 겨우 지탱해가는 정 선생은 다시 구속되느니 죽는 게 낫다는 호소를 계속했다.

방송이 나간다는 예고 이후 의혹을 받는 검사들은 일부 언론을 통해 심각한 명예훼손을 저질렀다. 이미 <피디수첩> 취재 과정에서 그를 정신이상자라고까지 부른 바 있는 일부 검사들은 범죄자, 사기꾼 등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용어로 공격했다.

반면 그들 자신의 혐의에 대해서는 증거와 증언이 있는데도 부인으로 일관했다. 그리고 방송 뒤 검찰은 진상을 규명하겠다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정 선생을 재구속하겠다고 나섰다. 이것이 무슨 의미일까?

나는 검찰이 진실로 진상규명 노력을 인정받으려면 앞으로 조사 과정에서 핵심적 구실을 할 정 선생을 압박하려는 자세를 바꿔야 한다고 믿는다. 주요 조사 대상자들이 거의 혐의를 부인하는 상황에서 향응과 성접대의 실체에 접근할 가장 중요한 단서는 정 선생의 기억이다. 정 선생은 모든 향응 및 성접대 의혹 대상자들과의 대질신문을 원하고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원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조사가 가능하려면 그가 진심으로 검찰의 노력을 신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구치소에서 매일매일 신체적·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면서 조사에 협조하라는 것이 혹 고통에 지쳐 진실 규명을 포기하도록 만드는 것이 아닌지 검찰은 심각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정 선생뿐 아니라 다른 증언자도 방송 뒤 전화를 걸어와 불안을 호소했다. 검찰에 불리한 사실을 방송에 털어놓은 것이 어떤 식으로든 괘씸죄에 걸리지 않겠느냐며 걱정했다. 나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서 그럴 리 있겠느냐고 말했지만 속으로는 자신하지 못했다.

전직 대통령조차 불행을 당하는 판에 아무 힘도 없이 걸면 걸릴 수밖에 없는 그들이야 말할 것이 있겠는가. 나 역시 최근 검찰 수사 과정을 취재하면서 인권침해로 볼 수 있는 여러 경우를 확인한 바 있으니 더욱 걱정이 크다.

정 선생은 지금 부산의 한 병원 중환자실에 격리돼 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그가 다시 힘을 내 검찰이라는 무소불위 권력기관의 문제를 증언할 수 있을까? 그가 방송에서 했던 마지막 호소처럼 국민이 그를 보호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

폭로를 하지 않았다면 더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었을 정 선생과 그의 가족에게 힘을 주시기를 바란다.


최승호 문화방송 프로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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