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3일 민실위 보고서>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했다. 이같은 정치적 행위가 옳으냐 그르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 바로 며칠 전에 법원이 “명단을 공개하지 말라”고 결정했음을 주목하자. 법원 결정을 위반한 것은 옳으냐 그르냐의 논란이 될 수 없다. 법원 결정을 의도적으로 위반한 것은 정치적 행위가 아니라 범법행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여당 의원들이 줄줄이 나서서 법원 결정을 ‘좌파 판사의 조폭 판결’이라 공격하고 전교조 교사 명단을 공개했다. 시점도 천안함 애도 기간이 끝난 직후였다. 누가 봐도 의도가 명백하다. 천안함 블랙홀이 사라지면서 이제 4대강, 세종시, 무상급식 논란, 스폰서 검찰 파문 등이 6.2지방선거의 이슈로 떠오를텐데 하나같이 여권에 불리한 이슈들이다. 그래서 위법을 무릅쓰고 반전교조 정서를 자극하려는 것이다.

경향신문은 이를 놓고 여당의 ‘노이즈 마케팅(noise marketing)’으로 분석했다. 자신의 상품을 구설수에 휘말리게 해서 소비자의 이목을 집중시켜 판매를 늘리려는 마케팅 기법, 다시 말해 욕을 먹더라도 인기만 끌면 그만이라는 상술이 노이즈 마케팅이다. 그러나 경향의 분석은 잘못됐다. 노이즈 마케팅은 어디까지나 구설에 휘말리게 하는 것이지, 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다. 한나라당의 행위는 ‘노이즈 마케팅’이 아니라 ‘위법 마케팅’이라 해야 맞다.

어떤 사회든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은 있는 법이다. 민주국가에서는 법이 그렇다. 그리고 법에 대한 해석은 법원이 내린다. 법원 결정에 대해 누구나 비판은 할 수 있을지언정 이를 거부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명숙 전 총리 수뢰 사건에서 유죄 판결이 났다고 가정해 보자. 한 전 총리가 법원 판결에 반발은 하겠지만 과연 그 판결을 거부할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한나라당이나 보수 언론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여당 의원들 뿐만 아니라 지방선거 예비후보들까지 충성경쟁에 나서고 있다. 어느 도지사 예비후보는 기자들에게 ‘인터넷에서 000(자기 이름)을 치면 전교조 명단을 볼 수 있다’는 문자를 뿌리기까지 했다. 여당 안에서 누가 더 위법행위에 앞장서느냐 경쟁이 붙은 셈이다.

이런 위법행위에 대해 언론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가장 가관인 것은 동아일보이다. 동아는 ‘학생과 학부모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며 언론사 가운데 유일하게 조 의원이 공개한 명단을 자사 홈페이지에 실었다가 전교조가 소송을 내자 곧바로 이를 내렸다. 위법을 비판하기는커녕 부화뇌동하다 거액의 손해배상 위기에 부닥치자 꼬리를 내린 것이다. 다른 보수 신문들도 법원을 공격하면서 여당의 위법행위를 옹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신문과 방송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의 위법행위를 옹호하지는 않지만 전교조 명단 공개를 ‘파문’ 내지 ‘논란’으로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것 또한 무책임한 양시양비론적 접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사안은 파문이나 논란이기에 앞서 위법행위라는 사실을 일부 신문을 제외하고는 거의 지적하지 않고 있다. 법원 결정마저 노골적으로 위반하는 행위를 ‘위법’이라고 비판하지 못하는 언론이라면 과연 그 존재가치가 있는지 묻고 싶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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