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도>
천안함 보도 무엇이 문제인가?
추측하고, 감성적이고, 지나치게 많은...

지나치게 많은 보도



‘지나치다’는 말은 분명히 주관적인 단어다. 하지만 ‘천안함’ 사건과 관련한 KBS 보도의 양은 분명 지나친 점이 있다.(이 점에서는 M이나 S도 마찬가지다.) 메인 뉴스인 9시 뉴스에서도 엄청난 양의 천안함 관련 보도가 방송됐지만 여기에 더해 시시각각 이뤄지는 속보, 생중계, 모금방송 등은 국민에게 정말 필요한 뉴스와 정보를 신중하게 선별해 전달했는지 자문해 봐야 할 것이다. 시청자들이 천안함을 끌어올리는 크레인의 ‘제원’까지 들어야할 필요가 있겠는가?

이러한 ‘천안함 올인 방송’은 모든 의제를 집어삼킨다. 천안함 사건의 최대 수혜자가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와 ‘김우룡 MBC 쪼인트 이사장’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KBS가 천안함 사건이 잦아든 이후 저 풀리지 않은 두 가지 의혹을 다루기나 할까? 이것이 바로 천안함 올인 보도에 정치적 의도가 있지 않은가 의심하
는 이유다.

‘라면’ 보도

KBS에 ‘라면’ 보도가 등장했다. 식품위생 고발 보도가 아니다. 천안함 사건 이 후 우리 KBS 뉴스에서 침몰 원인과 관련한 이른바 ‘가정법 보도’시리즈다. 사건 초반에는 그래도 괜찮은 편이었다. 침몰의 주요 원인으로 추정됐던 ①어뢰 ②기뢰 ③암초 ④내부 폭발 등을 모두 열거하면서, 만약 어뢰나 기뢰의 경우라면 북한의 공격이 있었을 수도 있다는 정도로만 언급하는, 비교적 절제된 보도를 보여줬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침몰 원인과 관련해 KBS 뉴스는 온갖 추측성 보도를 쏟아낸다. 그동안 KBS가 보도한 침몰 원인만 해도 암초에서 부터 최근의 음향어뢰, 근접신관 어뢰까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하지만 추측한 원인은 이틀도 채 가지 못하는 일이 허다했다.

여기에다 3월31일을 기점으로 우리 뉴스는 ‘북한 연관 가능성’을 집중적으로 제기하기 시작한다. 늘 그렇듯 조,중,동 보수언론이 프레임을 짜기 시작하면 이내 KBS가 반응하는 ‘공조’현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바로 ‘~라면’ 보도가 등장한다. ‘만약 침몰 원인이 △△어뢰라면 이번 사건에 북한은...’ 이런 식으로 앵커가 말한다. 이것이 공영방송의 저널리즘인지 보도책임자들에게 묻는다.

이와 함께 반드시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이번 사건이 북한의 소행이라는 추측성 보도를 계속 하겠다면 반드시 우리 방위 태세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는 지적과 함께 문제점을 지적하는 심층보도를 해야한다. 또한 관련자들(여기에는 군통수권자도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묻는 보도가 뒤따라야 할 것이다. 꼭 지켜보고 따질 일이다.

‘영웅만들기’ 그리고 ‘MB 헌정 영상’

천안함 침몰과 관련해 우리 보도의 또 한 가지 문제는 ‘감상주의의 과잉’이다. 아직 침몰 원인도 정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우리 보도는 희생자들을 무작정 ‘영웅’, ‘전사자’, ‘고귀한 희생’ 등으로 수식하기 바빴다. 희생 장병들에 대한 추모는 당연하겠지만 공영방송이라면 특히 뉴스만큼은 성급한 감상주의보다 침착하고 냉정한 자세로 사건을 보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천안함 희생자들을 위한 성금 모금 생방송을 9시 뉴스에서마저 톱으로 해 ‘분위기 띄우기’에 매진했다.

이러한 감상주의는 MB띄우기로 이어졌다. 4월 19일 9시 뉴스 톱은 이명박 대통령이 눈물과 콧물을 쏟았던 연설 모습을 영상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1분정도의 이 영상은 자막마저 눈이 부시게 빛나는 효과를 줌으로써 대통령을 향한 특보사장의 애틋한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당장 대통령에게 헌납해도 될 만큼 훌륭한 ‘전두환 헌정 비디오’에 버금가는 영상물이다.

<라디오>
원인 규명 대신 공원에 게시판을 세우다

천안함 사고 후 지난 한 달 동안 기간방송인 KBS 1라디오는 어떻게 방송했을까? 타 방송사를 들여다보자. MBC와 CBS 등의 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서는 희생자 가족들의 절절한 목소리부터 전달했다. 정보가 통제되고 제한되어 갖가지 의혹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누구보다도 애통할 그들의 목소리를 통해 희생자를 위로하고, 제기되는 의혹에 대해 군관계자와 전문가의 인터뷰를 덧붙여 나갔다.

하지만 사고 이후 근 한 달 동안 KBS 1라디오 시사프로그램에선 희생자 가족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심지어 사고 발생 후 2주 뒤 사고 관련 조사 결과가 나왔을 때, 실종자 가족협의회에서는 사실과 다르다며 의혹을 제기했지만 실체규명에 어떤 식으로든 접근 가능성이 있는 이들의 주장마저 KBS 라디오는 외면했다.

애당초 진실을 찾기 위한 방송의 소명을 제쳐둔 1라디오의 간부는 그 대신에 여의도 공원에 사고 희생자 추모를 위한 길이 100미터에 높이 2.5미터의 대형 게시판을 제안했다. 실종자 생환 기원과 희생자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한 것 이었다고 한다. 희생자 가족들이 진정 바라는 게 무엇인지 귀 기울이는 대신, 시신 인양도 안 된 희생 장병들 추모부터 하자는 억지 발상이었다. 그럼에도 이 아이디어는 부사장의 격려 속에 발 빠르게 실현되었다. (부사장은 매우 적절한 구성이라 평가했으며, ‘천안함 추모 열기에 좋은 아이템을 제공하고 고생한 라디오 간부 중 2인에게 포상할 계획이라고 한다.) 추모 분위기 조성과 성금 모금을 위한 방송에 적
극 활용됐다.

그런가 하면 자유게시판임에도 평일 주간에는 게시판 설치 업체가, 야간에는 경비업체가 게시판을 지키고, 주말에는 라디오 국장과 팀장, 일부 선임들까지 동원해 3교대로 게시판을 지키면서 시민들과 상춘객들에
게 추모글을 쓰도록 독려했다.

이와 관련해 1라디오의 한 선임팀원은 “원인도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병들의 희생’이 아닌 ‘천안함의 영웅’으로 지칭하며 모금과 추모에 집중하는 것이 부적절해 보인다”며, “만의 하나 우리 군의 실수라면 국가를 상대로 유족들이 배상을 청구해야 하는 상황인데도 ‘영웅’이란 호칭은 이미 ‘북한의 공격에 희생당한 것’이라 단정 짓는 게 아니겠느냐”고 방송의 의도성을 꼬집었다.


<TV>
침몰 원인만큼 미스터리한 ‘천안함 모금’ 방송

천안함 사건이 발발한지 8일째 되는 4월 3일, 한주호 준위의 영결식이 있던 이 날 <추모특집 바다사나이 한주호>와 <특별기획 천안함 침몰 국민의 마음을 모읍시다> 등의 특집프로그램들이 긴급 편성됐다. 이 날을 기점으로 천안함의 진상에 대한 규명노력은 없이 무조건적인 추모와 애도를 시청자들에게 강요하는 프로그램들이 쏟아져 나왔다. 3주 연속으로 모금방송이 주말에 방송됐고, 짐작컨대 군사정권 이래 성금 모금에 대한 시청자들의 항의가 가장 거셌던 방송이었다. 과연 이러한 '천안함 모금‘ 방송이 꽃다운 나이에 유명을 달리한 병사들에 대한 진정한 예우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시신 인양도 하기 전에 모금 방송부터

본격적인 추모 모금 방송은 4월 11일(일) ‘특별생방송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 1, 2’부터였다. 이 방송은 예능제작국과 기획제작국, 교양제작국에서 PD들이 차출돼 만들어졌다. 이 프로그램이 처음 만들어질 때부터 일선 PD들의 문제제기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천안함 병사들과 금양호 어민이 참변을 당한 상황에 대해서 KBS가 애도를 표하고 국민들과 슬픔을 같이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시신 인양도 아직 안 된 상황에서 모금 방송을 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이다.

당시 유가족들은 시신을 인양하고 원인규명을 한 후에 장례식을 치뤄야 한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KBS가 대대적인 생방송으로 추모방송을 하며 성금 모금을 벌이는 것은 언론의 제대로 된 역할이라고 할 수 없다. 정확한 원인규명에 힘써주기를 바라는 국민과 유족들의 바람을 저버리는 일일 뿐더러, 시신이 수습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장병들의 사망을 기정사실화하는 모양새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제작진들의 판단이었다.

침몰 원인도 모르는데 ‘영웅 만들기’

애초에 제작진들이 올린 프로그램 제목에는 ‘영웅’이란 말이 없었다. 당시 시점은 진상규명에 초점이 맞춰져야지 희생자들에게 ‘영웅’이란 칭호를 부여한다는 것은 본질을 희석시킬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제목은 ‘천안함의 영웅들 당신을 기억합니다’로 둔갑했다. 희생된 군인이 영웅이 되려면 최소한 교전이나 위험하고 특별한 작전 수행 도중 사망해야 한다. 하지만 침몰 원인도 밝혀지지 않았는데 무턱대고 ‘영웅’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천안함 군인들 구조하려다 침몰해 희생된 금양호 선원들도 영웅으로 불러야 하지 않나.

또 만에 하나 북한의 공격이 아닌 ‘사고’로 결론이 나면 앞으로 수 십 명이 숨지는 대형 사고가 터질 때마다 희생자들을 위해 KBS는 성금 모금을 할 것인가? 제작 실무진은 이 같은 이유로 애초부터 성금모금 방송을 반대했다. 침몰 원인을 모를 뿐 아니라 천안함 해군들은 공무 수행 중 참사를 당한 만큼 국가가 그 진상 규명에 최선을 다하고 법과 절차에 따라 보상과 예우를 해야 하는데, 언론사가 나서서 성금모금을 대대적으로 벌이는 것은 국민들에게 그 책임을 떠넘기고 진상과 책임 규명을 회피 하는 데 일조하는 것일 뿐이라고도 지적했다. 하지만 이 모든 항의와 문제제기는 ‘소귀에 경 읽기’일 뿐, 결국 성금모금 방송은 강행됐다.

이 분은 꼭 넣어라…이 방송의 주인공은 누구?

4월 11일 모금방송이 있기 하루 전 날. 유인촌 문화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여당의 귀빈들이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 KBS를 방문했고, 이를 촬영하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리고 다음날 간부들은 유인촌 장관을 비롯한 귀빈들이 나온 VCR을 꼭 집어넣으라고 종용했다.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마련한 방송에 정부 여당인사들의 얼굴을 반드시 넣어야 한다는 간부들의 노심초사에 제작진들은 강하게 반발을 했다. 상(喪)중의 조문객은 누구나 망자를 애도하는 평범한 존재일 뿐이다. 신분이 높고 권력이 높다고 해서 상주에게 먼저 인사를 받을 수 없다. 그런데 장관이나 정치인들이 그 자리에서 도대체 무슨 존재이기에 ‘그분들’이 나온 VCR을 빠뜨리지 말라고 특별당부를 한단 말인가.

KBS ‘시사프로그램’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천안함 사건이 발발한지 한 달의 시간이 흘렀다. KBS는 과연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했는가? 국방부의 애매모호하고 오락가락하는 발표를 전하는 것 이외에 천안함 사건의 침몰 원인과 풀리지 않는 의혹은 무엇인지, 책임 소재는 어디에 있는지,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얻어야 할 교훈은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한 화두를 던진 적이 있는가?

예전 같았으면 <KBS 스페셜>이나 <추적 60분>, <시사기획10>같은 프로그램에서 이미 취재에 들어가 벌써 나름대로의 분석을 담은 프로그램을 내놓았을 것이다. 이런 사건이 발생했는 데도 다루지 않는다면 그것이 이상한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 KBS는 침묵하고 있다. <추적 60분>이나 <시사기획 10>에서는 아직 이 주제를 다루지 않고 있고 있다. <KBS 스페셜>에서는 지난 4월 4일 ‘천안함 침몰 9일의 기록’을 방송했지만 사건의 원인이나 군과 정부 대응방식의 논란등은 거의 다루고 있지 않다. 애초부터 사건의 진실에 대한 객관적 분석보다는 단순한 ‘기록’과 ‘추모’에 국한되도록 기획되어졌기 때문이다.

이러는 와중에 타방송사에서는 나름대로 이 사건을 다른 각도로 분석하는 프로그램들이 방송되었고, 많은 PD들은 자괴하고 있다. 이러한 자괴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KBS가 정상화되었다고 믿는 KBS 내외의 사람들은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생각하면 할수록 참담한 기분이 들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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