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위원장 편지

 6월 2일, 어제는 태풍이 휘몰아쳤습니다.

 ‘분노한 민심이 육중하게 움직이고 있다!’ 말은 그렇게 해 왔지만 이처럼 큰 너울이 일지는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제 세상 사람들은 열심히 그 이유와 원인을 따지겠지요. 그러나 새삼 따지고 살필 일이 무어 있겠습니까? 자업자득, 천심인 민심을 두려워하지 않고 폭력으로 백성을 짓누른 오만, 그것이 죄가 되고 업이 된 것이겠지요.

 기쁘고 다행스럽습니다.

 세찬 바람에 먹장구름이 물러가고 ‘아’ 탄성이 절로 나는 여름하늘을 본 듯합니다. 그러나 마음 한 쪽에 두렵고 숙연한 생각이 자리 잡는 것을 어찌할 수 없습니다. 결국 ‘심판’에 방점이 찍힌 이번의 승리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들의 눈물과 피로 얻은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겠지요.

 강의 생명을 위해 자신의 육신을 소신공양한 문수 스님을 생각합니다. 설 앞에 참혹하게 화형 당한 용산 철거민들을 생각합니다. 하염없이 눈 내리던 장례식 흑백사진을 생각합니다. 살이 녹는 최루액을 뒤집어쓰며 77일간 공장을 지키던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생각합니다. 소낙비를 맞으며 우리와 함께 삼보일배를 하던, 그들의 젊은 아내들을 생각합니다. 향기로운 아카시아 꽃향기 피우던 나뭇가지에 목을 건 박종태열사를 생각합니다. 교문을 사이에 두고 아이들과 눈물로 이별하던 해직교사들을 생각합니다. 거짓말 하는 놈에겐 뺨을 후려쳐 주는 것이 자비라고 일갈한 명진스님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1년 반 넘게 해직의 고통을 묵묵히 감내하고 있는 YTN 노종면 앵커와 조승호, 우장균, 현덕수, 정유신, 권석재 기자를 생각합니다. 곧 닥칠 징계와 사법처리를 담담히 기다리고 있는 이근행 MBC본부장과 조합원들을 생각합니다. 유배중인 KBS의 김현석, 김용진 기자 그리고 양승동, 이강택, 최용수PD를 생각합니다.

 조합원 여러분,

 지난 2년 반 동안 우리는 절망과 비겁과 좌절대신 희망과 용기와 자신감을 이야기해 왔습니다. 다시 사람의 세상으로 돌아가기를 꿈꾸어 왔습니다. 그 꿈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확인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매일매일, 조금씩조금씩 이겨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겪어야할 고난은 오히려 더 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두터운 역사책 어디에도 독재자가 스스로 참회하고 개심했다는 대목은 없기 때문입니다. 쫓기는 맹수는 더욱 포악해지는 법, 막판, 서울 강남의 몰표가 그것을 예고하고 부추길지도 모르겠습니다.

 큰 숨 한 번 쉬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두 번 고개를 숙였지만 다시 머리를 쳐든 저들의 본질을 생각합니다. 인육의 맛을 잊지 못해 악행을 멈추지 않는 맹수에게는 숨통을 끊어주는 일이 자비일 것입니다. 아무래도 봉은사를 한 번 찾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2010년 6월 최상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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