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MBC본부 조합원으로 거듭 태어나겠습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업무직지부는 2001년 노조를 설립한 지 10년 만인 2010년 6월 30일 오늘 지부를 전격 해체합니다. 지부의 모든 권리는 문화방송본부로 편재되며 조합원들은 본부조합원 자격으로 새롭게 태어납니다. 10년의 투쟁역사를 이어온 노동조합이 자진 해체하려고 하니 만감이 교차하지만 그토록 언론독립을 염원했던 100여 명이 동지들이 김재철 사장에 의해 무참하게 징계를 당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투쟁을 결의하면서 업무직지부 과거의 행적을 정리합니다.

2000년 가을, 여의도 인근 모처에서 계약직원 몇몇이 모여 극비리에 노조결성을 도모하게 됩니다. 당시에 계약직이 노조를 결성하는 것은 곧 해고를 의미하는 것이었지만 근로기준법에서조차 해석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근로조건은 더는 그들을 만류할 수 없었습니다. 노조의 울타리가 그들에게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군가 “사원노조의 규약에 의하면 계약직도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 우리가 살길은 바로 사원노조에 가입하는 길뿐”이라며 노조결성을 잠시 유보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들의 기대는 곧 사치임을 깨닫게 됩니다. 사원노조가 그들의 요청을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노조결성을 주장했던 주동자들은 졸지에 계약해지 위협을 받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고 회사는 조직적으로 계약직들의 동태를 파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지만 노조를 만들겠다는 의지는 이미 초지일관한 상태였고 회사의 방해에도 결국 성공하게 됩니다. 세상의 모든 노동조합이 고난의 역경을 이겨내고 탄생하듯이 언론사 최초의 계약직노동조합인 ‘문화방송계약직 노조’의 역사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7인의 발기인으로 출범한 노조는 단시간에 200여 명 넘는 계약직원들이 가입함으로써 회사를 당황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봇물 터지듯 시작된 투쟁은 해를 거듭할수록 협상을 승리로 이끌며 성과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동일기간 계약을 수차례 반복한 상시계약직은 대법원의 판례에 의해 정년을 보장받았고 직무의 연속성이 있는 한시계약직 대다수를 상시계약직으로 전환했습니다. 평생의 한으로 남을 것 같았던 계약직이란 지긋지긋한 꼬리표도 떨어지고 정규직 냄새가 나는 ‘업무직’이란 새로운 명칭도 얻었습니다. 회사는 ‘업무직은 정년이 보장된 정규직’이라는 감언이설로 끊임없이 우리의 투쟁을 지나치다며 혼돈되게 했지만 우리는 투쟁을 이어나가 2008년에는 드디어 취업규칙상 정규직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본부도 “비정규직 채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인력정책을 수립하고 비정규직 근로조건 개선에 노력한다.”라는 협약을 회사와 체결함으로써 우리의 투쟁에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본부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처한 상황을 외부에 알리며 전면적으로 투쟁하기에는 현실적으로 공영방송 노조인 본부의 사회적 지위에 피해를 준다는 인식이 부담스러웠습니다. 한편으로는 정규직의 업무 공백을 채우기 위해 채용된 비정규직의 문제가 단순히 업무직노조가 계약직출신노조라는 이유로 모두 부담하기에는 불공평했습니다. 게다가 우리가 투쟁을 지속하는 동안 회사는 한시계약직으로 채용하던 직종마저 파견, 도급근로자로 채워나갔고 정규직을 뽑지 않는 정규업무들을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근로기준법의 사각지대에서 근로연장을 미끼로 차별받고 소외당하던 우리들의 모습이 또 다른 비정규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는 생각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지만, 비정규직 동료들은 오히려 “당신들이 진다면 누가 용기를 내서 싸울 수 있겠는가? 우리에게 더 큰 고통이 다가온다는 것을 깨달아 달라.”며 우리를 독려하였습니다. 고맙고 미안했습니다.

이제 우리가 노조를 해산하면서 분명히 밝혀두고 싶은 것은 “노동자 간의 차별철폐는 노동조합 활동 중 가장 기본이 되고 가장 앞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라는 것입니다. 회사 나아가 사회 전체의 올바른 발전을 위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정규직, 비정규직 간에 능력과 직종의 차이는 존재합니다. 노동자들도 이를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회사도 비정규직 채용을 최소화하고 노동삼권의 기본정신과 비정규직보호법만이라도 올바르게 해석하고 준수한다면 노사 또는 노노 간의 갈등은 해소될 것입니다. 돌이켜보면 순간마다 쉽지 않은 결정과 선택을 하면서 고통의 연속이었다고 결론짓기엔 노동조합 활동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비록 이해부족과 절차적인 문제로 본부와 지부 간의 통합이 연기되면서 두 개의 노조로 쪼개져 파업투쟁에 참여한 조합원들의 마음고생은 심했으나 이제 우리는 좀 더 미래지향적인 노동운동과 언론독립투쟁을 위해 본부와 완전히 합체합니다. 손가락이 나란히 서면 칼날이 되고 모이면 주먹이 되듯이 노동자가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을 때 노동운동은 완성됩니다.

같은 노동자출신임에도 노동조합을 철천지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노동조합에 모든 것을 맡기고 의존하며 투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자신의 지위가 높으면 자신의 인생이 노동조합과 전혀 관계가 없다고 생각을 바뀌고 아무런 죄책감 없이 노동조합을 무시하고 탄압하는 사람들에게 부탁드립니다. 길게 보면 진실이 보입니다. 자본과 세력에 맞서 노동자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노동조합은 부단히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이고 노동조합은 노동자의 안식처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업무직지부는 노동운동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영원히 사라집니다. 조합원 동지 여러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우리노조를 후원하고 연대해주신 모든 노동자 동지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역사가 노동자 투쟁의 산물이고 투쟁하지 않는 노동자는 노동자가 아님”을 우리는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본부 조합원으로 거듭 태어나겠습니다.

그리고 업무직지부 조합원 자격으로 MBC를 권력의 앞잡이로 만들려는 음모에 동참하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드립니다. 노동조합이 항상 정치적이고 투쟁이 과하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 번 노동자가 얼마나 참고 인내하는지를 고민해보시길 바랍니다.


2010. 6. 30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 업무직지부장 이 상 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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