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4일 민실위 보고서>

결국 경찰이 MBC에 고개를 숙였다. 조현오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지난달 28일 MBC에서 일어난 서울경찰청 정보요원의 생방송 대본 요구 사건에 대해 공식 사과했다. 정보요원에 대한 인사조치도 약속했다. 얼핏 보기에는 경찰 정보요원 1명이 멋모르고 언론사 심기를 건드렸다가 제대로 한방 맞은 셈이다.

사건 개요는 이렇다. 6월 28일 생방송을 앞둔 MBC 라디오 스튜디오에 평소 MBC를 ‘담당’
하고 있던 서울경찰청 정보과 형사가 나타났다. 그는 방송 예정이던 채수창 전 강북경찰서장의 인터뷰 질문지를 보자고 요구했다. 채수창 전 서장은 최근 양천경찰서 고문 사건이 경찰 수뇌부의 실적주의에서 비롯됐다며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을 정면으로 비판했다가 직위해제된 인물이다. MBC 제작진은 외부인 출입금지 구역임을 고지하고 정보과 형사를 내보냈으며, 며칠 뒤 MBC 노조가 이러한 사실을 공개했다.

이 사건을 보도한 언론은 줄잡아 수십이다. 서울경찰청장이 비교적 빨리, 비교적 순순히 사과를 하게 된 것은 언론 보도의 양 때문일 수 있다. 방송사의 잇단 파업과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언론 장악 논란이 거센 마당에, 수사기관의 언론 검열이란 ‘오해’까지 사게 되었으니, 개인의 경솔한 행동을 엄히 문책하고 해당 언론사에 사과함으로써 꼬리를 자르는 것이 정권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일 수 있다. ‘민간인 사찰’로 가뜩이나 궁지에 몰려 있는데 ‘언론사 사찰’까지 했다고 한다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언론은 이번 사건을 비교적 대대적으로 보도함으로써 ‘언론을 검열 또는 사찰로부터 지켜야 한다’는 마지노선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아쉽다. 정권이 모면하고자 하는대로 ‘검열 또는 사찰’의 구조적 개념에 제대로 접근한 보도는 없었다. 스튜디오 진입을 난입이라 쓰고, 질문지 요구를 질문지 검열로 일방 규정한 사례는 보여도 왜 수사기관의 정보요원이 방송사를 제지 없이 드나드는지, ‘담당’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짚어낸 보도는 극히 일부에 불과했다. 언론 종사자들은 누구나 다 안다. 관할 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드나들고, 지방경찰청 정보과 형사가 드나든다. 심지어 국정원 담당자들도 언론사를 출입한다. 이들이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아는 이는 없다. 그러나 MBC에서 일어난 사건을 유추해보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일은, 정보요원이 감히 언론사의 심기를 건드린 우발적 사건인가, 아니면 수사기관이 조직적으로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구조 속에서 불거진 상징적인 사건인가? 선택은 언론의 몫이다.

2010년 7월 1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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