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4일 민실위 보고서>

이명박 대통령은 목하 휴가 중이다. 비록 휴가라고는 하나 개각 구상으로 제대로 쉴 틈이 있을 지 모르겠다. 우선 ‘세종시 총리’로 불리는 정운찬 총리의 후임을 낙점해야 한다. 비교적 큰 폭으로 예상되는 개각이고 보니 채워야 할 장관 자리 역시 부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번 개각은 5년 임기 중 절반이 지나고 단행되는 이른바 ‘반환점 개각’이기 때문에 집권 세력 내 역학 관계와 권력 누수의 소지 등을 어느 때보다 꼼꼼히 살펴야 한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2년 반은 좌절과 상처의 연속이었다. 출범 초부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을 잘 못하여 국민 앞에 고개를 숙여야 했고, 국가 백년대계의 수식어를 붙였던 세종시 수정안은 사회 갈등과 여권 분열만 야기하고 백지화 되었다. 재투표, 대리투표의 불법 낙인이 그대로 찍혀 있는 미디어법은 그 불순한 특혜를 호시탐탐 노리는 언론들의 이해관계 조정으로 애물단지가 되어 버렸다. 대운하 사업 대신 추진하는 4대강 사업은 또 어떠한가? ‘대못질보다 더한 삽질’ 소리 들어가며 밀어붙이고 있지만, 6.2선거로 주인이 바뀐 지방정부가 쉽게 말을 들을 것 같지 않다. 천안함 사태로 부각된 국방과 외교의 문제도 간단치 않다. 집권 후반기 개각 구상에 몰입해 있을 이명박 대통령의 머리 속은 이러한 생각들로 적잖이 복잡하리라.

그래서였을까? 청와대 참모진은 휴가 떠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e북(전자책)을 건넸다고 한다. 일반책이 아닌 전자책임을 굳이 강조한 대목을 눈감아 준다면, 독서로 머리를 식히라는 뜻이리라. 청와대 참모진은 e북 외에 엠바고(embargo)라는 선물도 마련했다. 청와대 기자단에 ‘하마평 보도’ 엠바고를 요청했고 기자단이 이를 수용했다. 대통령이 적어도 이번만큼은 후보군에 대한 설왕설래에 마음이 흔들릴 우려는 사라진 셈이다. 그러나 과연 대통령을 위하는 일일까?

하마평 보도의 근본 취지는 검증과 반응이다. 요직일수록 하마평은 무성하다. 그만큼 검증과 반응의 중요성이 크기 때문이다. 인사권자는 미처 살피지 못한 부분을 하마평 보도를 통해 검증하고 세간의 반응을 참고해 낙점을 하게 된다. 낙점을 하기 전에 고려할 사항이 늘어나는 불편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모르고 낙점했다가 낭패를 당하는 것보다 낫다. 청와대의 ‘하마평 엠바고’는 대통령의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낭패’를 감수하겠다는 무모한 충성이다. 언론의 검증과 여론의 견제 기능을 무시하겠다는 오만이다. 물론 하마평 보도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취재가 아닌 알아맞히기식 보도로 불필요하게 후보군이 늘어 혼란을 줄수 있고, 언론이 여론 떠보기의 도구로 이용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는 시정의 대상이지 하마평 보도를 아예 막아버리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청와대의 부당한 요구를 덜컥 수용한 청와대 기자단은 언론이 대통령 휴가 선물에 동원된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보기 바란다.

2010년 8월 4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