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

이명박 대통령의 8.8개각이 결국 펄펄 끓는 민심 앞에 무릎을 꿇었다. 개각 발표 이후 3주 간의 과정을 복기해 보면 총리 후보자를 비롯해 부적격 후보자들이 줄사퇴 하게 된 상황이 용하게 느껴진다.

총리, 장관 후보자들이 청문회 관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낙마하는 것이 이례적인 일은 아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에도 전례가 있다. 그러나 이번 경우에는 과정이 다소, 아니 결정적으로 달랐다. 대개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개각을 앞두고 하마평이 무성하다. 언론은 하마평을 토대로 사전 검증 기능을 수행한다. 개각이 발표된다. 후보자들에 대한 본격적인 검증이 시작된다. 그 기능은 국회와 언론의 몫이다. 후보자 검증은 청문회에서 절정에 이른다. 여론이 형성된다. 낙마자가 나온다. 이번에는 하마평 보도로 표현되는 개각 이전의 언론 검증 기능이 아예 없었다. 개각 발표 이후의 언론 검증도 수준 이하였다. 낙마의 절대 기준인 여론에 이른바 주류 언론은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부끄러운 일이다.

권력은 여론이 움직이지 않는데도 이미 둔 수를 스스로 물리지는 않는다. 이번에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이 사퇴하게 된 이유도 여론, 민심 때문이었다. 누가 여론을 움직였나? 누가 후보자들의 의혹을 국민에 알렸나? 막강한 매체력을 확보하고 있는 주류 언론, 그들은 아니다. 국회 청문위원들이 내놓은 자료를 발췌해 일부만 단순 전달하거나, 뒷북보도, 해명보도로 일관했다. 방송의 경우 KBS ‘조현오 발언’ 특종이 사실상 유일한 특종 사례로 눈길을 끌었지만 KBS 내부의 ‘특종 날치기와 사전 검열’ 논란으로 빛이 바랬다. 신재민 후보자의 이른바 ‘YTN 협박 녹취록’은 정권 차원의 언론 장악 문제를 짚어낼 사례였음에도 전 방송사를 통틀어 단 한 줄도 보도되지 않았고, 주류 신문들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유례없는 하마평 엠바고 요청을 청와대 기자단이 수용할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지만, 주류 언론의 개각 보도, 청문회 보도는 ‘낙마’ 수준이다.

보도는 신중해야 한다. 청문위원이 보도자료를 내놓는다 해도 신중하게 보도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러나 신중한 것인지 회피한 것인지 언론 스스로 자문해야 한다. 뒷북보도, 해명보도의 본질은 회피이다. 회피하다 남들 하니까 뒷북을 친다. 해명이 나온 뒤에 보도함으로써 면피한다. 주류 언론 중에 의혹을 찾아내고, 제기된 의혹을 심층 취재한 사례가 있으면 내놓아 보라. 낙마 가능성이 높아진 뒤에, 또는 사퇴를 한 이후에야 짐짓 근엄한 척 정권을 꾸짖는 사설과 논평을 쏟아낸들 무슨 설득력이 있겠는가?

여론은 저절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언론에 대한 과대 포장이다. 8.8개각 이후 여론은 스스로 움직였다. 매체력이 약한 인터넷 언론에서 총리, 장관 후보자의 의혹을 접하면 트위터로, 블로그로 확대 재생산하여 주류 언론의 여론 확산 기능을 상당 부분 대신하였다. 바야흐로 주류 언론은 주류가 아니다.

2010년 9월 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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