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실위 보고서

[민실위 보고서]  방송, 대통령의 눈물로 얼룩지다 

이명박 대통령은 연초 ‘경제위기극복 1년 평가와 과제’라는 행사에 참석했다가 눈물을 비쳤다. 사채에서 겨우 벗어난 한 시민의 사연이 대통령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때만 해도 신문들만 이 사실을 보도했다.

대통령은 지난 4월 19일에도 눈물을 보였다. 천안함 희생장병 추모 연설 때였다. 당시 대통령의 눈물은 생중계로, 방송 뉴스로 생생히 보도되었다. 당초 라디오와 인터넷 연설로 기획되었으나, 뉴스를 다루는 모든 방송사가 생중계에 참여했다. 이때만 해도 대통령의 눈물이 주는 아니었다.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면서, 또는 눈물이 고인 채로 연설을 했기 때문에, 뉴스 제작자가 눈물을 임의로 강조할 여지는 제한적이었다.

공식적으로 올해 세 번째인 대통령의 눈물은 그 성격과 방송의 대우가 달랐다. 추석 연휴 첫날이었던 9월 21일 KBS의 아침 토크 프로그램에 대통령 내외가 출연했고, 대통령은 울었다. 어머니를 향한 회한과 그리움의 눈물은 대통령의 인간미를 부각하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대통령의 눈물에 대한 예우에도 모자람이 없었다. SBS를 제외한 모든 방송사들이 대통령 내외의 토크 프로그램 출연을 보도하며 대통령의 눈물을 앞 다투어 부각했다. 2분 안팎의 리포트에서 KBS는 대통령이 눈물 흘리는 장면을 20초나 할애했다. MBC는 한술 더 떠서 무려 33초였다. YTN과 MBN은 대통령의 눈물 장면이 15초로 상대적으로 짧았으나, 대통령의 인간미를 일방적으로 부각한 부적절한 보도의 책임은 매일반이다.

대통령이라고 토크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말란 법은 없다. 우리야 헌정 사상 처음 겪은 일이지만 외국에서는 간혹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지난 4월 러시아 변방의 한 자치공화국에서는 대통령이 TV 토크쇼에 나가 ‘외계인 납치설’을 주장한 일도 있었다. 그러나 제대로 된 경우 대통령은 중요한 뉴스 인물로서 출연하는 것이지, 흥미를 끌거나 인기를 얻기 위해 출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출연 자체가 뉴스가 아니라, 출연 중 한 말이 뉴스여야 한다. 곤란한 질문도 소화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결국 대통령의 방송 출연은 국격과 방송의 격을 동시에 가늠하는 척도라 할 수 있다.

9월 21일은 어떠했는가? 좋은 인상을 줄만한 말과 모습 뿐이었다. 정작 뉴스는 없었다. 그런데 뉴스에 등장했다. 뉴스는 솔직하고 진솔했다고 마음대로 포장했다. 대통령이 방송에 나와 개인사를 얘기하며 운 것 자체가 뉴스 아니냐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천만에올시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되기 2주 전이던 2007년 12월 5일 SBS 좋은아침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와 2010년 9월 21일과 똑같은 이유로 눈물을 보였다. 눈물이 기획되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으나, 눈물을 굳이 회피할 생각도 없었으리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2007년 8월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 막판에 이명박 캠프에서 논평을 냈다. ‘박근혜 후보가 어머니 추도식에서 눈물을 흘린다면 이는 악어의 눈물일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의 눈물을 보도한 언론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2010년 9월 26일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