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7일,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주무관 장씨가 청와대를 방문한다. 장씨는 청와대 행정관 최씨로부터 대포폰을 받아 간다. 장씨는 대포폰을 이용해 수원의 한 컴퓨터 전문업체를 섭외한 뒤 공직윤리지원관실 컴퓨터 넉대를 들고 가 하드디스크를 영구 삭제해버린다. 당일 저녁 장씨는 대포폰을 다시 청와대 행정관 최씨에게 돌려준다. 검찰이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한 지 이틀 만에 일어난 일이다. 다음날인 7월 8일, 검찰은 이미 작업이 끝난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한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올 법한 일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사실을 검찰이 확인했다는 사실이며,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검찰이 확인하고도 더 이상 수사하지 않기로 했다는 사실이다. 이렇게 놀라운 사실들이 국회에서 폭로되고 확인되었다. 그러나 언론은 짐짓 냉정한척, 남의 주장을 전하는 방식으로 그저 그런 일이 있었다더라는 식으로, 최소한의 수준에서 보도하였다. 권력이 불편해하는 사건이어서였을까? 검찰에 대한 질타도 없고, 여권 내부의 파열음도 수박 겉핥기에 그쳤다. 드러난 부분만이라도 상세히 전하는 친절함도 없었으니, 문제의 대포폰으로 청와대 행정관 최씨가 하드디스크 삭제를 지시한 자와 통화한 사실이 추가로 드러났을 때 대부분 침묵했다.

 이른바 대포폰 사건이 불거진 시점은 11월 1일이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대포폰 사건은 이른바 청목회 사건에 밀려나고 만다. 지상파 방송 메인뉴스의 경우 세 방송사가 약속이라도 한 듯 11월 5일 국회 대정부질문 보도를 끝으로 대포폰 사건이 사라졌다. ‘무대포’가 된 것이다.

 대신 청목회 사건이 이후 일주일 간 대포폰 보도의 공백을 메웠다. 11월 1일부터 5일까지 지상파 3사 메인뉴스에 등장한 대포폰 관련 보도는 모두 11건이었던 반면 11월 10일까지 청목회 보도는 3배가 넘는 36건으로 파악되었다. G20과 아시안게임이 시작된 이후에는 대포폰이든 청목회든 흔적을 찾기 어려웠다.

 11월 12일 야당 의원이 내놓은 대포폰 피해 관련 통계가 정치적 함의와 무관하게 보도되었을 뿐이었다. 상황이 이랬던지라 11월 13일 MBC의 ‘청목회 vs. 대포폰’ 보도는 상대적으로 빛이 났다. 전혀 성격이 다른 두 사건의 정치적 상관 관계를 짚어낸 유일한 보도였고 마지막 보도였다.

 이귀남 법무장관은 지난 15일 국회에 출석해 대포폰 재수사 문제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재수사를 하겠지만 언론에서 제기한 부분은 이미 수사에서 나왔던 자료이므로 재수사는 불필요하다.’ 언론이 새로운 사실을 제기하면 재수사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언론과 검찰의 역할도 구분하지 못하는 듯하여 한심하단 생각도 들지만 아픈 지적이기도 하다.

 대포폰 사건을 미국 닉슨 대통령의 사임을 불러온 워터게이트 사건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치명적으로 다를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워터게이트에는 워싱턴포스트라는 언론과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 두 기자가 있었다. 대포폰에도 그런 언론, 그런 기자가 없으란 법 없다. 다만, 지금의 언론 보도는 우려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2010년 11월 1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