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 처리 과정에서 불거진 ‘난장판 국회’는 언론 보도 소재로 안성맞춤이다. 이른바 그림이 된다. 양비론이라 불리는 기계적인 중립 지대에서 언론은 짐짓 근엄하게 정치인들을 싸잡아 꾸짖을 수도 있다. 언론의 양비론에 문제가 많다는 지적 역시 국회 활극만큼이나 오래된 레퍼토리이지만 정치가 워낙 수준 이하이다 보니 양비론은 뉴스 소비자의 관심을 끌지 못한다. 그래서인가? 지난 12월 8일 난장판 국회를 보도한 언론들은 양비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한나라당 편을 드는 보도를 한둘 끼워 넣었다. 주로 공영언론이 그랬다.

 당일 KBS 9시 뉴스는 야당의 점거로 물리 충돌이 본격화되었다고 보도했다. 물리 충돌을 유발한 책임이 야당에 있는 것처럼 들리는 표현이다. KBS는 또한 예산안의 핵심 내용을 ‘4대강 예산 삭감, 국방 예상 증액’이라고 요약했다. ‘4대강 깎아 국방비 늘리자’는 야당 주장과 다를 바 없다고 오해할 만하고, 그렇다면 야당은 왜 반대했을까 의아해질 수도 있다. 여야 충돌의 핵심인 4대강 예산이 어느 규모인지, 삭감 폭이 적정한 것인지 KBS 보도로는 판단할 수 없다. 예산안의 구체 내용이 일부 보도되기도 했다. ‘너나 없는 지역 챙기기’라는 제목의 뉴스에서 KBS는 유혈 난장판 속에서도 지역구 예산을 챙긴 몰염치한 정치인을 힐난했다. 여야 균형을 맞춘 듯 보이는 이 뉴스는 사실 여당을 편들고 있다. 지역구 예산을 가장 많이 챙긴 대통령의 형 이상득 의원의 경우를 가장 나중에 소개하면서 액수를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박희태 국회의장의 사례는 아예 다루지 않았다.

 MBC 역시 난장판에만 주목하고 예산안의 구체적인 조명에는 소홀했다는 점에서 KBS 보도와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1년 전 한나라당이 발의한 국회폭력방지법안(국회선진화법안)의 표류를 지적한 부분은 여당 편들기 소지가 다분하다. 해당 법안에 대해 야당은 ‘선진을 가장한 쿠데타적 발상으로, 의회 독재를 제도화하려는 시도’로 규정하고 있다.

 국가기간통신사인 연합뉴스도 한나라당이 반길 기사를 보도했다. 선진국 의회에서는 아무리 대립하는 사안이라도 표결만은 보장한다는 내용이다. 표결이 보장되지 않는 의회가 옳다 할수 없지만, 왜 표결 대신 물리 충돌이 일어났는지를 살피지 않는 보도 또한 옳지 못하다. 최소한 우리 의회가 과연 선진국 의회만큼의 충분한 협상과 법안심사 과정을 거쳤는지 정도는 살폈어야 했다. 여당의 일방 독주에 담긴 비민주성은 덮어주고 야당의 표결 저지만 부각한 셈이다. 다만, 선심성 지역 예산을 전액 삭감했다는 미국 의회 사례를 한국의 ‘육탄전 속 지역구 챙기기’와 대조한 연합뉴스의 보도는 인상적이었다.

 전반적으로 평가할 때 공영언론의 ‘난장판 국회’ 보도는 실망스럽다. 오히려 민영방송인 SBS의 보도가 상대적으로 공정했다. SBS는 수자원공사 예산 등을 포함한 실질적인 4대강 예산의 규모를 가장 충실히 보도함으로써 시청자에게 최소한의 판단 근거를 제공했다. 또한 여당의 입장이 갑자기 강공 선회한 배경과 정부 여당이 약속해놓고도 누락시킨 친서민 예산 문제도 짚었다. 공영언론은 분발해야 한다.

2010년 12월 1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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