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이 무플보다 낫다’는 말은 정치인에게도 적용된다. 그만큼 정치인은 언론의 관심을 원한다. 뉴스에도 못나와 안달이지만, 그보다는 노출이 많은 단독 인터뷰나 토론 프로그램을 선호한다. 또 그보다는 교양 프로그램이 좋고 예능·오락 프로그램이라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다. 정치 현안을 둘러싼 시빗거리 없이 인간적인 면모만 한껏 부각할 기회이니, 당연한 선호일 테다.

현 정부 출범 이후 KBS 기자·앵커에서 청와대 비서관으로 변신했다가 청와대 대변인을 거쳐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오른 박선규 씨가 지난 23일 KBS의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출발드림팀’에 출연했다. 출발드림팀에는 종전에도 정부 고위 관료와 공기업의 이른바 ‘낙하산 사장’이 얼굴을 내미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것만으로도 출발드림팀은 공정성에 대한 비판을 면할 수 없지만, ‘박선규 편’은 도를 넘었다. 우선 박선규 차관이 등장하는 장면이 무려 15분에 걸쳐 이어졌다. 박 차관은 이전 사례와 달리 출연자들과 함께 게임에 참여하기도 했다. 다른 출연자 게임 장면을 빼더라도 박 차관이 주인공인 방송분은 6분에 달했다. 보통 높은 분들의 출연 길이는 1분 내외였다.

방송 내용은 더욱 문제로 보인다. 박 차관을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문화를 알려주시는 분’으로 소개했다. 고정 출연자인 인기 연예인들은 탄성과 박수로 흥을 돋았고, ‘멋지다’는 둥, ‘말씀 너무 잘 하신다’는 둥 손발이 오그라드는 추임새를 보탰다.

박 차관에게 문체부의 정책 홍보 기회를 제공한 것은 물론이다. 어디 이뿐이었나? 박 차관이 게임에서 ‘선물 제공’ 벌칙을 면했음에도 자진해 선물 비용을 쾌척하는 ‘통 큰 차관님’의 면모를 보여주기도 했다. ‘차관님의 선물’이라는 자막과 함께! 그래서일까? 박 차관은 이렇게 말했다. “차관 되고서 오늘처럼 행복한 날이 없었습니다.”

케이블음악채널 엠넷은 한나라당 나경원 의원과 관련된 시리즈 방송을 내보냈다. 인기 걸그룹 티아라가 나 의원의 보좌관직을 체험하는 내용이 지난해 말부터 지난 19일까지 4회에 걸쳐 방영되었다. 특정 정파와 정치인 띄우기에 인기 연예인을 동원했다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실제로 방송분에는 나 의원과 한나라당 행사가 자주 등장하며, 티아라가 나 의원을 가리켜 ‘결단력 있다’, ‘인간적이다’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예능·오락 프로그램에 권력자가 등장하는 경우는 외압 또는 제작진의 방송 철학 부재, 둘 중 하나로 볼 수 있다. 어느 쪽일까? 불행하게도 우리 방송 현실은 그 물음에 답을 찾을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 이미 안방극장은 상당 부분 잠식당하였다. 여당 실세 의원이 음반 냈다는 이유로 각종 연예·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더니 급기야 대통령 내외까지 시사·보도와 무관한 프로그램에 등장해 신변잡기를 늘어놓는 상황이다.

정권이 반대와 갈등을 무릅쓰고 기정사실화하려는 ‘종편시대’. 방송을 상시적인 권력자 띄우기의 도구로 인식하는 정권 입장에서 볼 때, 종편의 출범은 ‘출발 드림방송’이라 할 만하다. 방송이 훼손되는 이유는 외압일 수도, 제작진의 방송 철학 부재일 수도 있겠지만, 훼손을 막아내는 일은 방송 철학의 기본을 지키려는 언론인의 저항으로부터 시작될 수밖에 없다.

2011년 1월 27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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