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사태 직후 언론이 뜨겁게 다뤘던 ‘경기도 포격설’은 결국 유언비어였다. 취재원의 실존 여부 자체가 의심스럽고, 북한 뉴스를 입방앗거리 정도로 취급하는 일본 신문을 받아 쓴 보도였음에도 불안 심리를 고조시키는데 부족함이 없었다. 언론은 이에 대한 어떠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새로운 도발설을 제기하고 있다. 이른바 ‘3월 위기설’(중앙일보), ‘2분기 도발설’(문화일보)이 그것이다.

최근에 나온 도발설의 근거로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응한 도발 가능성, 대화 국면에서 성과 없을 때 도발을 선택할 가능성, 해안포와 장사정포 훈련 포착 등이 제시되었다. 앞의 2가지는 근거라기보다는 전망이며, 새롭거나 전문적이랄 수 없는 느슨한 전망이다. 더욱이 이렇게 느슨한 전망을 제시하면서도 그 주체를 군 고위 정보 관계자, 익명의 남북관계 전문가로 처리했다. 그나마 마지막 근거는 비교적 구체성을 띠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 포착된 훈련이 도발 가능성을 높이는 수준의 특별함을 지니고 있는지 여부는 기사에 나오지 않을 뿐 아니라 역시 익명의 군 소식통이 전한 말이다.

비슷한 문제들을 안고 있는 북한 관련 기사가 최근 앞 다투어 쏟아졌다. 특이한 점은 ‘도발설’이 보도된 2월 11일 하루에만 ‘장교 소요사태’, ‘김정일의 7살 아들’, ‘ 천안함 사건 직전 중국에 통보’ 등의 보도가 집중적으로 나왔다. YTN이 보도하고 상당수 언론이 인용한 ‘장교 소요사태’ 기사에는 ‘동시다발적인 동요 포착’, ‘대청도, 소청도 상륙작전 첩보’ 등의 내용까지 포함돼 있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취재원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는다. 김정일에게 7살짜리 아들이 있다거나,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중국에 사전 통보했다는 국회의원의 얘기 또한 ‘중국의 대북 정보계통 고위 소식통’이라는 요란한 수식의 익명에 의존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사에는 ‘알려졌다’, ‘전해졌다’ 등의 표현이 난무한다. 진위를 확인할 길이 없다. 기사를 쓴 기자는 사실이라 확신할까?

위에 거론한 북한 관련 기사들이 모두 틀렸다고 볼 근거도 없다. 그러나 모두 틀렸을 수도 있거니와 상당 부분은 틀렸음이 분명하다. 어떤 언론은 ‘식량난으로 인한 북한군의 동계훈련 차질’(YTN)을 보도한 반면, 어떤 언론은 ‘김정일 생일에 맞춘 대대적인 행군’(SBS), ‘무력시위 통한 군사적 긴장 조성 우려’(KBS)를 보도했다. 중앙일보는 ‘해안포와 장사정포 훈련’을 ‘3월 위기설’의 근거로 제시했지만, 연합뉴스 등은 ‘예년 수준의 동계 훈련’이라고 보도했다. ‘장교 소요사태’와 관련해서도 YTN은 ‘합참이 비상대책회의까지 열었다’고 했지만, 동아일보는 청와대의 ‘사실무근’ 입장을 보도했다. 대체 누굴 믿으란 말인가?

언론계에는 북한에 관한 한 익명의 소식통, 관계자에 의존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인식이 있다. 흔히 취재원 보호를 내세우지만 사실 확인이 전제되지 않은 익명 처리는 취재원 이익 보장, 다시 말해 ‘소식통과의 밀월’에 불과하다. 일반적인 취재의 경우 제보를 받으면 제보자의 이해관계와 제보 내용의 사실관계를 파악한 뒤 보도 여부를 정한다. 그대로만 하라. ‘너한테만 말해줄게’라는 달콤한 속삭임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2011년 2월 16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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