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에 구제역대책특별위원회라는 기구가 있다. 위원장은 농림수산식품부 장관을 지낸 정운천 최고위원이 맡았다. 그는 구제역이 다음 달쯤 종식될 것이며 매몰지의 침출수로 인한 2차 오염 문제도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말해왔다. 국가적 재앙이라 할 만한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치고 너무 안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게 되지만, 전망의 문제이기 때문에 동의하지 못할지언정 욕할 일은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정운천 위원장은 한 발 더 나아갔다.

지난 17일 정운천 위원장은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농사를 20년 지어봐서 잘 안다'고 전제한 뒤 '구제역 침출수를 잘 활용하면 퇴비로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언이 아니었다. 그는 잇따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굉장히 효과가 좋다', '기술을 가진 회사들로부터 연락이 온다'는 등의 발언을 내놓으며 이른바 '침출수 퇴비'에 대한 소신을 거듭 확인했다. 급기야 18일 기자회견을 자청하여 '침출수 퇴비 활용 방안을 조만간 시연해 보이겠다'고 공언하기에 이른다.

정운천 위원장의 '침출수 퇴비' 발언은 빠른 속도로 알려졌다. 여론은 트위터 등을 통해 민감하게 반응했다. 이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일부 신문과 인터넷 매체가 이를 보도했을 뿐이다. TV방송과 대부분의 신문들은 철저히 외면했다. KBS, MBC, SBS 등은 발언이 나온 후 며칠 동안 어떠한 보도도 하지 않았고, 신문의 경우도 전혀 보도하지 않거나 뒷북 보도로 일관했다. 보도채널인 YTN도 단신 기사 하나 방송한 것이 전부였다.

언론이 '침출수 퇴비' 발언을 뉴스 가치 없다고 무시한 것은 아닐까? 구제역 주무 부처인 농림수산식품부의 전임 장관이었고, 현재 여당 구제역대책특위의 위원장을 맡고 있는 여당 최고위원의 발언이며, 가장 큰 이슈 중 하나인 구제역과 관련한, 그 중에서도 최근 부상하고 있는 2차 오염 문제와 관련한 발언이다. 주요 언론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무시할 대상이 아니다. 1회성 발언이나 실언이 아님을 발언자 스스로 거듭 확인한 터라 오히려 검증의 책무가 언론에 부여된 상황이다. 주요 언론으로 불리는 이들 매체들은 언론의 중요한 책무를 방기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구제역 침출수 문제에 대한 우려가 과장됐다는 인식을 드러내며 '(광우병과 같은) 괴담이 돌지 않도록 과학적으로 증명하라'고 당국자들에게 지시했다. 정운천 위원장 주장대로 침출수로 퇴비를 만들 수 있다면 대통령이 말한 '과학적 증명'에 딱 들어맞는 사례가 될 수 있다. 그것으로 막을 수 있는 침출수 위험이 극히 제한적이더라도 세간의 우려가 과장 되었다고 여론전을 하기에는 더 없이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다. 침출수 오염 차단에 도움이 되는 방안이라면 있는 그대로 평가하면 그뿐이다. 그러나 경제성도, 현실성도 없는 상황에서 눈속임 또는 억지 시연이라도 한다면 지금의 주요 언론이 제대로 짚어낼 수 있을까?

2011년 2월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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