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에 살면 9시 뉴스 만날 봐도 세상 돌아가는 걸 알수 없다.” 지난 2월 22일 YTN 공정방송 투쟁 1,000일을 맞아 열린 토론회에서 나온 얘기다. 발언자는 MBC PD수첩의 최승호 PD였다. 그가 한 말의 취지는 다음 발언에서 좀더 구체화 된다. “9시뉴스에서 중요한 기사가 30분 이후에 배치되면 지방에서는 못 본다.”

MBC와 KBS의 간판 뉴스인 9시뉴스는 30분을 전후하여 각 지역 방송국의 자체 뉴스로 바뀐다. 9시뉴스는 계속 이어지지만 앵커가 바뀌고 내용도 달라진다. 수도권 시청자들만 서울 본사의 뉴스를 끝까지 볼수 있다. 지역의 관심사를 언론이 제대로 조명하자는 취지이며, 지방분권의 가치에 부합하는 방송 방식으로 이해된다. 문제는 악용에 있다. 최승호 PD의 발언은 지역별 뉴스가 나가는 시간대, 즉 30분 이후에 민감한 기사를 배치하여 해당 기사의 파급력을 최소화하는 불순한 의도를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그러할까? 최 PD 발언 당일부터 5일 간 MBC 9시뉴스를 분석한 결과 놀랍게도 하루의 예외도 없이 정부에 부담이 갈만한 기사는 대부분 지역 자체 방송 시간에 배치되었음을 확인했다. 22일에는 ‘이상득 정계 은퇴 요구’, ‘구제역 방역 주먹구구’, ‘정부의 로스쿨 출신 검사 채용 방침 반발 확산’ 등의 기사가 30분 이후로 밀렸다. 23일에는 ‘국정원 절도 사건 관건인 열쇠 수사 손놓은 경찰’, ‘대법관 후보자 다운계약서 시인’ 등이 그랬고, 24일에는 ‘한-EU FTA협정문 숫자 오류 망신’, ‘그림로비 한상률 귀국’, ‘국회 대정부질문 구제역 공방’ 등이 뒤로 빠졌다. 25일 ‘이명박 대통령 집권 3년의 소통 부족’을 다룬 심층 보도 역시 수도권 시청자들만 볼수 있었다. 26일에도 이슬람채권법과 관련한 조용기 목사의 ‘대통령 하야 운동 불사’ 기사가 지방에는 전해지지 않았다. 최 PD는 ‘헤드라인(뉴스 앞부분에 짧게 소개되는 주요뉴스)에는 나왔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해당 기사가 보도되지 않아 항의하는 지방 시청자들이 많다’고 했다. 위의 사례 중에서는 ‘대통령 하야 운동 발언’, ‘그림로비 한상률 귀국’, ‘로스쿨 검사 방침 반발’이 헤드라인에까지 포함되고도 순서가 뒤로 밀리는 바람에 지방에는 방송되지 않은 기사들이다.

KBS 9시뉴스에서는 유사 사례를 찾기 어려웠다. 그러나 MBC가 뒷부분에서나마 다룬 주요 뉴스를 KBS 9시뉴스는 아예 빼버렸다. 조용기 목사의 ‘대통령 하야 운동 발언’이 그렇고, ‘한-EU FTA 협정문 오류 망신’이 그러하다. ‘로스쿨 검사 채용 반발’과 ‘대법관 후보자 다운계약서 시인’ 기사도 KBS 9시뉴스는 다루지 않았다. 이렇게 빠진 기사들 중 일부는 다음날 아침 뉴스에 포함되었다. 정부에 불리한 기사는 취재와 제작을 하더라도 9시뉴스에 포함되기가 쉽지 않다는 반증이다. 지방 또는 농촌의 9시뉴스 시청률이 수도권이나 도시에 비해 높다는 점에서, 민감한 기사의 9시뉴스 배제는 MBC와 마찬가지로 지방 시청자 홀대로 이어질 수 있다.

보도 매체가 다양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KBS와 MBC가 구축하고 있는 9시뉴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두 방송사의 9시뉴스 시청률을 합산하면 30%에 달한다. 이처럼 막강항 9시뉴스가 지방의 소외감을 부추기고 있다. “지방에 살면 9시 뉴스 만날 봐도 세상 돌아가는 걸 알수 없다.” 근거 없는 푸념이 아니었다.

2011년 3월 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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