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실위 보고서]


일본 대지진 특보가 한창이던 지난 13일 KBS와 YTN 등이 UAE를 방문 중이던 이명박 대통령의 회견을 생중계했다. UAE와 사상 최대 규모의 유전개발에 합의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거의 모든 언론이 이 내용을 보도했다. 찬양 일색이었다.

UAE 유전에 관한 거의 모든 언론 보도는 받아쓰기에 충실했다. ‘사상 최대 유전개발’, ‘꿈의 지역 진출’이라는 표현부터 세세한 수치까지 정부와 대통령의 말을 그대로 방송에, 지면에 옮겼다. 양해각서(MOU)라는 구속력 없는 합의임에도 언론은 최소 10억배럴 이상의 유전개발권이 이미 확보된 듯 보도했고, 내년에 본계약을 체결할 예정이라는 대통령의 말에 토 달지 않았다.

한 신문 사설은 본계약 체결이 순탄하리라 전망했다.(동아일보 14일자) 대통령 말대로 내년에 본계약이 체결되기 위해서는 2014년 이후 계약이 만료되는 외국사의 계약 연장 협상이 내년 중에 조기 결렬되어야 하고, 그 이후에나 시작될 수 있는 우리의 본계약 협상이 내년 중에 조기 타결되어야 한다. 외국의 거대 석유기업이 재계약을 포기해야 하는 조건이라면 과연 본계약이 체결된들 우리에게 어떤 이익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아무리 봐도 열쇠는 UAE가 쥔 형국인데, 김칫국은 벌써 동났다.

허점을 간파당할까 두려웠는지 정부는 UAE 정부와 왕실의 보증을 내세웠고 언론은 이 역시 충실히 전했다. 이 대통령이 UAE 왕세자와 하룻밤 비밀 일정을 보냈다느니(중앙일보 15일자), 낙타고기를 대접받았다느니 하며 각별한 관계를 강조하는 보도는 정부의 보증 논리를 강화했다. 그러나 보증의 실체와 효력은 어느 보도에도 나오지 않았다. 쉽게 말해 UAE에 계속 잘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언론의 낯 뜨거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대통령의 결단과 역할을 치켜세우는 보도에 너나 없었다. 13일 연합뉴스의 <이 대통령 유전개발 발표 전 일본 국민 위로 눈길>이라는 보도는 과시욕에 빠진 대통령의 인상을 차단하려는 배려가 엿보여 눈길을 끌었다. 16일 머니투데이의 <UAE만 가면 힘 내는 MB…CEO대통령 장점 발휘>라는 기사에서는 할 말을 잃는다. ‘마음을 사는 CEO대통령’, ‘UAE는 이 대통령과 한국에 축복의 땅’ 등이 추임새라면 “CEO 출신 대통령을 뽑은 우리 국민들이 그 혜택을 톡톡히 누리고 있다”는 대목은 절정이다.

UAE 유전 개발 합의는 있는 그대로 평가하면 그만이다. “정부가 UAE 대형 유전에 대한 광권이 2014년부터 다수 종료되는 시점을 일찍이 파악하고, UAE에 동반자적 미래 성장전략을 제안한 것은 윈-윈(WIN-WIN)의 핵심을 짚은 전략’(매일경제 18일자)이었다는 평가에는 틈이 안 보인다. 문제는 내용을 부풀리고 대통령을 띄우려는 불순한 시도에 있다.

지식경제부는 대통령 회견이 있던 날 이미 ‘UAE 합의’의 실체를 고백했다. 13일 연합뉴스가 송고한 지경부 브리핑 문답에는 대형 유전 관련 양해각서가 배타적인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아니며, 계약 만료되는 기존 외국사가 유리한 조건을 제시한다면 당연히 재계약이 되어 우리에겐 차례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설명이 들어 있다. 이를 이데일리가 기사화했다. 이밖에 “계약이 부실했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고백을 14일 내일신문이 보도했고, 16일 한국일보는 합의 내용의 허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며 실제 개발이 이뤄질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러한 보도들은 워낙 예외적이어서 존재감을 갖기 어려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본에서 큰 사건이 일어나 우리가 (UAE유전 합의의 의미를) 아직 인식 못하고 있다”고 했다지만(미디어오늘 17일자), UAE 유전 합의의 진짜 의미는 일본 대지진이 아니라 MB어천가에 묻히고 말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 보고서는 <미디어오늘>에 매주 게재됩니다.
이번 보고서는 2011년 3월 23일(수)자에 게재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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