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제가 노리는 것은 무엇인가

하종강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연봉제의 의미>
사전적인 의미에서 연봉제는 '일년 단위로 임금의 총액을 정하여 지급하는 방식'이다. 이런 구분으로 보면 시급제, 일급제, 월급제 등과 같은 연봉제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연봉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노동자 개인 능력이나 성과에 대한 평가를 임금에 반영하여, △이를 연단위의 개별 계약으로 확정하는 임금제도'이기 때문이다.
90년대 초반부터 경총 등에서는 이른바 '신인사제도'의 도입을 주장하였고, 이의 핵심은 직능급이었다. 다시 말해 개인별 능력과 회사에 대한 충성도를 평가하여 임금에 반영한다는 것이다. 연봉제주장의 핵심 이유는 두말할 것도 없이 임금에 있어서 주도권을 행사하기 위한 것이다.
전통적으로 자본은 임금과 관련하여 두가지 전략을 구사한다. 하나는 전체적인 인건비를 줄이는 것이다. 임금억제, 동결, 삭감 등이 해당된다. 다른 하나는 임금제도를 생산성 향상, 노동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려는 것이다. 직능급·연봉제의 도입은 이와 맥락을 같이한다.

<연봉제의 문제점>
첫째는 개인별 임금 차등으로 노동통제가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개별 노동자는 연봉제를 고리로 회사측에 종속된다. 임금 차별화에 따른 노동자 내부의 경쟁 강화는 동료를 '밟고 올라가야 할 대상'으로 만들어 작업장의 비인간화를 부추기고 협력과 팀웍을 파괴해 장기적으로는 업무 능률을 낮춘다.
둘째는 평가의 일방성 및 주관성이다. 현실적으로 노동자의 능력이나 성과를 평가하는 주체는 사용자다. 주관적이고 불공정한 평가는 물론, 이것이 아무리 객관적이고 공정한 외양을 갖춘다 하더라도 사용자가 평가의 칼자루를 쥐고 있는 이상 연봉제는 사용자의 뜻대로 운영될 수밖에 없다.
셋째는 개별 계약으로 노동조합의 존재 의의가 부정된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사용자와 일대일 계약을 맺는다면 그 결과는 뻔하다. 개별 임금 계약은 노동조합의 무력화를 넘어 헌법에 보장된 노동자의 기본적인 권리 보장을 불가능하게 하는 퇴보이다.
넷째는 임금 삭감, 정리 해고의 보조 수단으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연봉제가 IMF 상황 이후 사용자들에게 선풍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직접적인 이유는 인건비 삭감, 정리해고 보조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임금 삭감 폭이 큰 노동자에게는 연봉제가 무언의 정리해고 압력으로 작용한다.
다섯째는 점차 증액형에서 감액형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연봉제는 처음에 '일을 더 잘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대우를 하기 위한 방법'이라는 가면을 쓰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예를 보면 모두 2-3년이 지난 후에는 '일을 더 못하는 사람에게 불이익한 대우를 하기 위한 방법'으로 변질되었다는 점을 명심하자.
여섯째는 노동자의 일터가 생존 경쟁으로 인해 비인간화한다는 것이다. 연봉제가 도입되면 모든 노동자들은 서로 경쟁자가 될 수밖에 없다. 서로 자신의 연봉을 비밀로 한 채 어제의 동지가 오늘은 적이 될 수도 있다. 실제로 연봉제가 도입된 사업장의 노동자들은 그러한 괴로움을 심각하게 토로하고 있다.
일곱째는 노동의 질이 저하된다. 단기성과 위주의 업무처리가 일상화되면서 노동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공공부문에서는 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기 쉽다. 병원의 경우 과잉진료, 고가진료로 그 피해는 결국 소비자인 국민들이 입게 된다.

이같은 이유들로 임금억제와 노동자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되는 연봉제에 대해 노동조합은 당연히 반대하고 저지해야 한다. 연봉제가 관리직이나 비조합원을 중심으로 도입될 때에도 노동조합은 단체협약의 일반적 구속력 문제를 근거로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연봉제로 인한 가장 나쁜 결과는 노동자 개인과 사용자가 일대일로 관계함으로써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집단적 대응력을 상실한다는 것이다. 교섭력을 지키기 위해 노동조합은 그야말로 '사활을 걸고' 연봉제 도입에 맞서야 할 때이다.


/ 언론노보 278호(2000.4.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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