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에서 - 정미정 KBS아나운서


여성노동자, 주변에서 중심으로


경제적 불평등의 철폐와 사회의 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오랫동안 투쟁해온 노동조합의 활동은 여성노동자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비록 현실적으로 실질적인 평등을 보장하기엔 아직 미흡하나, 단체협약이나 노사합의로 보장한 제반 복지혜택은 여성이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가고 있다.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야간근로금지, 남녀간 임금격차해소 등의 조치 등 전리품들은 노동조합의 투쟁의 산물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우리 여성들이 잔치도 하기 전에 잔칫상을 물려야하는 현실에 놓여있다. 신자유주의와 철학 없는 효율성만을 외쳐대는 초국적 자본들은 노동의 비인간화와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목청 높여 외치고 있다. 자본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드는데 비해 노동이 국경을 넘기엔 터무니없이 어려운 현실에서 보면 이 게임은 처음부터 불공정하다.
그러나 불행히도 도도히 밀려오는 자본의 공세에 맞설만한 노동자 세력의 연대는 먼 얘기였고, 투쟁은 역부족이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이 불공정한 게임의 최초 피해자는 노동시장의 주변부를 형성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될 것이다. 실제로 지난 IMF 이후로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말도 되지 않는 '난파선에서 살아남기' 이론에서 수많은 가장들을 살린다는 명목으로 직장을 떠나야했다. 금융노련 산하 여성노동자들이 최대피해자였고 아마도 그 파고는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인정되는 언론노련의 여성노동자들에게도 거세게 몰아칠 것임이 틀림없다. 끊임없이 이윤을 쫓아가는 규모의 경제화가 가속화되는 현재의 환경에서 사용자들은 여성노동자들을 고용함으로써 부담해야할 육아비용을 포함한 복지비용을 덜어보고자 할 것이다. 현재 언론노련 여성노동자들은 전문직과 그밖에 다양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사무직 여성들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특히 비전문직 여성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눈에 띄게 약화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노동시장의 약한 고리인 이들의 고용형태를 달리하거나, 연봉제를 도입하는 것은 전체 노동판의 구조를 뒤흔들어 놓고자하는 시작이므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같은 노동자연 하지만, 우리 가운데서도 누군가 바로 '나'가 아니라면 괜찮다는 생각들이 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 여성노동자들의 노동조합 활동 또한 두드러지지 않다. 숫적으로도 그렇고 조합 내에서의 이슈파이팅도 좀처럼 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그 이유 중 한가지로 여성노동자들의 고용형태가 지나치게 복잡다단하다는 것이다. 또 사회화 경험이 적은 여성들에게 조직활동이란 낯설었을 것이고, 노동조합 내에서의 여성간부의 위상도 재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또 실질적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마련된 잠정적 우대조처 마저도 역차별 논리로 몰이해 되는 것을 보면 우리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은 그리 녹녹치 않다. 나는 언론에 종사하는 여성노동자들이 이제는 스스로의 조그마한 문제와 관심들을 주머니 속에 감추지 말고, 과감히 정치화해서 관철해내려는 노력들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성의 특수한 관심사를 중심으로 이끌어내고, 나아가 많은 여성들과 공감을 나눌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갈 때 노동운동의 대중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제는 우리가 더 이상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로 연대의 명분을 얻기보단 언론 노동자로서 우리가 가야 할 '큰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조직의 핵심역량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 언론노보 278호(2000.4.5.) 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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