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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함께 먹고 살자 '노동절 맛'을 느끼다
123주년 노동절 참가기
[0호] 2013년 05월 14일 (화) 12:00:25 이선필 언론노조 오마이뉴스지부 조합원 media@media.nodong.org
"오빠~ 일어나 아침이야. 잇힝!" 이 소리가 아닙니다.
"메이데이! 메이데이!"(불어로 m'aidez, '도움을 달라'라는 뜻, 조난 신호로 사용됨) 비슷하지만 이 소리도 아닙니다.
마치 금요일 같았던 지난 4월 30일을 보낸 5월 1일 아침. 귀에서 환청이 들립니다. '5월 1일은 노동절, 노조원들은 YTN 본사 앞에서 오후 2시까지 모이기 바람, 바람, 바람!'
눈에서 좀처럼 떨어지려 하지 않는 눈곱을 떼어내고 서울역 YTN 본사 앞으로 달려갔습니다. 물론, 걸어가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약속 시간에 늦었기 때문이었죠. 그렇습니다. 5월 1일은 전 세계 노동자들을 위한 날, 바로 노동절(메이데이) 123주기였습니다.

첫 번째 맛, 잊고 있었던 바로 그 '손맛’

   
약속 시각에 20분가량 늦었지만 YTN 본사 앞에서는 반가운 얼굴이 격하게 반겨줬습니다. 바로 전국언론노조 오마이뉴스지부 소속 이정환 지부장 이하 이경태 사무국장, 김지현 조합원이었죠. 그들 얼굴에도 붙어있을 눈곱을 찾다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익숙한 언론사들의 깃발이 보입니다. 어림잡아 200명 정도는 모인 듯.

대오를 갖추고, 구호도 외치고, 얼굴엔 손바닥만 한 '낙하산 인사 반대' 도장도 '나 혼자만' 찍고(찍어주셨던 분이 '혹시 아나운서세요?'라고 말해주었다는 사실에 위안을 얻습니다. 역시 오마이뉴스의 얼굴!) 익숙한 얼굴들과 인사도 나눴죠.

시청 광장에 모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본대로 합류하기 위해 언론인들도 움직였습니다. 서울역을 뒤로 하고 명동을 지나며 조합원 선배들, 동지들의 과거사(?)도 엿듣습니다. 지나다 보니 2008년 광우병 쇠고기 시위 당시 헤집고 다녔던 거리도 보였네요. 선배들 역시 당시의 기억을 한 조각씩 떼어내 '썰'을 풉니다. 그땐 그랬던 우리가 이렇게 2013년 한 직장에서 모일 줄이야.

김지현 조합원이 열심히 들고 있던 기를 넘겨받아 들어봤습니다. 휘릭! 거센 바람에 여러 방향으로 유연하게 몸을 비트는 깃대. 자세히 보니 '반도' 낚싯대더군요. 바람의 진동이 그대로 느껴지는 이 손맛!

그러고 보니 몸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대학교 등록금과 취업난 사이에 갇혀 갈 곳을 잃어버린 1980년 이후 세대. 민주화 운동도 치열했던 운동권 투쟁의 기억도 없었지만, PVC 파이프에 급조한 깃발을 달고 "정권 타도"를 서툴게 외치며 시청 부근을 누볐던 거리의 기억이 몸에 담겨있었던 거죠. 바람에 휘청이는 깃대의 맛이 새삼스러웠습니다.

시청에서 어느새 구영식, 박소희, 홍현진, 최지용 조합원과 조우했습니다. 참, 박혜경 조합원은 거리 행진 도중에 합류했고요! 회사에서도 마주치기 힘든 얼굴을 현장서 보니 더 신나고 반갑더군요. 물론 '포커페이스'인 전 겉으로 격한 표현을 하진 못했습니다. 눈빛만 보아도 선배·후배들은 이 마음을 다 알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는 전 '시크한' 서울 남자였습니다.

두 번째 맛, 집단으로 들이키는 시원한 막걸리 맛

이실직고 합니다. 이날 언론노조 오마이뉴스지부는 땡땡이를 쳤습니다. 시청 광장 무대 위에선 진행자가 목이 터져라 외치며 참가자들은 온갖 퍼포먼스를 펼치며 노동절의 의미를 한껏 고취시키고 있었지만 9명의 오마이뉴스 조합원들은 인사동의 한 막걸리 집으로 '고고씽, 씽씽고!' 했다죠.

그래도 할 말은 있습니다! 해직 언론인 복직을 위한 연대도 좋고, 언론 자유 사수를 위한 투쟁도 좋습니다. 위원장 선출에 실패한 민주노총의 뒤떨어지는 문제의식에 대한 비판도 좋습니다. 허나 그보다 중요한 건 힘들면 어깨를 빌려주며, 서로의 고민을 터놓고 얘기할 '동지'들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향한 곳은 오리엔탈 요리주점 '아라'. 정체불명의 인테리어를 한 가게였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곳은 오마이뉴스가 광화문에 있었을 당시 직원들이 자주 찾았던 술집의 사장님이 새롭게 차린 집이라고 합니다.

   

주종은 막걸리였습니다. 꼬치에서 파전, 데리야끼 누들 등 각종 음식을 섭렵하면서 우린 많은 대화를 나눴습니다. 솔직히 1인당 두 병 이상의 막걸리를 마셨기에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잘 기억나질 않습니다. 기억나는 건 즐거웠던 분위기 그리고 함께 마시는 서울 장수 막걸리가 그렇게 달고 시원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죠.

참, 이날의 특별 손님은 바로 구영식 선배의 가족이었습니다. 특히 현재 초등학교 5학년에 재학 중인 구아림 '화백'의 연작시리즈가 눈길을 끌었죠. '한 번 본 대상은 놓치지 않고 그 특징을 잡아내 단숨에 그린다'는 구아림 화백의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현장에서 슈슉! 하고 단숨에 그려내는 그림들이 아주 일품이었습니다. 고인이 되신 EBS의 스타 화가 밥 로스(Bob Ross) 형님이 환생한 건 아닌가 하는 착각까지 들게 했습니다.

대화 주제는 중구난방이었지만 무르익었던 분위기는 좀처럼 내려올 줄 몰랐다는 후문입니다. 오후 4시 무렵 시작한 낮술이 어느덧 자정까지 이르렀으니 말이죠. 물론 도중에 사정이 있어 가시는 조합원을 억지로 붙잡진 않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진보 매체잖아요! 유훗.

아무래도 사람은 사람으로 힘을 얻는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갈수록 파편화되고 고립되기 일쑤인 사회생활입니다. 매번 좋을 수는 없다지만 어려울 때 귀와 어깨를 빌려줄 동지가 있다는 사실은 마치 100세까지 보장되는 든든한 보험 하나에 가입한 기분마저 들게 하네요(이순재 선생의 목소리가 들리는 환청이...). 여하튼 보험은 갱신이 있지만 끈끈한 선·후배 동지 사이엔 갱신이 없잖아요!

메이데이를 두고 근로자의 날이니 노동절이니 하는 논란은 사실 두 번째입니다. 내 주변에 마음 터놓을 같은 회사 동지의 유무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들의 존재 유무가 바로 진정한 노동절의 의미를 빛내는 주요 요소가 아닌가 합니다.

고단하고 힘든 '노동'이라지만, 먹고 살기 위해 일을 한다지만, 이 생각에 '같이'라는 말을 붙여보길 권합니다. '같이 잘 먹고 잘 살자.' 123년 노동절을 맞은 오마이뉴스의 얼굴인 제 감상입니다. 다음엔 노동절이 아닌 번개 모임에서 더욱 많은 분들과 얼굴 도장을 함께 찍으면 좋겠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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