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주년 노동절 참가기

 

5월1일, 노동절이다. 흔히 노동자들의 생일이자 축제라고 한다. 갑자기 의문이 생긴다. 나는 지금 노동자일까 아닐까? 일터에서 쫓겨나 ‘노동의 권리’를 빼앗겼으니 ‘노동자’라 하기도 뭐하지만, 내 스스로 그만둔 게 아니고 ‘노동에 대한 의지’가 강하니 ‘노동자’가 아니라 하기도 뭐하다.

 

언론노조가 올해 노동절 사전 집회로, YTN 앞에서 해직 언론인 복직 촉구 결의대회를 갖는다. 내가 청춘을 바쳤던 회사는 나를 내쫓았고 5년째 돌아가지 못하도록 집요하게 방해하고 있데, 오히려 이들은 나를 YTN에 돌아가도록 염원하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이다. 이 사람들이 내게 원하는 것은 단순히 내가 일자리를 갖는 게 아니라, YTN에 돌아가서 뉴스를 보다 공정하게 제대로 하라는 것일 게다. 5월1일 노동절 집회에 이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오늘 집회에는 반드시 나가야 한다.  
 

남대문 앞 YTN 사옥, 반가운 얼굴들이 많다. 예전에는 현장에서 경쟁했던 타사 선후배들이 오늘은 뜻을 같이 하는 동료로 YTN 앞에 와 있다. 국무총리실을 함께 출입했던 KBS 이경호 기자도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으로 참석해 있다. 내 기억으로는 조용하고 차분했던 사람이 지금 얼마나 어깨가 무거울까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YTN 앞 촛불집회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공정방송 투쟁을 하게 만든 시민들과도 오랜만에 인사를 나눈다.

반가운 것은 사람뿐 만이 아니다. 낙하산 반대 마크도 정말 오랜만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과거에는 이 낙하산 반대 마크가 피켓이나 배지에 그려져 있었는데, 오늘은 사람들의 얼굴에 찍혀 있다. 내 신념과 열정을 바친 YTN 공정방송 투쟁의 상징이기에 반가웠지만, 얼굴에 커다랗게 도장처럼 찍으니 생뚱맞기도 하다. 고민스럽다. ‘나도 저 마크를 얼굴에 찍어야 하나?’, ‘최대한 안 찍고 버텨보자’ 마음먹었다.

그러나 얼마 가지 못했다. 대부분의 참석자들이 찍고, 심지어 참석자들의 가족들까지 뺨에 찍는 마당에 정작 당사자인 우리가 안 찍을 수는 없는 일이다. 언론노조에 계신 분은 내 뺨에 정성스레 마크를 찍더니 아주 잘 찍혔다고 흡족해 한다. ‘이런 사소한 일로도 내가 남에게 기쁨을 주는구나…’ 나도 덩달아 기쁘다. YTN 조합원들이 앞을 다퉈 얼굴에 찍는다. 근무 중인 조합원들은 어쩔 수 없이 손등에 찍는다. 서로서로 잘 찍혔다며 웃고 떠드는 사이 집회가 시작된다.

반가운 마크와 얼굴들과는 반대로 여전히 돌아오지 못하는 것도 있다. 바로 ‘돌발영상’이다. 어제(4월30일)가 돌발영상 탄생 10주년이었다. 그렇지만 회사는 아무런 말도 없이 조용히 넘어갔고, 노조원들만이 조촐한 자축 파티를 가졌다. YTN을 몰라도 돌발영상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오히려 YTN보다 더 유명했던 ‘돌발영상’. 그러나 배석규 씨는 돌발영상을 무력화시키는 등 정권의 눈에 ‘이쁜 짓’만 골라서 한 공로로 사장 자리를 꿰찼다. 내 마음이 이럴진대 돌발영상을 직접 만든 노종면, 임장혁, 정유신의 마음은 어떨까?

YTN 앞 집회가 끝나고 시청광장으로 이동했다. 덕수궁 대한문 앞에 쌍용자동차 농성장이 있다. 동병상련일 것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외쳤던 구호 ‘해고는 살인이다’가 그토록 가슴에 와 닿을 수 없다. 직접 그 상황이 돼 봐야만 이렇게 느끼다니 나도 참 이기적인 인간인가 보다. 나도 빨리 제자리로 돌아가고 싶지만, 저들도 하루빨리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할텐데...당사자들보다도 가족들의 고통이 더 심하리란 생각에 가슴이 먹먹하다.


노동자들의 생일이자 축제인 노동절이라지만, 축제라고 하기엔 슬픔이 너무 많다. 내년 노동절에는 지금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 모두가 활짝 웃는 얼굴로 정말 축제다운 축제를 즐겼으면 좋겠다. 또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이 부활한 돌발영상을 보면서 통쾌한 카타르시스를 느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현장을 내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생생하게 중계방송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