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언론산별노조
<1> 우리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21세기 자본 20세기 노동
기업별 노조의 끝은 '벼랑'


노조전임자 임금 가장 큰 문제
연봉계약제·성과급 거센 공격
직종간 이기주의로 와해 직면


세계화, 신자유주의, IMF, 인터넷, 벤처. 알 듯 모를 듯 보일 듯 말 듯 우리를 억누르는 이데올로깁니다. 그게 뭐 별 거냐고 초연해하기도 하지만 금세 헤어날 수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들은 첩첩산중이나 무인도뿐 아니라 지옥까지 쫓아올 것입니다. 이들이 사람 사이의 연대, 공동체, 질서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들의 흐름이 인류가 보편적으로 추구하는 평등, 박애와 정반대라는데 있습니다. 이 흐름을 바꿔야 합니다. 누가? NGO와 노동조합이 바꿉니다. 세상은 언제나, 자본은 빨랐고 노동은 느렸지만, 자본의 일방독주는 오래 가지 않을 것입니다.

기업별노조는 낡은 틀입니다. IMF는 숱한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했지만 반면교사의 역할도 했습니다. 특히 노동조합에게는 그렇습니다. IMF를 거치면서 노사관계는 혁명적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연봉제, 분사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고 스톡옵션을 경쟁적으로 도입하고 있습니다. 노동문제의 성격 또한 실업과 고용, 사회복지, 직업훈련과 재교육, 조세개혁 등이 주요한 문제로 부각되었습니다. 기업 단위의 노조가 이런 문제를 다룰 실력이 있습니까. 자본이 빛의 속도로 변하고 있는데 노동은 바뀌지 않는다면 그 답은 자명합니다.

임금체계 하나만 생각해봅시다. 한국의 기업별노조를 지탱해왔던 임금체계는 연공서열, 단일호봉제였습니다. 연봉제, 성과급, 스톡옵션. 자본의 공격이 문제가 아니라 산업별, 노동자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다양한 임금체계가 시도되고 있으며 연구되고 있습니다. 임금체계의 변화는 세상의 변화, 다름 아닌 지식정보산업으로 바뀌면서 함께 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이것은 노동문제의 처음이자 끝일 수도 있는 내용입니다. 기업별노조는 '연봉제를 반대한다' 이상의 논리나 대안이 없습니다. 각개격파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전체 노동조합 차원에서 대책을 수립하고 대안을 내놓을 때 피해를 최대한 줄일 수 있습니다.

기업별노조의 폐해는 많습니다. 특정 사업장 정규직만의 이익을 대변함으로써 중소영세사업장 노동자나 비정규직 노동자는 상대적으로 방치되고, 그 결과 노동자간 분할에 이용되어 결국은 전체 노동자의 단결을 저해한다는 점, 조직확대에 결정적으로 불리한 조직형태인 점, 재정과 인적 자원이 수천 개의 노조로 분산되어 국가적인 비효율과 낭비를 초래하고 있다는 점 등이 노동운동가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주장하는 내용들입니다. 다 맞습니다. 그리고 굉장히 중요한 내용들입니다. 고민해보길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기업단위 노조의 간부나 조합원들에게 이는 공자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현실적인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입니다. 이 역시 조합원들은 별로 관심 없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노조가 있는 게 좋습니까, 없어도 관계 없습니까. 있는 게 좋습니다. 평소에 잘 몰라도 결정적인 문제가 닥쳤을 때는 자기가 낸 조합비의 수 백배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노조전임자 임금을 회사가 안 주게 되면 살아남을 노조는 몇 개 없습니다. 정부안대로 노사자율로 결정되어도 오십보백보입니다. 기업별노조는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다만, 산별노조로 바꾸자고 하는 것은 '사람과 돈'을 중앙으로 집중해서 한 번 버텨보겠다는 얘기입니다.

복수노조 허용 문제도 못지 않습니다. 전임자 임금을 주지 않는 2002년부터 적용되는데, 이대로 있다간 많은 혼란과 갈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한 신문사 내에 기자노조, 윤전노조, 공무국노조가 따로 생길 수 있고, 그 결과 직종간 이기주의에 내몰릴 가능성이 큽니다. 더 큰 KBS나 현대자동차는 어떻겠습니까. 수십 개의 노조가 생겨날 수 있습니다. 파업가의 첫 소절은 '흩어지면 죽는다'입니다. 이 역시 산별노조로 단일화 했을때 그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습니다.
노동조합 운동의 원칙으로나 가까이 닥친 시급한 문제로나 그 해답은 산별노조입니다.


/ 언론노보 278호(2000.4.5.)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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