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이 정상회담에 합의했다는 발표가 나오자 지난 10일자 신문들은 엄청난 양의 기사를 쏟아냈다. 정부발표가 9일 오전에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음을 감안하면 가히 초인적이라 말할 정도이다(경향 10개면, 동아 15개면, 조선 10개면, 중앙 11개면, 한겨레 10개면, 한국 16개면). 주요 내용을 보면 회담성사 뒷 이야기, 의미-전망, 논의될 의제, 남북경협전망, 국내외 반응, 남북관계 일지 등을 망라해 보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물량에도 불구하고 분석적 접근이 매우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의미-전망과 국내외 반응은 과거 남북대화가 있을 때마다 반복되는 내용이며 경협전망 과 사업내용도 정부발표의 재탕인 경우가 많았다. 사회면 머리기사로 보도된 실향민 및 시민표정 역시 몇몇 사람의 코멘트를 모아 배열하는 식의 천편일률적인 기사였다.
일부 신문의 대담기사 또한 부실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왜 필요한가'와 '어떻게'가 빠진 채 '~될 듯'과 '~해야 한다'로 이어지는 맥없는 내용들이었다. 신문들은 남북회담에 임하는 정부를 향해 신중하고 치밀한 준비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작 신문 자신은 경쟁적으로 물량공세를 폄으로써 부실한 보도를 양산했다는 지적이다.
이날 신문들은 남북경협을 비중 있게 다루었다. 남북경협은 북한이 절실히 요구하고 있고 남한 또한 북한과의 협상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의제인 동시에 경제적 특수까지 기대되는 만큼 중요한 문제임에는 틀림없지만 재계의 환영 분위기나 주식시장에서의 경협 수혜주 따위를 정밀한 분석 없이 비중있게 다룬 것은 지나쳤다는 평가이다.
이와는 반대로 이산가족문제는 철저하게 소외되어 사설에서조차 언급된 경우가 많지 않고 해설기사는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지난 71년 이후 남북적십자회담만도 90여 차례 개최했을 할 만큼 중요한 현안인 이산가족 상봉문제를 이처럼 소홀히 한 것은 국민정서와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실제로 국정홍보처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들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해결해야 할 과제를 이산가족상봉 48%, 남북경협 20%, 냉전종식 17%의 순서로 꼽았다(문화일보). 신문들이 민족의 아픔을 치유하고 인도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인색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이번 보도에서 언론의 고질적 병폐중 하나인 선정성도 그대로 드러났다.
한국일보는 1면에 김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악수하는 사진을 합성해 메인사진으로 게재하는 파격을 선보였다.(대한매일 3면, 경향 5면, 동아6면). 사진설명으로 컴퓨터 그래픽임을 밝혔다고 하지만 이는 독자를 기만하고 뉴스의 정직성을 스스로 훼손하는 일이다. 신문의 신뢰성을 팔아 독자의 눈길을 사는 꼴인 것이다.
또한 동아일보는 6면에서 '김대통령-김위원장 저서 건강 주제로 환담'이라는 제목을 달아 남북정상회담을 가상현실로 꾸며 보도했다. 양국 정상의 신상명세와 스타일을 근거 삼아 마치 미래사회를 예측하는 소설을 쓰듯이 기사로 작성한 것이다. 이 역시 독자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을지 모르지만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하면 온당치 못한 보도였다.
끝으로 민실위는 북한인물의 호칭에 대해 제안을 한가지 하고자 한다.
지금까지 대부분의 신문들은 제목에서 북한정치인들의 호칭을 생략해 왔다. 국인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이유가 북한을 적성국가로 간주하기 때문인지 아니면 외국인으로 보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화해-협력의 시대'를 보도하는 지금 분위기에는 매우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이다. 향후 남북관계가 잘 풀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라도 기사의 제목을 달 때 북한정치인의 공식직함을 붙일 것을 제안한다.


2000. 4.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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