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연합이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을 철회하자 방송보도는 일제히 이 문제를 지적했다. 그러나 정작 새정치연합의 무공천이 ‘용납될 수 없는 악재’가 된 데에는 방송이 한몫했다. 대선 당시 박근혜, 문재인, 안철수 의원이 ‘기초선거 무공천’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배경에 대해서 제대로 설명하는 보도는 찾아보기 힘들었고, 새누리당의 약속 파기를 문제 삼는 보도도 없었다. 방송에서는 새정치연합의 무공천은 의미 없이 불리한 조건만 고집하는 안철수 공동대표의 아집으로만 비춰지도록 이 사안을 ‘부정적 논란거리’로 다뤘다.

■ MBC, 공영방송 맞나…새정치연합 무공천 철회에 감정담아 ‘융단 폭격’


방송들은 새정치연합이 무공천을 철회하자 안철수의 철수정치 운운하며 약속파기를 문제 삼았다. 게다가 새누리당의 비판의 목소리를 그대로 실어주는 데 급급했다. 그중 MBC의 보도태도는 매우 악의적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출범 당시에도 공동대표 인터뷰 이외에는 고작 한 꼭지만 보도한 MBC가 무공천 철회에 대해서는 톱보도로 무려 5꼭지나 관련내용을 할애한 것은 매우 의욕적인 배치였다.  문제는 이 내용이 거의 모두 새정치연합에 대한 비판적 태도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KBS는 <무공천 철회…‘현실론’, 국민 여론 뒤집어>(10일, 김기홍 기자)에서 “이로써 여야 모두 무공천 공약은 지키지 못하게 됐습니다”라고 기자멘트하고 기자도 “새정치민주연합이 결국 이상보다 현실을 택함으로써 여야 모두 지난 대선에서 내걸었던 기초공천 폐지 약속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라고 언급했다. SBS도 <다시 살아난 기호 2번…결국 양자대결>(10일, 정형택 기자)에서 “새누리당 야당도 기초 무공천 공약을 지키지 않게 됐다는 점에서 공약 불이행에 따른 정치적 부담은 어느 정도 벗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공약을 먼저 접은 쪽은 새누리당이라는 점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선거 결정이 가져올 파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습니다”라고 기자멘트했다.

그러나 MBC는 새누리당이 먼저 공약을 파기했다는 내용은 언급하지 않은 채 안철수 대표에 대한 폄하와 새정치민주연합 내의 갈등 강조, 여론조사 문구와 오차 범위 등에 대한 비판, 새누리당의 공격성 발언에 대한 여과 없는 소개만 담았다.

■ 개그콘서트 같은 말장난 ‘안철수의 철수’
안철수의 철수라는 이름을 가지고 말장난을 이어간 보도도 많았다. 새누리당은 이번 사안에 대해 비판하면서 주로 안철수의 무공천 번복에 대한 비판이 아닌, 안철수의 철수를 강조했다.

TV조선은 <“새정치 끝나…安 책.임”>(10일, 신정훈 기자)에서 앵커가 지적했듯이 “새누리당은 ‘정계 은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안철수 공동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그러나 기초 선거 무공천 번복 자체에 대해선 비난 수위를 조절”했다. 앵커는 이에 대해서 “자신들도 그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방송보도는 이와 같은 새누리당의 대응전략에 따라 ‘철수 놀리기’에 몰두했다.

 

채널A <여의도 24시/새정치연합, ‘무공천’ 논란 출구 전략은?>(7일, 이남희 기자)

정치부 이남희 기자 “만약 안 대표가 이것마저도 자신의 입장을 철회한다면 이제 안철수라는 이름이 철수정치의 대명사가 될 지도 모르니까요”

TV조선 <현실정치 벽에…또 번복> (8일, 서주민 기자)

앵커멘트 “이렇게 되면서 안철수 공동 대표는 또 한번의 철수, 번복을 하게 됐습니다. 사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한민국 정치인 중에 자신의 입장과 한 말에서 철수하지 않고, 번복하지 않은 정치인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채널A <안철수 리더십 최대 고비>(8일, 송찬욱 기자)

기자멘트 “안 대표는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2012년 대선, 올해 새정치연합 독자신당 창당 등 정치적 고비마다 입장을 바꿔왔습니다. 그럴 때마다 새누리당과 보수세력들은 '안철수의 철수정치'라고 비판했습니다”

KBS <안철수 정치 역정 중대 기로>(9일, 김지선 기자)

기자멘트 “지난 2011년 정치에 입문한 뒤 중대 국면마다 돌아서는 이른바 '철수 정치'를 했다는 비판마저 나오는 상황.정치 입문 3년이 안돼 제 1야당의 대표까지 올랐지만 안대표의 정치 역정이 또다시 중대 기로에 섰습니다”

SBS <‘무공천’ 오늘 밤 판가름.. 기로에 선 안>(9일, 진송민 기자)

앵커멘트 “후보 자리를 두 번 포기한 데 이어서 독자 신당을 추진하다가 접었고 또 새정치의 상징으로 내세웠던 기초 공천 폐지 방침마저 여론과 당원의 뜻을 물어서 다시 결정하기로 하면서 자기 이름처럼 철수만 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습니다”

MBC <대국민 사과 정치적 타격>(10일, 현원섭 기자 )

기자멘트 “서울시장 자리를 양보하고, 의문 속에 대선후보 자리를 사퇴했고, 독자신당을 추진한다고 했다가 기초선거 무공천을 고리로 입장을 번복해 합당한 뒤, '무공천 철회'까지. 정치적 고비 때마다 입장을 번복하면서 이른바 '철수 정치'를 한다는 비판까지 나왔습니다.”

SBS <“공약 못 지켜 죄송…선거 앞장서겠다”>(10일, 임찬종 기자 )

앵커멘트 “안 대표 측은 무공천 원칙의 번복이 철수만 네 번이라는 꼬리표로 남지 않을까 걱정하는 분위기입니다”

TV조선 <“새정치 끝나…安 책임”>(10일, 신정훈 기자)

녹취/ 정우택 기자 새누리당 최고위원 “간보기 정치에서 철수 정치의 전형을 보이는 것 같다”

채널A [여의도 24시/안철수, 7시간 장고…충격 받았나?(10일)

앵커멘트 “기호 2번은 살고, 약속은 죽었다. 안철수는 철수했고, 문재인은 돌아왔다. 오늘 여의도 정가에 떠돈 말들인데요.”

 방송보도들은 새누리당의 태도에 대한 지적에는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새누리당의 새정치연합에 대한 인신공격성 발언만을 부각시키고, 언론 스스로 ‘철수 정치’라고 놀리는 표현을 일삼았다.

■ 조중동문 ‘철수(撤收) 정치’ 비아냥 vs 한겨레 “청와대·여당 책임론”

조선‧중앙‧동아‧문화일보의 ‘안철수 때리기’가 절정에 달한 한주였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기초선거 무공천 철회’가 결정된 후 이를 전하는 10일, 11일자 네 신문의 제목은 이를 방증하고도 남았다.

11일자 동아일보 <安, 현실벽에 굴복>, 중앙일보 <기호 2번 얻고 새정치 잃다>, 조선일보 <상처입은 安…‘기호 2번’ 얻고 ‘새 정치’ 잃다>, 10일자 문화일보 <치명적 내상 입은 安…지방선거 진두지휘할 수 있을까>가 바로 그것이다. 기사 내용은 더 자극적이다. 동아일보는 “‘기호 2번’은 살았지만 ‘약속 정치’는 죽었다”고 표현했고, 문화일보는 “안철수 대표가 정치입문 후 최대 위기에 몰리게 됐다”고 진단했다.

동아일보는 사설까지 동원해 “안철수 대표, 더 이상 ‘새정치’ 말하지 말라”고 윽박지르기도 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기초선거 무공천’은 야당이 홀로 책임질 사안이 아니다. 왜냐하면 ‘기초선거 무공천’은 지난 대선 때 여야 후보가 한목소리로 내건 공약이었고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이 먼저 약속을 파기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야당도 철회쪽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해서 온갖 비난의 화살을 야당 대표에게 쏘아대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9일자 조선일보의 사설은 이런 측면에서 악의적이다. 조선일보는 <결국 야당 내부 싸움 되고 만 ‘기초 不공천’ 문제>라는 제목의 사설에서 “안 대표가 ‘정치 생명’을 입에 올릴 지경까지 된 것은 애초에 공약 자체가 경솔한 것이기도 했지만, 야당이 문제를 정도 이상으로 키운 측면도 크다”고 말했다. 안철수 대표가 8일 기초선거 무공천 방침을 재검토하겠다고 밝히자 기다렸다는 듯이 <4번째 ‘철수(撤收) 정치’>라고 비꼬는 것도 정도가 지나쳤다. 9일자 조선,중앙,동아일보에는 안 대표의 이름을 빗대어 희화화하는 기사 제목이 나란히 실렸다. <安, 또 철수?/조선 9일자>, <無공천…安, 철수/동아 9일자>, <안철수 네 번째 ‘철수 정치’/중앙 9일자>가 그것이다.

야당의 무공천 철회를 두고 사실상 친노세력이 승리했다고 평가한 11일자 중앙일보나 안철수의 ‘개혁공천’이 민주계 기득권과 정면 충돌 할 것이라고 예상한 12일자 조선일보 기사는 상처난 곳에 소금을 뿌리는 ‘저주’에 가까운 기사였다.

△ 중앙일보 4월 11일자 박용석 만평

반면 무공천이 결정된 다음인 11일, <한겨레>는 1면 ‘돌고돌아 ‘기초 2번’… 여야 맞대결 구도로’ 제목의 기사에서 “새정치연합은 기초 공천을 결정하면서 불리한 경기 규칙으로 링 위에 오르는 ‘비정상적’인 상황은 모면하게 됐다”고 전하며, 야당의 결정으로 ‘이상한 선거’를 치르지 않게 됐다는 점을 먼저 지적했다. 그러나 “결국 새누리당과 마찬가지로 기초 무공천 공약을 지키지 않는 상황이 됐다”, “신당 창당의 주역인 안 대표에게 흠집이 나 그를 당의 얼굴로 내세워 선거를 치러보려는 새정치연합의 전략도 차질을 빚게 됐다”며 공천 결정의 문제점을 짚었다.

또 같은 날 사설에서 “여야 모두 공약 파기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먼저 공약을 파기해 혼선을 초래한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의 책임이 훨씬 무겁다”며 무공천 혼란의 주된 책임이 청와대·여당에 있다고 지적했다.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