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실종자 가족 방문’에 등장한 따뜻하고 단호한 리더십

진도 세월호 참사 이후 언론은 온통 세월호 관련된 소식으로 넘쳐났다. 그 와중에 우리 언론의 선정주의와 여러 가지 문제점이 고스란히 드러나 국민들의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한 주였다. 이런 상황에서 방송 메인뉴스에서는 사고 피해자 가족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을 지나치게 치켜세우거나 여전히 지지율이 높다는 식의 ‘감싸기 보도’를 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17일 언론들은 박대통령의 침몰사고 현장을 방문한 내용을 대서특필했다. 이날 유가족들은 불안과 분노로 격앙돼 거친 항의와 불만의 목소리를 표출했다. 그러나 방송사 중에서 이러한 현장의 분위기를 내보낸 방송은 JTBC정도였다.

KBS <구조 활동 독려…실종자 가족 위로>(17일, 송창언 기자)에서는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체육관에 들어서자 실종자 가족들의 오열이 더 커집니다. 곳곳에서 쇄도하는 질문에 일일이 답을 해줍니다.…가족들은 탑승자 명단 확인이 안 되는 등 불만사항들을 건의하자 박 대통령은 즉시 시정을 지시했고 가족들은 박수로 호응했습니다.”라고 멘트했다.

YTN <실종자 가족 위로…“책임질 사람 엄벌”>(17일, 김종균 기자)도 KBS와 비슷한 맥락으로 유가족의 불안과 불만보다는 박대통령에 대한 부각에 초점을 맞췄다. 보도에서는 기자가 “대통령의 말이 믿기지 않는 가족들에게는 직접 전화를 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라고 멘트한 뒤 “전화번호 주세요”라는 대통령 발언과 동시에 쏟아지는 환호와 박수를 담았다.

KBS와 YTN 보도만 접한다면, 이날 실종자 가족들은 대통령의 빠른 선처에 호응했으며 대통령의 지시사항에 환호했다.



채널A와 TV조선은 아예 노골적으로 박대통령의 행동을 칭찬했다.

채널A <대통령 손잡고 “살려달라” 오열>(17일, 이현수 기자)는 앵커가 “어젯밤 뜬 눈으로 새웠다는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날이 밝자마자 진도 사고 현장을 직접 찾아 탑승자 가족들을 위로했습니다. 박 대통령을 만난 실종자 가족들은 애타는 마음에 분통을 터뜨렸고 울분도 토했습니다. 하지만 40분 넘게 이어진 만남에서 가족들은 대통령의 간곡한 걱정에 공감의 박수를 보내기도 했습니다”라고 멘트했다. “왜 이제 와! 사람 다 죽게 하고!”라는 항의 현장음이 실리긴 했지만 기자는 “실종자 가족들은 대통령의 손을 잡고 놓지를 못합니다. 박 대통령이 나서서 정부 관계자들을 꾸짖고 가족들을 달랬습니다” 등 대통령의 따뜻함을 부각시키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한 이 보도에서는 “박 대통령은 체육관을 떠나기 전 가족들과 떨어져 학생들에게 구조된 6살 권지연 양을 만나 위로하기도 했습니다”라며 자료화면으로 고모의 품에 안긴 권양의 모습을 그대로 보도했다.

TV조선 <“마지막 한분까지 최선”>(17일, 정세영 기자)에서는 앵커가 “박 대통령은 마이크를 잡고 실종자 가족들의 요구에 일일이 답을 하기도 했는데 아들, 딸이 실종된 가족들의 거센 항의도 받았습니다. 험한 분위기가 충분히 예상됐음에도 가족들을 찾아간 박근혜 대통령도 대단한 것 같습니다”라며 박대통령의 태도를 칭찬했다. 기자 역시 “실종자 가족들과의 만남은 경호 문제로 참모들의 만류가 있었지만, 직접적인 대화가 필요하다는 판단 아래 강행한 겁니다”라고 박대통령 방문의 배경까지 부연 설명했다.

이에 비해서 대통령 부각보다는 현장 분위기를 잘 전한 보도는 JTBC <[이 시각 현장] 진도 체육관의 가족들은>(17일, 전진배 기자)였다. 기자가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오면서 일부 말을 하고 서로 대화가 오가는 과정에서 그전에 계속해서 해 왔던 주문들, 약속들이 다 깨졌다 이러면서 야유와 어떤 고함이 나오면서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 이어졌습니다”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 현장 방문…가족들 ‘항의’>(17일, 임소라 기자)에서 “실종자 가족들도 만났는데, 격앙된 일부 가족들 사이에선 고성도 나왔습니다.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의 초동대처와 구조작업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면서 격렬하게 항의했습니다”라고 전했다. MBC <가족들 위로 “구조에 최선”>(17일, 박성준 기자)에서는 “박 대통령이 입장하자 애끓는 가족들은 오열을 하거나 고성을 지르며 구조 작업에 대한 불만을 보였습니다.”라고 기자멘트했다. SBS <“책임질 사람은 엄벌할 것”>(17일, 정준형 기자)는 “일부 가족들은 정부가 실질적 대책을 내놓으라며 항의하기도 했습니다.”라는 정도로 실종자 가족의 대응을 전했다.

TV조선, 청와대 미숙한 초기대응은 국가재난시스템의 허점 때문(?)

TV조선은 <청와대도 ‘낙관적 보고’ 믿어>(17일, 신은서 기자)에서 청와대도 국민과 같은 잘못된 보고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앵커는 “어제 구조와 실종 사망자 숫자가 하루 종일 왔다갔다 우왕좌왕했는데, 청와대도 우리와 똑같은 잘못된 정보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청와대의 분위기가 오전까지만 해도 희망적이었다가 오후부터 급격히 바뀌었다고 합니다. 분노 기류까지 감지됐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 보도는 “청와대에 초기 보고에 심각한 오류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국가재난관리시스템의 허점이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기사 어디에도 청와대의 정보 부재 등 청와대 책임 소재는 언급하지 않아 누가 보더라도 청와대를 감싸기 위해 변명으로만 보이는 기사였다.

대참사에도 ‘박대통령 지지율 높은 이유’를 보도해야했을까

TV조선 <뉴스쇼 판>에서 보도한 <최병묵의 정치속보기/박대통령 ‘엄벌’ 문책 범위 확대되나?>(18일, 대담)은 SNS를 통해 이미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보도에서 앵커는 최병묵 월간조선 편집장에게 “오늘 갤럽 여론조사 나왔는데, 세월호 참사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 지지율에는 큰 변화가 없는 것 같아요”라고 물었다.

최 편집장이 “이번 참사에도 불구하고 현장에 내려가서 박근혜 대통령이 수습을 진두지휘 하는 모습 그런 부분은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그러나 이게 14일부터 17일까지 여론조사 진행 중이었기 때문에 이 사고가 난 건 사흘째기 때문에 사실 별로 반영이 안 됐다고 봐야 되고, 문제는 진상이 어느 정도 드러난 상황에서 정부의 책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그 때 되면 정부한테 상당한 정도로 국민들이 책임을 물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지지율에 반영이 될 것인데 아까 말씀하셨지만, 보도에도 하셨습니다만 여당이나 청와대에는 상당한 악재가 되죠.”라고 대답했다.

앵커가 거듭 참사가 반영이 되지 않은 것이냐고 묻자 “아마 4월 말이나 5월 초쯤에 가서 상황이 정리되고 원인이 어느 정도 진단이 된 다음에 지지율에 반영이 될 것이라 봅니다“라고 대답했다.



대화의 내용만을 보면 크게 최 편집장의 발언은 크게 문제가 될 만한 내용이 아니다. 그러나 이 보도는 앵커의 질문과 자막 등에서 박대통령을 띄우기 위해 만들어진 의도가 크게 드러난다.

앵커가 대참사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에 변화가 없다고 묻고 대참사와 대통령 지지율에 대한 설명을 하는 동안 2분 50초간 계속적으로 <Q. 대참사에도 ‘박대통령 지지율 견고’ 이유는>이라는 자막이 나갔다. 상세한 대화내용을 떠나 참사 와중에도 박대통령의 지지율이 여전히 견고하다는 메시지가 강조됐기 때문이다. 온 국민이 어린 학생들의 구조를 기원하며 일상생활마저 조심스럽게 지내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말장난, 자막장난이나 일삼는 TV조선의 태도는 비판받아 마땅하다.

한편, 경향신문은 19일자 10면에 실린 <국정원 ‘증거조작’ 사건에도 박 대통령 지지율 59%>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 결과를 인용해 “박 대통령의 직무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59%였다”고 전했다. 국정원의 증거조작 사건에도 불구하고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경향신문은 “여객선 침몰사고는 반영 안 된 듯”이라고 부제목을 달아, 해당 여론조사 결과에 영향을 준 사건의 범위를 명확하게 했다. 기사에서도 “여객선 침몰사고는 발생 직후여서 가치 판단이 여론조사 결과에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 [신문] 정부는 비판해도 박 대통령은 감싸주는 조선일보

대통령 감싸기 보도는 조선일보도 뒤지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19일자 <대한민국 정부에는 대통령 한 사람뿐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대한민국 정부에 대통령 1인만 있고 책임지고 일하는 관료는 보이지 않는다는 탄식이 실종자 가족은 물론 국민 사이에서도 커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선일보는 공무원 조직 전체를 “나섰다가 책임질까 뒷짐만”이라고 표적 삼았지만 대통령이 행정부의 수반이라는 것을 모르는 국민은 없다. 임명직이 아닌 선출직 공무원인 대통령은 그 누구보다 국민의 안위에 일차적 책임을 져야함은 기본 상식이다. 대통령은 잘했는데 밑의 공무원들이 안 움직여서 사태가 커졌다는 식의 해석은 위험하다는 말이다.



또한 조선일보는 같은 날 <과도한 ‘1人 리더십’ 벗어나 위기관리 시스템 복원해야>라는 기사에서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 대형사고 초기 단계에서부터 피해자 가족들을 만나 요구사항을 듣고, 정부 당국자들에게 지시를 내리는 등 현장 지휘에 직접 나선 경우는 드물었다”며 박근혜 대통령을 두둔하고 나섰다.

취임 일성으로 ‘안전 한국’을 표방하고 행정안전부라는 부처 이름에서 ‘안전’이 더 중요하다며 ‘안전행정부’로 이름까지 바꾼 사람이 대체 누구란 말인가. 사고 발생 후 사나흘이 되도록 우왕좌왕해서 정부의 신뢰가 침몰한 것을 두고도 무턱대고 ‘대통령 감싸기 보도’는 ‘과공비례(過恭非禮)’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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