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지]이은용 전자신문 부지부장

부당 해고 한 달 맞은 이은용 전자신문 부지부장의 편지

“부당 해고. 부당(不當)한? 이치에 맞지 않은! 사람 사는 도리에 어긋난!”  제가 이치에 맞지 않게, 부당히 <전자신문>에서 해고된 지 29일째(9월 22일)입니다. 사람 사는 도리에 어긋났으니 마땅히 거두어들이는 게 옳을 것이나 구원모 사장을 비롯한 몇몇 부당 해고 책임자는 전혀 그럴 뜻이 없는 듯합니다. 하긴 스스로 “부당했다”고 인정하기 어렵겠죠. 본디부터 ‘이치로 보아 옳지 않다’는 걸 아는 자가 그리 했겠습니까마는 이런 몰상식한 행위는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을 겁니다. 결코 잊힐 수 없습니다. 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꼭 기억해 둬야 두 번째, 세 번째 ‘부당 해고’를 막아낼 수 있습니다. 꼭 기억해 둬야 우리 노동자의 땀과 힘으로 <전자신문>의 미래를 품을 수 있습니다.  저는 이번 ‘부당 해고’ 사태를 맞아 <전자신문> 내 몇몇의 도덕적 품성에 관해 곰곰 짚어 보았습니다. 선악의 견지에서 본 특정인의 인격과 행위 따위에 관해 생각해 본 겁니다. 치밀더군요. 분노가. 떨리더군요. 살이. 그 몇몇의 끝 모를 도덕적 해태(懈怠)에 생각이 닿으니 치(齒)마저 떨렸습니다. 치 떨리다 못해 지긋지긋해졌습니다. 그들의 거짓말. 음해. 위험한 꾀.

분노에 살과 치를 떨다 보니 난데없이 ‘과연 그 몇몇이 염치를 차릴 줄은 알까’ 하는 걱정이 솟더군요. 인간이 염치와 담을 쌓는 지경이라면 사람다운 대화가 어려워지게 마련일 텐데 저는 이번 ‘부당 해고’ 사태를 겪으며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받기가 참으로 어려워 절망했습니다. 더할 수 없이 슬프고 끔찍했습니다. <전자신문>의 앞날이 점점 암울하고 칙칙해질까 두려웠습니다.



곤란합니다. 이래선 안 됩니다. 저는 상식에 어긋난 그 몇몇이 왼 가슴에 손 얹고 자신의 언행을 겸허히 돌아볼 때가 됐다고 봅니다. 그래야 현장에서 땀 흘리는 <전자신문>의 여러 노동자 앞에 옹송그린 채로라도 설 수 있을 겁니다. 그게 큰 힘 들여 일하지 않는, 땀 흘리지 않는 그 몇몇이 자신의 마지막 양심을 되살리는 길입니다.

부당 해고. 부당하다면, 이치에 맞지 않다면, 사람 사는 도리에 어긋난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앞으로 남발하지 마십시오. 그게 올바른 도리요, 도덕(道德)입니다.

<전자신문> 인사위원회가 내건 ‘이은용 해고 사유’는 모두 빈약합니다. 보잘것없는 내용을 내밀어 <전자신문>에서 19년 5개월여 동안 성실히 땀 흘린 노동자 이은용의 명예, 그의 가족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지 마세요. 보잘것없는 내용을 내밀어 성실히 땀 흘리는 <전자신문>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안녕을 위협하지 마세요. 뭇칼질은 죄악입니다. 겸허히 돌아보세요. 칼질하던 당신의 말을, 행위를, 도덕성을!



아… 뜻밖의 부당 해고 사태에 맞닥뜨리다 보니 불쑥불쑥 솟는 게 정말 많더군요. 분노가 앞서고 삶과 가족이 뒤를 잇더니 명예가 고개를 들었습니다. ‘은행 대출은 어쩌지?’ 하는 생각이 발등에 불로 떨어지나 싶더니 ‘의료보험은 또 어찌 될까? 지역의료보험으로 바뀌면 내 직장의료보험 피부양자이셨던 고향의 부모님도 해고 사태를 아시고 적잖이 걱정하실 텐데…’ 하는 염려까지, 그야말로 이리저리 불쑥거렸습니다. ‘해고는 살인’이라더니 그 시작이 어떠한지, 노동자와 그의 가족의 삶을 어찌 파괴할 수 있을지 절실히 체득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따뜻이 위로하고 힘 더해 주신 여러 전국언론노동조합원 덕분에 꿋꿋하고 당당히 다시 섰습니다. 특히 ‘산업별 노동조합’이 왜 소중한지 제대로 알았습니다. 우리가 왜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여야 할지 깊이 느끼게 됐죠.

그러고 보니 그 몇몇에게 고마운 게 있습니다. 서로의 어깨에 팔 얹어 끼고 나란히 설 우리 동료, 노동자! 저의 위안. 그 아름답고 소중한 한 사람 한 사람을 더욱 잘 알 기회를 공교롭게도 그들이 열어 준 것 아니겠습니까. “그것참, 때댕큡니다그려.”

눈으로, 맞잡은 손으로 제 어깨 위 ‘부당 해고의 아픔’을 덜어 주신 <전자신문> 노동자 한 분 한 분께 감사합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원 한 분 한 분의 마음에도 감동했습니다. 회사의 만행에 굴하지 않겠습니다. 끝까지 맞서겠습니다. 이 고통을 소중한 경험으로 바꿔 여러 노동자가 자본의 폭압에 당당히 맞설 때 손에 쥘 만한 무기가 될 수 있게 노력하겠습니다.

                                                                       2014년 9월 22일.

 
                                                    <전자신문>에서 부당히 해고된 이은용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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