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언론운동의 역사와 현 주소 진단한 심포지엄 열려

'기레기'는 최근의 단어지만, 기자들이 욕을 먹던 역사는 유구하다. 70년대 대학생들은 교내에서 '언론화형식'을 하며 유신 정권의 앵무새 노릇을 하던 언론을 비판했다. 80년대에는 《말》지나 《한겨레신문》같은 언론이 '대안언론'의 역할을 하며 기존 언론을 규탄했다. 90년대 중반부터 언론을 정상화 하기 위한 각종 법들이 입법됐지만 2008년 이명박 정권 이후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인들이 해고되면서 말짱 도루묵이 됐다.

24일 오후 3시 국가인권위원회 8층 배움터에서 '한국 언론운동사 심포지엄'이 열렸다. 창립 30주년을 맞은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발간할 예정인 '한국 언론운동사'를 요약 발표하고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이 날 심포지엄에서는 1970년대부터 최근까지의 언론운동에 대해 연구자들과 현직언론인들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1970년대부터 80년대의 언론운동사를 정리한 김동민 한양대 겸임교수의 발제와 민주정부 10년 시기의 언론정책과 언론운동을 정리한 김은규 우석대 교수의 발제, 2008년 이후 이명박·박근혜로 이어지는 보수정부의 언론탄압에 대한 현직언론인들의 토론으로 이어졌다.

 



70년대 언론운동의 시작은 '대학생'

1970년대부터 80년대의 언론운동사를 발제한 김동민 한양대 겸임교수는 70년대 언론운동을 자극한 것은 '대학생들'이었다고 밝혔다. 김동민 교수는 "개발독재의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짓밟히고 인권이 유린당해서 언론이 침묵하는 상황에서 대학생들이 언론운동의 불을 지폈다"며 "학생들의 비판에 기자들은 '언론자유수호운동'으로 화답했다"고 말했다.

1971년 3월 24일 서울대 법대생 100여명은 교내에 모여 언론인들을 규탄하는 성토대회를 갖고 신문과 잡지등을 소각하는 '언론화형식'을 가졌다. 이틀 뒤인 26일 서울대 문리대와 법대, 상대 학생회장단은 동아일보 앞에서 '언론인에게 보내는 공개장', '언론화형선언문', '언론인에게 고한다'등의 유인물을 행인들에게 나눠주며 편파적인 언론상황을 시민들에게 알렸다.

71년 4월 15일 동아일보 기자들은 언론의 자유는 침해되어서는 안되고, 기관원의 상주나 출입은 허용될 수 없다는 내용의 '언론자유선언문'을 발표한다. 그러나 72년 10월 박정희 정권은 계엄령과 함께 유신을 선포하며 장기집권의 길에 접어들었다. 언론은 더욱 더 위축되기만 했다.

1974년 10월 23일자 동아일보에서 기사 <서울농대생들 3백여명 데모>가 2판부터 빠지고, 송건호 편집국장을 비롯한 부장들이 중앙정보부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그 다음날인 10월 24일, 180여명의 동아일보 기자들은 자유언론을 언론종사자들이 직접 찾아오겠다는 내용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발표하게 된다.

자유언론실천선언이 확산되자 박정희 정권은 동아일보에 대한 광고탄압을 시작했다. 동아일보사는 광고탄압에 굴복하여 기구 축소를 구실로 기자 10명을 포함한 18명을 해직시켰다. 이에 맞서 기자들은 농성에 돌입했지만 폭력배에게 끌려나와야만 했다. 그렇게 147명이 동아일보에서 해직됐다.

김동민 교수는 "이렇게 자유언론실천운동이 막을 내리고, 이들은 독재정권에 저항하는 험난한 재야언론운동에 돌입하게 됐다"며 "해직언론인과 해직교수들이 출판사를 설립하고 사회과학분야의 저서와 번역서를 내며 언론이 못하는 기능을 출판이 대신 수행하는 '출판저널리즘의 시대'가 열렸다"고 전했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 80년대 언론운동의 도약

김동민 교수는 "1980년대 중반까지는 언론기본법과 보도지침으로 철저하게 재갈이 물린 상태에서 언론운동이 숨을 쉴 수 없었다"며 "그러다가 1984년 12월 동아투위와 조선투위 해직기자들, 1980년 해직자들이 민주언론운동협의회를 창립하면서 언론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고 밝혔다.

민주언론운동협의회는 대안언론으로 《말》지를 창간하며 권력에 맞섰다. 또 1988년 5월 16일 민족·민주·민중언론을 지향하는 《한겨레신문》을 창간했다.

김동민 교수는 "1980년대 언론운동은 민주언론운동협의회에 이어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출범한 언론노조의 언론민주화운동이 쌍벽을 이루었다"며 "편집국장 직선제가 화두였던 언론민주화운동은 대통령 직선제와 더불어 민주주의의 상징처럼 되었다"고 전했다.

김동민 교수는 "60~70년대 언론을 규탄하던 대학생들은 그 결기와 기상을 상실한 채 언론고시를 준비하느라 바쁘다"며 "기자들은 그저 샐러리맨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 현실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언론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정부 10년, 언론법제 개선운동 활발

김은규 교수는 민주정부 10년시기의 언론정책과 언론운동을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2000년대초의 언론운동사를 발제했다. 김은규 교수는 "민주정부 10년의 시기는 시민사회의 성장에 힘입어 왜곡된 한국의 언론구조를 개혁하기 위한 언론법제 개선운동이 활발이 이루어 진 시기"라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법·제도 개선운동은 통합방송법 제정과 정간법(정기간행물의등록에관한법률)개정이라는 두 축으로 진행됐다. 방송법은 권력으로부터 독립성을 보장하고 공공성을 실현할 수 있는데에 초첨을 맞췄고, 정간법은 신문의 과당경쟁과 여론왜곡을 방지하는 데 초첨을 뒀다. 그 결과 2000년 통합방송법이 제정됐고, 2004년부터는 지역신문법, 신문법, 언론중재법 등과 같은 법안이 구체화됐다.

그러나 김은규 교수는 "민주정부 시기를 통과하면서 강화된 신자유주의 시스템이 한국사회의 신보수주의 경향을 강화시켰다"며 "그 결과 2008년 이후 신보수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한국의 민주주의와 언론구조는 다시 과거로 회귀되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명박·박근혜 신보수주의 정권, 내적 장치 무력화 시켜

토론자로 나선 권오훈 KBS 본부장 또한 같은 말을 전했다. 권오훈 본부장은 "현업인의 관점에서 봤을 때 민주정부 십년동안 언론노조 운동은 상당히 활발했고, 그 성과물로 공정보도에 대한 견제장치들이 상당히 촘촘하게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그러나 권본부장 또한 "내적장치가 충분히 마련되었다고 생각했지만 2008년을 거치면서 너무 쉽게 무너졌다"며 "보수정권이 치밀하게 잘 준비했다. 미디어법 개정을 통해 언론 지형 자체를 바꾸거나, 내부적 저항세력들을 제거 해 내는 과정들을 보면 상당히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다"고 전했다.

김서중 성공회대 교수는 "70~80년대 언론운동은 강력한 통제 권력에 대한 저항 운동이 컸기 때문에 운동 주체들 사이에서 이견이 별로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며 "언론운동이 공개적인 공간에서 쉽게 할 수 있께 되면서 조직 사이의 갈등 조정 문제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런 것들이 90년대, 2000년대의 변화점"이라고 밝혔다.

김서중 교수는 언론운동이 뉴미디어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기도 했다. 김서중 교수는 "언론운동이 반저널리즘에 대한 저항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기존 미디어가 새로운 미디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전했다.

자본에 종속된 언론, 지사적 저널리스트 키워야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지금은 언론을 생성하는 시스템이 대단히 자본화 되어 있다. 젊은 기자들이 순응하게 되어 있다"며 자본에 종속된 언론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강 위원장은 "지사적 저널리스트들의 환경을 개선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 "손석희 사장은 상업화 되어 있는 캐릭터다. 지사적 저널리즘과구분해서 봐야 한다. 반면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지사적 저널리스트"라고 말했다.

이어 "자본에 종속된 언론 시스템 내에서 지사적 기자가 되라고 강요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졸탁동시라는 말이 있다. 지사적 저널리스트들이 나타날 때 시청자들이 병아리의 알을 깨주는 어미닭처럼 알을 깨주어야할 시기"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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