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가 '교양제작국' 폐지에 이어 지난 31일 130여명의 유능한 기자와 PD들을 비제작부서로 발령냈다. 특히 <PD수첩> 출신 PD들이 집중 타깃이 되며 '보복인사'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는 31일 즉각 성명을 내고 "(이번 인사로 인해) 회사는 스스로 공영방송 포기선언을 하며 내세웠던 '수익성'과 '경쟁력'이라는 구호조차도 결국 허울뿐인 것임을 만천하에 알렸다"며 "'눈엣가시'같던 PD, 기자들에 대한 탄압과 배제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PD수첩> 출신 PD들 집중 타깃 돼

영화 <제보자>의 모델이자 최근에도 교황 방한 관련 다큐로 호평을 받았던 한학수 PD는 제작과 무관한 신사옥개발센터로 가게 됐다. 지난 9월 다큐멘터리 <안중근>으로 이달의 PD상을 수상했던 김환균 PD또한 제작과 무관한 경인지사로 발령이 났다.

지난 3월 <불만제로> '잇몸약의 비밀'편으로 한국PD연합회에서 작품상을 받았던 이우환 PD와 지난 6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상'을 받은 이춘근PD는 '업무 실적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교육발령이 떨어졌다.

<PD수첩>에서 '광우병'편을 제작했던 조능희 PD, <불만제로>와 <남극의 눈물>을 제작한 김재영PD, <휴먼다큐 사랑>을 제작했던 이근행PD는 편성국 MD가 됐다. MBC의 간판프로그램들을 제작한 PD들이 모두 비제작부서로 쫓겨난 것이다.

게다가 회사는 노사협의회를 통한 의결을 거쳐야만 '교육발령'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넘어갔고, 인사대상자들에게 사전 통보나 설명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상 받은 PD, 발령 첫 교육 '박수치며 자기소개'

문화방송본부는 4일 낮 12시 상암동 MBC사옥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밀실개편과 보복인사를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이성주 문화방송본부장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선정하는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가 '저성과자'로 낙인찍혀서 교육발령을 받았고, 교육 첫 프로그램이 박수치며 자기소개하기였다고 한다"며 "이상해도 너무 이상하다. 회사가 발전하려면 이런 사람들이 프로그램을 계속 만들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어 "MBC는 공공재인 전파를 국민들을 위해서 써야 하는 곳인데 회사는 그것을 무시하고 있다"며 "단 한사람이 이 자리에 남는다 해도 끝까지 이 부당함을 알리고 잘못을 역사에 기록할 것"이라고 의지를 전했다.

신인수 변호사(법무법인 소헌)는 "이번 전보발령은 무효"라며 "전보발령에는 업무상 필요와 절차적 정당성, 신의칙 등 세가지가 필요한데 MBC는 이를 모두 무시했다"고 전했다.

신인수 변호사는 "법 위반인 것을 법원도 알고 회사도 알 것"이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발악을 하는 이유는 진실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무서워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궁지에 몰려있다는 것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이다. 함께 싸워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언론사의 취재 카메라가 아닌 작은 캠코더 카메라가 MBC본부의 기자회견을 찍고 있다.

신인수 변호사는 기자회견을 촬영하고 있는 회사의 캠코더를 보며 "아무리 악덕기업이고 망가진 기업이라도 기자회견 현장을 저렇게 삼각대까지 놓고 찍지는 않는다"며 "정의를 비춰야 할 카메라가 진실을 위해 항의하는 기자들을 압박하는 도구로 쓰여지고 있다. 이것이 바로 MBC의 처참한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MBC 교양 PD 재생산 구조 사라졌다"

김재영 PD는 "회사가 자체적으로 만든 QI지수(품질평가지수)가 있다. 1위가 <왔다 장보리>, 2위가 <무한도전>, 3위가 <진짜 사나이>, 그리고 4위가 <불만제로>였다"며 "프라임 시간대에 방영되는 예능프로 그 다음으로 좋은 프로그램이 <불만제로>였는데 회사는 폐지를 통보했다"고 밝혔다.

김재영 PD는 "왜 잘 만든 프로그램이라고 해 놓고 존중 해 주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회사로부터 받은 대답은 '그 지수 믿을 게 못 된다'였다"며 "이 사람들에게 시청자는 없다. (경영진은) 절대로 MBC를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PD는 또 "2010년 이후 교양제작국에 신입 PD는 없다"며 "교양 PD의 재생산구조마저 사라졌다"고 전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비롯한 한국PD연합회, 방송기자연합회, 한국기자협회등 현업 언론단체도 같은 날 오후 2시 30분 기자회견을 열고 MBC의 조직개편과 보복인사를 비판했다.

강성남 언론노조 위원장은 "지난 파업 이후 조합원들이 해직되고, 교육받고, 지사발령을 받는 등 각종 만행이 있었지만 그래도 기둥은 있다고 생각했다"며 "이번 조직개편을 비롯한 인사발령은 공영방송의 중심을 허무는 행태"라고 지적했다.

강성남 위원장은 "공영방송 MBC를 정권의 방송, 자본의 방송으로 만들어버렸다"며 "정의가 제대로 서는 날을 하루 빨리 앞당겨 어떻게 비참하게 망가지는지를 똑똑히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MBC 경영진, 국민의 알 권리를 상대로 싸우겠다는 것"

박종률 기자협회장은 "MBC가 어둠의 터널로 질주하고 있다. 고작 이러려고 여의도에서 상암으로 이전하고 대통령까지 모셔왔는가"라며 "주역들이 빠져나간 MBC에서 어떤 감동을 찾을 수 있을 지 모르겠다. 안광한 사장이 위험천만한 일을 벌여 MBC는 이제 몰락의 길 밖에 남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전동건 방송기자연합회장은 "제작현장에서 쫓겨난 사람들을 우리의 알권리를 위해서 열심히 일 한 사람들"이라며 "이번 사건은 그야말로 MBC경영진들이 국민의 알권리, 국민들을 상대로 싸우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언론인 대학살극을 당장 중단하라"며 "MBC 경영진이 자행하고 있는 인사 만행과 공영방송 무너뜨리기는 즉각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것은 이념이나 성향의 문제도 아니다"라며 "국민의 눈과 귀가 되어야 할 MBC가 이대로 무너지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보아서는 결코 안 된다. '공영방송 MBC'를 지키기 위해 모든 투쟁에 돌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전국언론노동조합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