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말하면 비로소 변하는 것들,
직장 내 성폭력 해결 위한 집담회 열려

“사건이 끝나면 서른네 살이 되어 있을지 자살을 했을 지 모르겠는데요. 그래도 목표는 끝까지 싸우는겁니다. 삼년이 걸리든 사년이 걸리든 망가지면 망가지는 대로 자살하면 하는대로 모든 걸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 ‘책은탁’ 전 쌤앤파커스 마케터

직장 내 성폭력 해결을 위한 집담회, ‘함께 말하면 비로소 변하는 것들’이 서울 마포구 서교동 가장자리 협동조합에서 열렸다. 쌤앤파커스 성폭력 피해자인 책은탁(가명)씨를 비롯한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국장 등이 60여명의 참석자들과 함께 직장 내 성폭력 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책은탁씨는 곽은영 시인의 시 ‘불한당들의 모험 27’을 소개했다. 책은탁씨는 시의 맨 마지막 구절인 ‘아직은 죽지마’를 제일 전하고 싶은 구절로 꼽았다.

성폭력 사건, 피해자 숨지 말고 가해자가 부끄러워 하길

책은탁씨는 “불한당들의 모험 27을 읽었던 이유는 ‘말뚝처럼 혼자서 땅을 판다’는 구절 때문이었다”며 “다들 숨어서 혼자 싸우고 있다. 떠들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싸우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어 “언제나 모자이크 처리 되어서 나타났지만, 내가 피해자인 것을 알려주려고 이 싸움을 시작했다”며 “피해자들이 겁먹고 숨지 않았으면 좋겠다. 목표는 하나다. 가해자가 부끄러워 해야 한다”고 전했다.

책은탁씨의 주장은 뚜렷했지만 말을 전하는 목소리는 흔들렸다. 책은탁씨는 사건을 진행하며 살이 10여키로 가량 빠진 상태다. 자살위험이 높은 상태라서 곧 병원에 입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책은탁씨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함께 우는 소리가 여기 저기서 들렸다.

쌤앤파커스 마케터로 일하던 책은탁씨는 정사원 발표가 나기 3일 전 상무의 오피스텔에 불려갔다. 상무는 책은탁씨에게 옷을 벗으라고 했다. 3일 후 책은탁씨는 정사원이 됐다. 정신과에서 약을 받아 먹기도 했지만 항의한다고 해서 상무가 잘릴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10개월 후 책은탁씨는 후배의 다급한 연락을 받았다.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죄책감에 성폭력 사건을 회사에 알렸다.

책은탁씨는 쌤앤파커스 이모 상무를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혐의로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했고, 서울고등법원 제22형사부(부장판사 이강원) 역시 지난 4일 재정 신청을 각하했다. 책은탁씨는 민사소송을 진행할 예정이다.

책은탁씨는 “형사소송에서 무혐의 처분이 나서 민사소송이 쉽지 않을 것 같지만 끝까지 싸울 것”이라며 “소송이 끝나면 서른네 살이 되어 있을지 자살을 했을 지 모르겠지만 망가지면 망가지는 대로 모든 걸 보여드리고 싶다. 이 나라 법이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지 보여드릴 것”이라고 의지를 전했다.

 

이 날 집담회에는 60여명의 참석자들이 함께했다.

성폭력 신고 이후 감내 해야 하는 불이익들

이소희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일년에 300여건의 성폭력 상담이 접수되고 있다”며 직장 내 성폭력 사례와 공통적인 문제점, 대응의 한계들을 소개했다.

이소희 활동가는 “성폭력 사건을 진행하던 한 피해자의 이야기가 생각난다”며 “그 분은 '내가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제제기를 하는 사람인데 왜 언제나 죄인이 되고 숨어있어야 하는 지 의아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이소희 활동가는 “성적 제안을 수락하면 근로 조건을 좋게 조정해준다거나, 자신의 제의를 거절한 사람을 권력을 이용해서 회사에서 내 쫓는 경우도 있다”며 “성폭력 사건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을 땐 사직 의사를 밝히지도 않았는데 같은 업무의 사람을 뽑는다는 구인공고를 하는 식의 암묵적인 사퇴 압박을 하기도 한다”고 전했다.

이소희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공통적으로 호소하는 어려움으로 '증거가 없다는 것'을 꼽는다는 사실도 전했다. 이소희 활동가는 "성폭력 피해자들이 싸워야 하는 대상은 가해자만이 아니다. 검찰, 노동부, 인권위 모두가 싸울 대상"이라며 "우리가 이기는 싸움이 될 수 있는 것은 법적인 판단도 중요하지만 얼만큼이 내 편이 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시간들을 차곡 차곡 쌓아야 한다"고 밝혔다.

집담회 참석자 중 성폭력 신고 이후 본인이 당하고 있는 불이익들을 직접 밝힌 참석자도 있었다. 참석자는 “성폭력 사건을 신고 한 다음날부터 팀원 40명 중 자신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며 “상사를 신고했다는 꼬리표가 계속 남는다. 온갖 부당한 징계를 받았지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고 전했다.

참석자는 “어떤 여직원이 자기가 담당 매니저에게 오랫동안 성희롱을 당했는데 신고 이후 부당한 처우를 받는 나를 보며 오히려 신고를 못하겠다고 하더라. 내가 용기내서 신고를 한 것이 다른 여직원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며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성희롱 신고를 했다는 꼬리표가 붙는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 지 의문이다”고 말했다.

 

쌤앤파커스 성폭력 사건 피해자인 책은탁(가명)씨는 곽은영 시인의 시 ‘불한당들의 모험 27’을 소개했다.

피해자가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환경 필요해

김수경 민주노총 여성위원회 여성국장은 “피해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공간을 만드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성폭력을 가볍게 바라보는 것이다. 다 죽이고 싶다는 말들을 가볍게 드러내며 이야기 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고 전했다.

경북 김천시 직지농협 과장으로 일하다 성희롱 피해를 당한 김모씨 또한 자신이 겪은 일을 전하며 “부끄럽다고 이야기 안하면 안 된다”며 “감추면 피해자는 더 늘어날 것이다. 자꾸 밝혀내면서 제2, 제3의 피해자가 나타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영’ 메이데이 출판노동자 역시 “아무도 물꼬를 틔워주지 않아서 이야기 할 기회가 없다”며 “당사자가 아니라도, 옆에서 본 것이라도 이야기 할 수 있는 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성희롱 사건을 겪은 입장에서 싸워보라고 말하기가 힘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함께 이야기를 하며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잊혀지지 않도록 끈질기게 싸울 것, 릴레이 1인 시위 진행 중

박진희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출판 분회장은 “쌤앤파커스 박시형 대표에게 이 사건을 절대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일 것”이라며 “출판노동자들이라도 먼저 성폭력 이슈가 꺼지지 않게 하면서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예방책을 마련해낼 것”이라고 전했다.

박진희 분회장은 “피해자분이 900여장의 탄원서를 보고 많이 울었다”며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이 많은 힘이 된다. 가늘더라도 끈질기게 대응하겠다. 잊혀지지 않도록 연대하고 지지 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집담회는 전국언론노동조합 출판노조협의회의 주관으로 서울경기지역 출판분회가 주최했다. 현재 출판노조협의회는 쌤앤파커스성폭력사건대책위원회를 꾸려 쌤앤파커스 사내 성폭력 사건 해결을 위한 릴레이 1인 시위를 서울과 파주에 있는 쌤앤파커스 사무실 앞에서 진행하고 있다.

1인시위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happybooknodong@gmail.com 으로 이름과 연락처, 가능한 날짜와 장소를 신청하면 된다. 연락처는 010-2927-9691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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