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자유 언론 뜻 이어갈 것"

"40년 전 3월 17일, 우리는 동아일보에서 자유언론의 혼을 갖고 나왔습니다. 그래서 이제 동아일보는 죽고 없는 것입니다" - 문영희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위원

40년 전 동아일보의 언론인들은 박정희 정권의 언론 통제를 거부했다. 이들은 신문, 방송, 잡지의 외부 간섭 배제, 기관원 출입 거부, 언론인 불법 연행 등을 골자로 한 '자유언론실천선언'을 1974년 10월 24일 발표했다. 이듬해 3월 113명의 기자, 피디, 아나운서들은 회사의 부당인사에 항의하며 동아일보사에서 농성을 하다 끌려나왔다. 쫓겨난 이들은 '자유언론'의 깃발을 올리겠다는 마음으로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그 후로 40년, 113명 중 단 한명도 동아일보사로 다시 들어가지 못했다. 그 중 스무명은 감옥, 고문 후유증, 생활고로 얻은 난치병, 스트레스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제 노인이 다 된 이들은 16일 오후 3시 옛 동아일보 사옥인 광화문 일민미술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동아투위는 영원하다, 동아일보는 죽고 있다"고 밝혔다.

 



자리에 모인 동아투위 위원들은 한 목소리로 지난 선택에 후회가 없다고 밝혔다.

김종철 동아투위 위원장은 "3월 17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비통하다"며 "40년이 넘게 굳건하게 싸워온 것이 역사 앞에 자랑스럽다. 반성하지 않는 언론들을 상대로 언론의 지배구조를 바꾸고 마침내 자유언론과 공정보도로 이어질 수 있도록 계속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정연주 동아투위 위원 또한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권력에 굴종하고 아부하는 삶을 살았다면 자식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싸움에 동참하고, 무수한 고통에 함께 한 것이 자랑스럽다. 후배들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해서 싸워나가면 반드시 봄이 오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정동익 동아투위 위원은 "부인에게 '나하고 결혼해 별 탈 없이 살지 않았냐'물으니 '시집 잘 간 줄 알았더니 2년만에 실업자 아내가 됐다'고 해 40년이란 세월이 주마등처럼 스쳤다"며 "비록 펜과 마이크를 빼앗겨 길거리로 쫓겨났지만 자유언론의 초심을 잃지 않고 싸웠다. 힘들었던 40년은 후회가 아닌 뿌듯함으로 다가온다"고 말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이어가겠다는 현업 언론인들의 목소리도 전해졌다.

김동훈 언론노조 수석부위원장은 "이 땅에 민주주의와 언론자유를 실천하기 위해 고생하신 선배님들께 경의를 표한다"며 "현업에서 자유언론을 꿋꿋이 실천하겠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힘쓰겠다"고 말했다.

이해동 목사는 "심지 없이는 촛불을 켤 수 없다"며 "동아투위는 언론의 심지이다. 40여년을 고통 속에서 한결같이 투쟁 해 온 것에 희망을 갖고 있다. 불을 켜는 큰 역할을 반드시 해 낼 것"이라고 전했다.

 



기자회견 직후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열린 동아자유언론수호투쟁위원회 40주년 기념식에는 백기완 선생, 함세웅 신부 등 200여명이 함께했다.

백기완 선생은 "한 언론인의 (자유언론을 위한) 몸부림의 역사이자, 민중의 몸부림의 역사가 여기 있다"며 "내년까지 내가 살아 41주년 기념식을 한다면 박근혜 대통령이 1초라도 이 자리에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의 자유는 방심하면 깨지기 쉬운 유리병같다는 생각을 한다"며 "선배들이 애써 만든 자유언론을 위한 정신을 되찾기 위해 후배들이 애쓰고 있지만 40년 전 보다도 훨씬 교활하고 어떻게보면 더 악날하기도 하다. 하지만 긴 터널 지났기 때문에 끝이 머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이젠 후배들이 앞장 서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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