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KBS·EBS·MBC) 이사들의 임기가 올해로 끝난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일(수)부터 14일(화)까지 2주간 한국방송공사와 방송문화진흥회 이사를 공개 모집한다. 정당이나 국회, 방송통신위원회가 이사를 추천하는 지배구조 아래에서 공영방송 이사회는 정치권의 자리 나눠먹기로만 전락했다. 각계 각층 시민사회들이 이번에는 다양한 계층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인사들로 이사를 찾아 나서기로 했다.

지난 24일 발족한 공영언론이사추천위원회는 30일 프레스센터 19층 국화홀에서 그동안 공영방송 이사회의 활동을 평가하고 그 과제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날 발제문을 토대로 공영방송 이사를 잘못 뽑았을 때 생기는 일을 정리했다.

 



1. 공영방송의 제작에 관여해서 방송의 독립성을 망가트린다

2015년 EBS운영계획안 의결이 상정된 223차 EBS 이사회, 일부 이사들이 정부부처 홍보성 프로그램 제작을 주문하고 나섰다. 여당 측 추천이사인 김형준 교수는 인성교육진흥법 홍보와 광복70주년 교육프로그램 제작을 주문했다. 백복순 이사는 관련부처와 협의를 하면 좋은 프로그램이 나온다거나, 국방부와 MOU를 맺어 프로그램을 제작하라고 하기도 했다.

홍정배 EBS지부장은 "인성교육진흥법은 주입식 교육의 한계 등이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일방적인 홍보 프로그램을 제작하라는 이사진의 주문은 공영방송의 제작 자율성을 침해하고 프로그램의 독립성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편향적인 역사관을 갖고 있는 이사장이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친일옹호발언으로 비판을 받아온 이인호 KBS 이사장은 2014년 9월 17일 첫 이사회에서 "방송은 독립성을 보장해야 되기 때문에 이사들은 프로그램에 대해서 논평도 비평도 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말이 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남철우 KBS정책실장은 "이인호 이사장은 이승만, 해방정국, 한국전쟁, 문창극 총리후보 낙마 등 우리사회의 극단의 주장들을 가감없이 KBS 내부에서 이야기 했다"며 "결국 특정 방송프로그램에 대한 이사장의 발언은 외부의 뉴라이트 세력이 받아 키우고 이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제재하는 수순으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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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공영방송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나 판단을 하지 못해 방송을 망가트린다

공영방송 이사회가 방송의 전문성이나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정치권의 자리 나눠먹기로 전락하게 되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발생할까. 홍정배 EBS지부장은 "공영방송 정체성에 걸맞은 경영 전반에 이해가 부족한 모습이 이사회 속기록에 나와있다"고 밝혔다.

대표적인 사례는 2014회계연도 결산안이 보고된 224차 이사회에서다. 이춘호 EBS이사장은 부서별 특수성이 존재하는 방송사의 경영 형태를 감안하지 않고 흑자를 낸 부서와 내지 못한 부서, 흑자를 내는 데 가장 활약한 필드는 어디냐는 발언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225차 이사회 라디오현황보고에서도 기업체에서 원가 개념이 없다는 사실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등 일반 기업 형태로 방송사를 바라보는 이사진의 발언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어 방송관련 용어의 이해 부족, 회의준비 부족, 노조에 대한 근거 없는 노골적인 반감을 드러낸 점, 프로그램 평가에 있어 지극히 주관적이거나 개인적 취향을 고집하는 발언을 강조, 교육단체 추천이사가 EBS 홍보를 위해 종편에 광고하자는 의견등이 발견되기도 했다.

3. 부적격 사장을 그대로 두어서 방송을 계속 망가트린다

2012년 사상 초유의 최장기 170일간의 MBC 파업이 끝난 후, 9월 야당 이사 3명(권미혁, 선동규, 최강욱)은 "50년 역사의 탄탄한 저력을 가진 공영방송 MBC가 계속 휘청거리고 있다"며 김재철 사장의 책임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김재철 사장 해임안 표결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야당 추천이사 3명, 여당 추천이사 6명이라는 구도 하에서 여당측 이사들이 끝까지 김재철 사장을 비호했기 때문이다.

같은 해 11월 8일, 김재철 사장 해임안이 상정됐다. 한 달 전인 10월 8일 이진숙 MBC 기획홍보본부장과 이상옥 전략기획부장, 최필립 정수장학회 이사장의 비밀회동이 <한겨레>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정수장학회가 갖고 있는 MBC 지분 30%를 민간에 매각한다는 내용으로 큰 논란이 일어났고, 이를 김재철 사장이 주도하고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이 사안으로 방송문화진흥회 여당 이사들 내부에서도 김재철 사장 해임에 대한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고, 김재철과 노조 집행부의 동반사퇴 등 구체적인 해임안의 내용까지 공유됐다. 하지만 예상을 뒤엎고 해임안은 부결됐다. 표결 직전, 당시 박근혜 대통령 후보 캠프의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과 하금렬 청와대 대통령 실장으로부터 연락을 받은 여당 이사들이 돌연 입장을 바꿨다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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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내용을 밝힌 김혜성 언론노조 MBC본부 홍보국장은 "MBC를 정치적 압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중립지대로 출발한 방문진이 여당추천 6, 야당추천 3의 구조로 정파적 이해를 오히려 관철시키는 통로로 악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여당 추천 이사들이 잘못된 상황을 개선하고자 하더라도 정치권의 외풍에 바로 무력화될 수 있다는 것도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반면, 부적격 사장을 해임 시킨 사례도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의 여파가 KBS 전원구조 오보사태로 번지면서 분노한 세월호 가족들이 5월 8일 여의도 KBS본관 앞으로 몰려간 적이 있다. 길환영 사장과 김시곤 보도국장의 면담을 요구했지만 아무 답변이 없었다. 가족들은 마포대교를 건너 청와대로 향했고, 그날 오후 길환영 사장은 세월호 가족들 앞에서 사과해야만 했다. 다음달인 6월 5일 KBS 이사회(이사장 이길영)는 이사회를 열고 길환영 사장의 해임 제청안을 7대 4로 가결시켰다.

남철우 KBS정책실장은 "이처럼 KBS 이사회는 사장을 해임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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