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 방송사 외주 노동인권실태 증언대회 열려
고용계약서,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 절실

간담회장에 불이 꺼졌다. 외주제작 프리랜서 PD들이 노동인권 실태를 증언하는 영상이 나왔다. 화면 속 미디어노동자들은 얼굴을 가리거나 뒷모습만 보인 채 증언했다.

“다른 제작사의 후배가 전화를 해 선배 프로그램을 우리가 하게 됐다고 전했다. 나와 이야기 없이 그렇게 결정된 것이었다. 이 프로그램 만드는데 광고국이 지속적으로 상품 홍보를 하라고 요구해 왔다. 저는 제작국과 협의하라며 계속 광고국과 싸웠다. 사이가 안 좋았다. 그래서인지 광고국이 제작국과 이야기해 나를 잘랐다. 우리 스텝 12명이 졸지에 백수가 됐다.” (김경수 PD 가명)


“말대꾸한다면 폭행을 당했다. 나는 이슈를 만들면 안 됐다. 당시 계약직 조연출이 PD에게 대들면 PD 입문도 어렵고, 떠나야 했기 때문이다. 너무나 억울했다. 이슈화할 수 없기에 병원 진단 또는 경찰서도 가지 않았다. 다음날 그 사람이 사과했고, 나는 친하게 지냈다. 친하게 지내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었다. 피디가 되어야 했다.” (이주원 PD 가명)

“수정할 내용이 너무나 많았다. 쉽게 말해 재 종편 편집이 매번 돌아왔다. 추가 요금이 발생해야 했는데 현실적으로 힘든 때가 많았다. 종편 회사들이 힘들어 한다. 방송이 나갔는데 다시 수정 요구가 있기도 했다. 어떤 땐 본사 내부 피디의 취향에 따라 다시 작업하는 일도 종종 있다. 현실적으로 우리도 먹고 살아야 하지 않나. 시간대비 종편 편집 비용 다시 책정했으면 한다. 월요일 오전 시사를 하려면, 우리는 주말 내내 일해야 한다. 월요일 시사 시간 개선했으면 한다. 보통 2일 꼬박 일하면 많이 받아야 180만원. 수정은 별도로 책정 액수가 없다. 종편 감독 1명, 자막 3명 등 최소 4, 5명이 일한다. 말도 안 되는 금액이다”(하종길 감독 가명)


전국언론노동조합, 한국독립PD협회, 새정치민주연합 을지로위원회가 28일 오전 10시 국회의원회관 제 9간담회실에서 ‘방송사 외주제작 프리랜서 노동인권 실태 긴급 증언 대회’는 이렇게 첫 발을 뗐다.

사회를 본 김춘효 언론노조 정책위원은 “제가 좋아하는 드라마 등 프로그램이 이렇게 독립 피디들의 피와 눈물로 만들어지고 있다는 것을 접하니 마음이 무겁습니다”라고 전한 뒤 발제 및 토론자를 소개했다.

발제를 한 김동원 박사는 △독립제작사에 대한 법적 지위 부여 △지상파 방송사들의 고용계약서 및 표준계약서 작성 의무화 △독립PD 협동조합 설립과 정규직 노조의 지원 등으로 방송사 외주제작 구조 개선 및 노동 인권 보장 방안을 마련하자고 밝혔다.

김 박사는 “채널 간 경쟁과 광고 시장의 위축으로 성과 압박으로 수익경로와 콘텐츠 제작 현장 간의 간극이 더욱 벌어지게 된다”며 “방송사 비정규직과 독립프로덕션 파견 노동자 사이에 벌어진 갑을 관계 문제는 달라진 콘텐츠 시장 상황과 오랫동안 누적되어 온 외주제작 환경의 사각지대가 결합해 발생한 필연적 사건”이라고 밝혔다.



현재 방송법 안에는 외주제작 방송프로그램 인정 기준만 있을 뿐 독립제작사의 법적 지위를 규정해 놓지 않고 있다. 법적 지위가 확보될 경우 노동권 준수를 위한 지원책 마련과 방송분쟁 조정위원회나 공정거래 관련된 규제 및 지원 등이 가능해진다.

김 박사는 이어 “우선 언론노조 속한 지부들부터 앞장서서 고용계약서 표준계약서 작성을 위한 운동을 펼쳐야 한다. 생사여탈권을 준 지상파에서 결코 독립피디들이 비정규 방송 노동자들이 먼저 주장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토론에서 최선영 독립PD는 종편4사들 모두 외주관리 부서가 없고, 이 업무를 제작국, 광고국, 마케팅 부서 등을 통해 관리되고 있다고 밝혔다.

최 PD는 “종편 재승인시 외주비율로 성과를 따지지 말고, 외주 관리하면서 표준 계약서 작성을 하고 있는지 방송의 질적 평가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최 PD는 이어 “한 종편의 경우 지폐 개수기가 있어 시청률 등 실적이 좋은 독립 제작사와 내부 피디에게 현금으로 돈을 세어 준다”며 “이렇게 상을 받은 한 독립PD는 내가 마치 파블로프의 개가 된 것 같다고 말하더라. 결국 이런 식으로 갑을 관계가 고착되고 스스로 착취하는 구조가 만들어 진다”고 꼬집었다.

방송사내 비정규 문제를 취재 중인 미디어 전문 매체의 한 기자는 ‘방송사를 비정규직 백화점’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는 “방송사 내에서 계급이 정해져 있더라. 정규직 계약직 프리랜서로 나눠져 쥐어짜기 방식으로 운영이 진행되고 있다”며 “제작의 대부분은 외주PD가 담당하는 꼴이며, 이런 구조에서 (방송사 정규직은)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두섭 민주노총 법률원장은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인정한 아사히방송 판결(1995년)을 언급한 뒤 “점차적으로 원청도 하청 노동자에 대해 사용자 지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권 원장은 화물연대와 건설노조 사례를 들며 방송사 비정규노동자들의 조직화를 강조했다.

권 법률원장은 “덤프, 레미콘, 화물의 경우 일부 노동자들의 경우 법원으로 갈 때 현행 법체계에서 근로자성 인정받기 어려운 상황이 있지만 뭉쳐서 노동조합을 만들었다”며 “노조 활동을 통해 4대 보험과 퇴직금 문제 등을 특별법으로 해결하는 등 현행 법률에서 규제하기 어려운 내용을 만들어 냈다”고 말했다.

즉 노조 활동 등을 통해 △방송 업계내 최소한 임금보장 가이드 라인 △도급 금액의 적정성 확보 △장시간 노동 및 야간 노동을 규제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아울러 나경훈 IT노조 사무국장은 “IT업계 역시 프리랜서 사용 문제가 심각하다”며 “자본은 노동자의 기술을 뽑아 쓰기에 급급하다 보니 결국 프로그램의 질적 저하는 물론 노하우 축적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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