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자유언론실천 언론노동자 시국선언

 

42년의 세월이 흘렀다. “자유언론은 어떠한 구실로도 억압될 수 없다”는 선언으로 권력에 맞서 국민을 위한 말길을 텄던 언론 노동자들이 살아낸 세월이 42년이다. 그러나 2016년 10월, 우리는 유신독재보다, 군사독재보다 더한 폭압과 죽음의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손바닥만한 가게를 지키겠다고 망루에 올라간 사람들은 화마에 휩싸였고, 직장을 떠날 수 없다던 자동차 공장의 노동자들은 전쟁 포로처럼 붙잡혀 죽음을 맞이했다. 생명의 젖줄인 4대강은 토건 자본의 손아귀에 넘어갔고, 전 국토는 살처분한 가축들의 무덤이 되었다. 권력의 가면을 쓴 죽음은 멈출 줄 몰랐다. 금요일에 돌아오라 했던 아이들은 전 국민 보는 앞에서 검은 바다 속으로 사라졌다. 왜 구하지 못했는지 묻는 유가족들은 죄인이 되어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모욕과 고통의 시간을 버텨내고 있다. 이윤에 눈이 멀어 죽음의 살균제를 팔았던 자본은 무너진 부모의 가슴 앞에서 허리를 겨우 숙였고 정부는 침묵했다. 어떤 대화도 없이 하루아침에 일방적으로 결정된 미사일과 레이더 포대는 평온하기만 했던 마을 주민들의 생활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다. 끝이 아니었다. 자식처럼 키운 쌀 몇 포대 제 값을 받겠다고 상경한 농민은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졌고, 유가족과 국민들은 책임회피를 위해 시신마저 훼손하겠다는 정권에 맞서고 있다.

죽음의 정권 9년. 우리 언론 노동자들도 스스로 묻는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던질 때 우리의 카메라는 어디에 있었는가. 침몰하는 세월호를 목전에 두고 우리의 눈과 귀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는가. 아이들이 보이지 않은 죽음을 맞았다고 부모들이 통곡할 때 우리는 취재수첩에 무엇을 적고 있었는가. 전쟁 무기를 막겠다는 성주 농민들이 고립되었을 때 우리의 보도차량은 어디로 가고 있었는가. 백남기 농민이 죽음과 사투를 벌일 때 우리가 펜과 카메라를 들고 뛰어다녔던 곳은 어디였는가.

폭압의 정권 9년. 우리는 공영방송 사장부터 현장 기자와 피디까지 군사독재 시절에도 없던 징계와 처벌, 해고를 겪었다. 언론 다양성이라는 기만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멀게 할 종편이라는 괴물의 탄생도 지켜보았다. 공정언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당하고 현장에서 쫓겨났으며 마이크와 펜을 빼앗겼다. 공정보도를 주장한 기자와 피디를 해고한 임원은 “증거도 없이 해고했다”며 자랑했고, 청와대 홍보수석은 세월호 실종자의 생명보다 대통령의 심기를 걱정하며 뉴스보도에 개입했다. 그러나 우리는 알고 있다. 1974년 10월 24일의 언론자유실천선언을 꺼내며, 언론의 자유는 국민 대중이 찾아다 주는 것이 아님을, 언론 노동자 스스로 쟁취하고 실천해야 하는 것임을 깨닫는다. 

2016년 10월 21일, 오늘 우리 언론 노동자들은 사람이 사람으로 살 수 없는 이 대한민국에서 42년 전의 자유언론실천선언을 행동으로 옮길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 정파적 이해에도 치우치지 않고 진실의 편에서만 설 것이며, 진실을 가리는 모든 개입과 지침에 반대할 것이다. 자유언론을 실천하기 위한 우리의 책무는 그 어떤 제도와 법령에도 우선하며, 언론사의 사규나 강령보다 중요한 규범이다. 죽음과 폭압의 정권에 맞서 인간의 기본권을 지켜낼 언론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세 가지를 요구한다.

 

첫째, 언론 통제, 해고와 징계의 진실을 밝힐 국회 청문회를 즉각 개최하라

둘째, 국회는 청와대의 언론장악을 방지할 법률 개정안을 즉각 통과시켜라.

셋째, 죽음의 정권 9년 동안 부당하게 해직된 언론인들을 즉각 복직시켜라.

 

위 요구가 관철될 때까지 오늘 이후 우리 언론 노동자들은 언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어떠한 투쟁도 불사할 것임을 선언한다.

  

2016년 10월 21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대의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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