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보에서 매주 <‘언론 어때?’>라는 외부 칼럼을 연재합니다. 미디어에서 노동 인권 평등 민주주의 생태를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를 살피고 돌아봅니다. 박장준 희망연대 정책국장이 <노동>을 명숙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가 <인권>을 정슬아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사무국장과 황소연 활동가가 함께 <성평등>을 주제로 칼럼을 씁니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가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미디어 내용을 비평합니다.

황소연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는 ‘여성 예능’ 원고에서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양한 캐릭터의 여성을 보다 많이 만나고 싶다고 전해왔습니다. 외모 중심 토크와 강요된 ‘여성성’에 치우친 예능 아직도 보시나요? /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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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예능 ‘엄마’ ‘걸그룹’ 아닌 새로운 캐릭터 필요

 

황소연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활동가 

 

내가 TV에서 기억하는 가장 강렬했던 여성들의 모습은 KBS <여걸파이브/식스>의 출연진이었다. 여성 예능·방송인들이 한 열로 서서 다양한 게임을 하거나 춤을 추고 웃기는 말을 하는 모습은 정말 ‘웃겼다’. SBS에서 방영했던 <골드미스가 간다> 역시 다수의 여성들이 등장해 예능의 재미를 뽐냈다. 물론 두 프로그램 모두 개별 에피소드 및 구성으로 보았을 때 연애 및 결혼을 여성의 삶의 목표로 보여주거나, 남성 게스트를 출연시켜 감탄하게 하는 등 여성 예능인을 활용하는 방식에 한계가 있긴 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지상파 주말예능에서 여성이 5~6명 정도 등장했던 것은, 지금과 비교해도 역시 특별하게 느껴진다.

최근 케이블에서는 <뜨거운 사이다>, <바디 액츄얼리>처럼 여성의 이야기와 시각이 곧 프로그램의 주제가 되는 프로그램들이 방송되는 참이다. 더불어 EBS의 <까칠남녀>가 방송에서 외면되었던 젠더이슈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 주목할 만하고, <라디오스타>의 스핀오프인 MBC에브리원 <비디오스타> 역시 여성MC 네 명을 중심으로 방송 중이다. 남성중심의 예능 흐름을 보조하는 데에 그쳤던 여성 방송인들이 발돋움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까 기대를 하게 한다. 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이니, 이제는 여성이 ‘얼마나 등장 하는가’를 넘어, ‘어떤 역할로 등장하는가’ 같은 질문을 함께 던져야 할 때이기도 하다. 지상파 및 케이블 전체 예능 프로그램으로 보았을 때, 뷰티 프로그램을 제외하고는 여성예능인을 찾기 힘든 현실이 이러한 질문의 필요성을 시사한다.

 

 

지금도 진행 중인 남성중심의 예능은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옳다고 여겨지는 '여성성'을 요구하고 있다. 인물만의 특징을 받아들이지 않고, 애교나 춤, 외모 가꾸기 등이 유독 여성 게스트들이 해내야하는 예능의 조건처럼 통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면 MBC <진짜사나이-여군특집>에서처럼 고생하는 모습을 전시하는 정도가 여성이 지상파 예능에서 누릴 수 있는 ‘캐릭터’의 전부다. 여성연예인들의 의외의 모습을 발견한다는 목표를 가진 듯 보이지만, 결국 여군특집은 여성들을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지만 몸매가 좋은 여성’, ‘까칠한 여성 군인’ 등으로 게으르게 묘사 하는 데에 그쳤다.
 

 

KBS2TV <언니들의 슬램덩크2>의 목표가 걸그룹 활동으로 설정되었던 것 역시 맥 빠지는 일이었다. 대형 버스운전, 자신만의 쇼 만들기 등 시즌1에서 다양한 멤버들의 꿈 중 하나였던 ‘걸그룹 되기’가 메인이 된 것은 제작자들이 관성처럼 여성에게 바라는 모습이 무엇인지 짐작하게 했다. 같은 방송사의 <하숙집 딸들> 역시, 여성의 역할을 어머니 혹은 딸에 한정하려는 데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얼핏 보면 여성이 많이 등장해 주체적으로 프로그램을 이끄는 듯 보이지만, 잘 생각해보면 가부장제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역할의 재생산이다. 한편으로는 그런 식상한 설정이라도, 여성들이 다수를 차지하는 프로그램이 아직은 절대적으로 적기에 그나마 관대하게 봐야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이미 예능에서 남성들의 코미디는 프로그램 흥망의 기준점이 되었다. 칭찬이든 비하든 여성의 외모를 평가하고 약자성을 비하하는 것 및 춤이나 애교를 감상하는 모습을 참고 보기란 쉽지 않다. 최근 방영되는 케이블 예능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 역시, 기존 예능에서 여성을 다루는 공식에서 벗어나 다른 캐릭터를 시도한다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많은 여성 시청자들이 해당 프로그램들에 보이는 반응과 기대가 큰 것은, 그만큼 여성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을 시청자들이 기다려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동안의 갈증이 프로그램 몇 개 정도로 해소되지는 않겠지만, 이러한 흐름이 지상파에도 영향을 주길 기대하게 되는 대목이다.

언젠간 여성들이 다수 등장하는 예능을 ‘여성예능’이라는 이름으로 특정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오기를 바란다.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여성들이 많이 등장했던 과거를 여성예능의 '유일한 좋았던 시절'로 남기지 않으려면, 지금 예능 속 더욱 다양한 캐릭터의 여성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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