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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제작 스태프의 ‘비명’…“열정 아닌 노동으로 바로잡자”
[0호] 2017년 09월 27일 (수) 19:16:49 임학현 언론노보 기자 haken1984@gmail.com

20일 ‘드라마 제작현장 노동실태 개선’ 토론회

tvN 사망사건 대책위 “방송업계 관행 ‘꿈’으로 포장하는 것 멈춰야”

   
 

“집에 못 가는 날은 한 달에 열 번도 넘었고, 야근은 없는 게 이상했어요.”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고통 받는 방송노동자들이 입을 열었다. 방송노동자들 중에서도 가장 장시간・고강도 노동을 하는 것으로 알려진 드라마 제작 스태프들은 ‘근로기준법 59조’와 프리랜서 계약에 의해 사람으로서 견디기 힘든 노동환경에 놓여 있었다.

‘고(故) 이한빛 PD 사건 이후, 드라마 제작현장의 노동실태 개선 국회토론회’가 지난 20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렸다. 더불어민주당 신경민・한정애 의원이 공동으로 주최하고 ‘tvN 사망사건 대책위’(이하 대책위) 방송제작환경개선 연구모임이 주관했다.

 

‘꿈을 꿀 수 없는’ 드라마 제작 노동자들

 

대책위는 고(故) 이한빛 PD의 사망 이후부터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일하는 106명(심층면접 13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했다. 대책위는 조사결과를 전하며 드라마 제작현장이 ‘꿈을 꿀 수 없는 현장’이라고 설명했다. 드라마 제작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9.18시간을 일했고, 이들의 평균 휴일 수는 주 0.9일에 불과했다. 

같은 현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고용형태는 제각각이었다. 방송사・외주사 정규직, 비정규직, 파견・하청업체 소속, 프리랜서 등으로 나뉘어 노동조건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현장에 투입되는 인력의 80~90%는 외주제작사가 고용한 노동자이거나 프리랜서다.

급여 수준도 노동시간을 감안하면 법정 최저임금에 못 미쳤다. 외주제작사 비정규직 노동자가 드라마 한 편을 찍으며 일한 시간과 받은 임금을 함께 놓고 계산했을 때, 시간당 평균 4,980원의 임금을 받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마저도 지급이 지연되는 일이 허다하다.

‘인맥’을 통해 구두로 근로계약이 맺어지는 일이 많아 ‘주는 만큼 받는’ 노동자들도 많다. 대책위가 소개한 사례에서 촬영 1년차의 스태프 A씨는 “임금은 제작사에서 주는 만큼만 받는다. 협상이라는 것도 없다”며 “퇴근 시간이 늦어지면 택시를 타는 경우가 있는데, 택시비 지원도 못 받는다”라고 밝혔다.

성폭력・폭언・인권유린도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소개된 다른 사례에서 제작 1년차 여성 스태프는 “현장에 여성이 많지 않아서 (남성 스태프들이) 들이대는 것이 심하다”며 “기본적으로 포옹을 하며 시작해 내 몸이 ‘내 몸이 아닌 것’으로 세팅이 된다”고 말했다.

다른 한 스태프는 “현장에서 어쩔 수 없음을 빌미로 한 스킨십들이 있다”며 “숙소를 모텔로 잡았을 때 막내(여성)가 (스태프들을) 깨우러 가면 ‘어깨라도 좀 주물러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고 전했다.

   
 

 

근로시간 특례제도? “그 자체로 위법한 제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의 노동시간은 휴식을 제외하고 1주에 40시간, 1일에 8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제59조는 ‘특례 산업’을 인정하며 “사용자가 근로자대표와 서면 합의를 한 경우에는 주 12시간을 초과하여 연장근로를 하게 하거나 휴게시간을 변경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방송산업 역시 ‘흥행업’이란 이름으로 이 법에 묶여있어, 드라마 제작 현장은 51년째 사실상 무한정 노동이 가능한 노동환경이다. 개인사업자로 분류되는 프리랜서 계약 노동자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특히 외주제작사 사업자들이 사용자로서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프리랜서 계약을 선호하고, 이 과정에서 ‘을’이 법의 보호를 받을 길이 없다는 것이 대책위의 설명이다.

김동현 변호사는 “전체 노동자의 38%가 특례업종에 속하는데, 특례업종은 더 이상 특수하지 않은 일반 업종”이라 지적한 뒤, “장시간 노동을 허용해 노동자의 인간다운 생활을 위협하므로 그 자체로 위법한 제도”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또한 “노동이 연속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면 교대제나 시차제 또는 인력조정으로 해결해야지, 개별 노동자의 노동시간을 연장하는 것으로 해결해선 안 된다”고 밝혔다.

토론에 참여한 안병호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버틸 수 있다’는 인식이 유독 영화나 드라마 현장에서 팽배하다”며 “모든 직업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인데 ‘특수하다’고 하는 것은 어디서 기인하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열정’을 현장의 언어 ‘노동’으로”

   
 

대책위는 “노동시간 제한, 방송업계 관행을 해소하기 위한 법안 마련 등 해법은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열정’이란 이름으로 포장된 노동을 현장의 언어로 만드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스스로 프리랜서가 아니라 노동자로 인식하는 것, 방송업계의 관행이 꿈으로 포장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으로 재해석 되는 것이 현재 가장 필요한 일”이라며 “스스로 노동자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최소한의 권리구제기구, 목소리를 담아 집단의 힘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작은 시도들이 이한빛PD의 죽음을 계기로 시작되길 바란다”고 했다.

‘방송사 불공정 행위 청산과 제도개혁을 위한 특별위원회’의 최영기 회장은 이한빛 PD의 죽음을 ‘사회적 타살’이라 규정하고 “이러한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분명히 제2의 이한빛 PD는 다시 나타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영기 회장은 또한 토론회에 참석한 공무원들에게 전하는 말이라며 “방송사의 저항을 막아내고 스태프들의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데 모든 노력을 쏟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임명권자(문재인 대통령)의 정책을 무력화시키는 데 앞장서는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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